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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Sep 08. 2015

마약이 되어버린
서부검은코뿔소의 뿔

중국, 상하이세계금융센터, 492미터

Shanghai World Financial Center and West African black rhinoceros, watercolor on paper, 2014


인간의 손톱처럼 케라틴으로 이루어진 코뿔소의 코는 오랫동안 전통 중국 약재로 쓰였으나 최근에는 최고급 파티의 마약으로 인기 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의 클럽에서는 분말로 만든 코뿔소 뿔을 코카인처럼 흡입한다.

- 여섯번째 대멸종,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이혜리 옮김, 처음북스, p. 286.


코뿔소는 무분별한 밀렵과 밀거래로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상태다. 코뿔소의 뿔은 해열과 해독, 최음제로도 쓰이고 전통의식을 위한 칼자루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또한 암을 비롯해 크고 작은 온갖 질병을 낮게 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1960년,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검은코뿔소는 대략 7만여 마리였으나 현재는 4,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놀랍게도 1970년과 1992년 사이에 검은코뿔소의 96퍼센트가 밀렵으로 죽었으며 극소수만 겨우 생존한 지금도 무자비한 밀렵이 계속되고 있다. 뿔이 잘린 채 피를 흘리며 죽은 코뿔소의 모습은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뿔을 자르더라도 세심하게 환부를 치료한다면 코뿔소는 죽지 않는다. 그래서 밀렵으로 죽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뿔을 잘라내는 프로젝트가 시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코뿔소의 무기인 뿔을 제거한다면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되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서부검은코뿔소, 종이에 연필, 2014


마침내 사라진 서부검은코뿔소


검은코뿔소는 콩고 분지와 서아프리카의 적도 산림 지역을 제외하고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어깨높이는 1.4~1.8미터, 몸길이는 3~3.75미터이고 무게가 800~1,400킬로그램에 달하는 거대한 초식동물이다. 강한 햇볕과 달려드는 흡혈파리를 피하고자 몸에 진흙을 바르고 낮에는 그늘이나 얕은 물웅덩이에서 뒹굴며 시간을 보낸다. 검은코뿔소의 아종인 서부검은코뿔소는 1980년에는 135마리가 생존해 있었지만 1991년에는 50마리, 다음 해에는 35마리, 1997년에는 약 10마리만이 살아남았다. 남은 개체들은 드넓은 카메룬 북부지역에 외따로 흩어져 있어 번식이 불가능했다. 서부검은코뿔소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2006년이었다. 그 후 민간단체나 정부 차원에서 여러 차례 광범위한 조사를 벌였지만 서부검은코뿔소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제대로 된 길도 없는 데다 교통수단은 너무 비싸고 무장강도가 수시로 출몰해 안전하지 않았다. 밀렵꾼들은 동물이 마시는 물웅덩이에 독을 풀었고 곳곳에 올가미를 설치해 놓았다. 코뿔소의 흔적을 찾던 조사팀은 덫에 걸리거나 상처 입은 동물들을 수차례 발견했지만 서부검은코뿔소의 생존 흔적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마침내 2011년 국제자연보전연맹은 서부검은코뿔소의 멸종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다른 코뿔소들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대형동물로 여겨지는 인도네시아자바코뿔소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 국립공원에 약 40~50마리가 생존해 있다. 베트남자바코뿔소는 2011년 멸종했고 인도자바코뿔소는 이미 1990년대 초반에 사라졌다. 흰코뿔소의 아종인 북부흰코뿔소는 7마리 남았지만 너무 늙었거나 번식이 불가능해 곧 멸종될 것으로 보인다. 야생에 남은 수마트라코뿔소는 약 100여 마리에 불과하다. 40여 마리를 사육하며 30년간 번식을 위해 노력했지만 겨우 4마리의 새끼만을 얻었다. 그마저도 인공수정 등 각종 방법을 총동원해 겨우 성공한 것이었다. 코뿔소의 멸종을 막으려는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종의 코뿔소들이 차례차례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살아 있는 동물의 쓸개에 빨대를 꽂는 사람들


오래전에 몸보신을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찾아가고 무엇이든 먹는 한국 남성에 관한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살아 있는 거대한 곰이 철창에 사지가 묶인 채 있었다. 몇몇 중년 남자가 곰을 바라보며 평상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곰의 복부에 뚫은 구멍에 빨대 같은 것을 꽂았다. 한 남자가 다가가 그 빨대를 입에 물었다. 지금 곰의 쓸개즙을 빨아 먹는 중이라는 내레이터의 설명을 듣고서야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평상에 앉은 남자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고 간간이 웃기도 했다. 그 충격적인 장면과 곰의 울음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중병에 걸려 투병 중이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다. 단지 쓸개즙이 정력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을 뿐이다. 살아 있는 곰의 쓸개즙을 빨아먹은 그 남자들이 우리의 아버지, 아들, 오빠, 남편일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과 수치심을 느꼈다. 


