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노아 Noah Jang Sep 27. 2015

표본으로만 남은 순하디 순한
오가사와라흑비둘기

중국, 지펑 타워, 450미터

Nanjing Zifeng Tower and Bonin Wood-Pigeon, watercolor on paper, 76 x 57cm, 2014


나는 사람들이 즐거움을 상실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지켜낼 수 없는 작은 생명들이 은밀하고 냉혹하게 파괴되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고통스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 로자 룩셈부르크


일본 오가사와라 제도의 고유종인 오가사와라흑비둘기는 단 3개의 표본만을 남기고 1889년 세상에서 사라졌다. 1827년, 영국 군함 블라섬 호에 탑승한 탐험가들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고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나 두려움이 없어 잡으려 해도 가만히 있을 정도로 순했다. 개발을 위한 산림 벌채와 무분별한 사냥 때문에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으며 탐험가들이 들여온 고양이와 큰 쥐가 섬에 번성해 오가사와라흑비둘기의 생존을 위협했다. 마지막 오가사와라흑비둘기는 1889년 나코도 섬에서 목격되었다. 순하디순한 오가와사라흑비둘기는 인간에게 발견된 지 불과 60여 년 만에 멸종하고 말았다. 표본은 런던, 상트페테르부르크, 프랑크푸르트 세 곳의 자연사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오가사와라흑비둘기, 종이에 연필, 2014


오가사와라흑비둘기와 그림 속 소녀


오가와사라흑비둘기의 몸길이는 45센티미터 정도이고 전체적으로 검회색을 띠며 부분적으로 자주색, 청록색, 짙은 푸른색 등 다양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먹이는 나무 열매와 씨앗 등이었고 오가사와라흑비둘기가 낳은 알은 17~19일이 지나면 부화했다. 생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전에 멸종한 탓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항해가 시작된 신석기 시대 이래로 전 세계의 조류 20퍼센트가 멸종했다. 표본으로만 남은 새들은 수없이 많고 오가사와라흑비둘기 역시 이 세상 어디에서도 살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이 새도 도도새처럼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멀리 달아났더라도 멸종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림 속의 소녀는 오가사와라흑비둘기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대하지 않는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새는 상냥한 소녀의 머리 위에 올라 편히 쉬고 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중국의 난징이고 가장 높이 솟은 빌딩은 지펑 타워다. 2010년 완공된 450미터의 건물로 2015년 현재 중국에서 네 번째로 높고 세계에서는 열 번째로 높은 초고층 빌딩이다. 


존 제임스 오듀본과 미국의 새들


존 제임스 오듀본은 새들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면 항상 마주치는 이름이다. 그는 현존하는 최고의 조류학 서적인 『미국의 새들』을 제작한 조류학자이자 뛰어난 화가이다. 오듀본은 1827년과 1938년 사이에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야생의 새를 관찰하고 연구해 435종의 새를 그림으로 남겼다. 생태와 색채가 더없이 사실적이면서 아름답게 묘사되어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새들의 모습을 화면에 절묘하게 배치해 전부 실물 크기로 담았다는 사실이다. 수백 장 중에 어느 하나도 허투루 그린 그림이 없어서 ‘새에 미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릴 때부터 그림과 조류에 관심이 많았던 오듀본은 사업을 하면서도 좋아하는 새들을 취미로 계속 그렸다. 200장 이상의 그림을 쥐가 파먹어 몇 주간 우울증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1819년, 오듀본은 사업에 실패하고 파산해 짧은 기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 오듀본은 이후 본격적으로 조류 연구를 시작했다. 오늘날 그의 그림들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유산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으며 오듀본이라는 이름은 전 세계 조류 보호의 상징이 되었다. 지금은 세상에서 사라진 새도 그의 그림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듀본의 선구자적 시도와 헌신, 자연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우리 시대에 커다란 울림을 안겨 준다.


하늘 높이 오르다 추락한 이카로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테나이 출신의 뛰어난 기술자인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명령으로 황소 머리를 가진 괴물인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미궁을 만들었다. 그러나 다이달로스 역시 폭군 미노스의 감시 아래 크레타 섬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탈출구는 하늘밖에 없다고 생각한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모아 커다란 날개를 만들고 초로 날개를 고정했다. 날개를 단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는 마침내 크레타 섬을 탈출하지만, 이카로스가 아버지의 충고를 잊고 너무 높이 날아 태양 가까이 접근하는 바람에 날개를 굳힌 초가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카로스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고 매혹적이라 예로부터 수많은 화가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되었다. 나는 샤를 폴 랑동의 1799년 작作<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를 가장 좋아한다. 랑동은 이카로스가 바닥에서 발을 떼고 막 날아오르는 순간을 그렸다. 아버지인 다이달로스는 아들의 뒷모습을 불안스레 지켜보고 있다. 이카로스의 연약한 육체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얼굴은 불행한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카로스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허공을 더듬듯 두 팔을 위태롭게 내젓고 있다. 그림의 배경은 밝은 대낮이지만 이카로스는 홀로 어둠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랑동의 이카로스는 다른 화가들이 그린 추락하는 이카로스보다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우리도 너무 높이 날고 있다


인간의 지혜와 기술은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불완전하다. 이카로스는 높이 날아오른 기쁨에 취해 날개가 어깨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인류는 지금 이카로스처럼 한계를 망각하고 너무 높이 오르고 있는 것 같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가 어리석은 행동을 할까 봐 불안해 아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며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아!항상 바다와 태양 그 중간으로 날아가야 한다. 너무 낮게 날면 날개가 바닷물에 젖게 되고 날개가 젖어 무거워지면 바다에 떨어질 테니까 말이다. 또 하늘로 너무 높이 올라가 태양에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날개가 불타버릴 수도 있단다. 그런 일이 없도록 바다와 태양 그 중간으로 날아야 한다. 언제나 내 뒤를 잘 따라와야 해. 알겠지?”


자신의 날개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더라면 이카로스는 아버지와 함께 무사히 섬을 탈출해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우리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인류를 향한 자연의 경고인지도 모른다. 


대자연 앞에서 겸손을 되찾기


초고층 빌딩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고 거대해서 인간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간혹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작고 낮은지 대자연 앞에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갖은 공을 들여 높이 올린 초고층빌딩도 새는 날갯짓 몇 번이면 사뿐히 올라가 앉을 수 있다. 새가 높은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날개를 가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늘 높이 오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날기 위해 새들의 날개를 꺾고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뛰어난 도전정신과 탐구정신이 지금은 균형을 잃고 잘못된 방향으로 파멸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하늘 높이 오르려는 욕망에만 몰두하지 말고 존 제임스 오듀본처럼 우리 곁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삶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오가사와라흑비둘기 표본 Bonin wood-pigeon specimen, side view



참조


『그린 레프트』, 데렉 월 지음, 조유진 옮김, 이학사(2013), p.6.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 1』,구스타프 슈바브 지음, 이동희 옮김, 휴머니스트(2015), p.117.

http://www.arkive.org/bonin-wood-pigeon/columba-versicolor/

https://en.wikipedia.org/wiki/Bonin_wood_pigeon

http://www.audubon.org/birds-of-america


멸종동물, 멸종위기동물, 기후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