살아 있는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 사람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제품은 실용적이고 아름답다. 그러나 동물에게서 가죽을 빼앗는 과정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내 옷장에도 가죽 재킷과 라쿤 털이 달린 점퍼가 걸려 있다. 유튜브에서 라쿤이나 너구리의 털가죽을 벗기는 동영상을 본 후로는 거의 입지 않는다. 겨울 의류에 달린 라쿤 털은 보온효과는 없고 단지 장식을 목적으로 달려 있을 뿐이다. 동물의 털은 살아 있을 때 벗겨야 감촉도 좋고 보기에도 좋아서 때리거나 전기충격을 줘서 잠시 기절시킨 상태에서 털가죽을 벗긴다. 도중에 깨어난 동물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가죽이 벗겨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본다. 라쿤의 털을 이렇게 잔인하게 벗긴다는 것을 의류 회사는 절대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무척 귀엽게 생긴 라쿤은 자물쇠를 열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고 손의 감각도 사람보다 10배 정도 예민해 손도 잘 쓴다고 한다. 최근 동물자유연대는 라쿤 털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산 채로 털가죽이 벗겨진 라쿤들이 빨간 맨몸뚱이로 무수히 쌓여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일부는 숨을 헐떡거리고 눈을 깜박였고 머리를 들어 카메라를 응시하는 라쿤도 있었다고 한다. 열악한 사육환경 탓에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던 작고 귀여운 생명이 그렇게 우리의 옷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


동물만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폭력을 당하는 존재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가난한 아이들이다. 얼마 전에 사회파 감독 사카모토 준지의 2008년 영화 <어둠의 아이들>을 보았다. 재일한국인 2세 출신의 소설가 양석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태국의 아동인권 유린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가난한 부모는 푼돈을 받고 아동 성매매와 장기매매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린 자녀를 팔아넘긴다. 아이들을 원하는 고객은 대부분 선진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성매매에 이용당하다 죽거나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은 검은 쓰레기 봉지에 담겨 쓰레기처리장에 버려진다. 달이 높게 뜬 캄캄한 밤에 산처럼 쌓인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검은 봉지를 찢고 기어 나오는 여자아이의 모습은 내가 살면서 경험한 어떤 이미지보다 아픈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어둡고 추악한 실상이 그 장면에 전부 담겨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아프다 못해 갈가리 찢기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가 보여 주는 세상은 허구가 아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현실이다. 내 그림 속 소녀와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소녀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순수는 함부로 다뤄지고 가차 없이 폐기 처분된다. 소녀는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 동물처럼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지만 가장 고통받는 존재를 상징한다. 


더 나쁜 사람은 누구인가


최근에는 코뿔소의 뿔을 갈아 만든 분말이 최고급 파티나 동남아시아 클럽에서 마약으로 이용된다. 고작 환각제 따위로 이용하려고 선사시대부터 지구에 살아온 동물을 멸종시켰단 말인가. 나는 슬픔이 아니라 분노를 느꼈다. 마지막 서부검은코뿔소가 죽어갈 때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동물의 죽음이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벌어지기 때문일까,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며 포기한 걸까. 우리가 갖가지 형태의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만성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본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코뿔소를 죽여서라도 보신을 위해, 찰나의 쾌락을 위해 뿔을 잘라낼 것이다. 그러나 하찮은 쾌락을 위해 아이나 동물을 착취하는 사람보다, 그것을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나쁘지 않을까. 



참조


『여섯번째 대멸종』,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이혜리 옮김, 처음북스(2014), p.286.

http://www.arkive.org/black-rhinoceros/diceros-bicornis/

http://time.com/9446/western-black-rhino-declared-extinct/

http://blogs.scientificamerican.com/extinction-countdown/how-the-western-black-rhino-went-extinct/

http://www.animals.or.kr/


멸종동물, 멸종위기동물,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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