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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Sep 30. 2015

저주가 되어버린
숀부르크사슴의 아름다운 뿔

홍콩, 국제상업센터, 484미터

ICC Tower and Schomburgk's Deer, watercolor on paper, 76 x 57cm, 2014


내가 좀더 예민했더라면, 내가 자연의 흐름으로부터 나 자신을 차단하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숲 속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으리라.

- 자연에미친사람, 톰 브라운 지음, 김훈 옮김, 정신세계사(1993), p.224.


태국의 고유종이었던 숀부르크사슴은 무척 크고 아름다운 뿔을 가지고 있었다. 19세기 후반, 쌀 수출을 위해 농경지를 대규모로 확장하면서 숀부르크사슴의 서식지였던 태국 중앙평야의 초원과 습지가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는 사냥도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숀부르크사슴은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였다. 숀부르크사슴의 뿔이 의약품으로 활발히 거래되었기 때문에 사냥꾼의 중요한 표적이 되었다. 우기가 시작되고 홍수가 발생하면 숀부르크사슴은 지대가 높은 곳에 고립되었는데 사냥꾼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배를 타고 다니며 창으로 손쉽게 사냥했다.


숀부르크사슴, 종이에 연필, 2014


우아하고 아름다운 사슴


야생에서 살던 마지막 숀부르크사슴은 1932년, 포획되었던 마지막 사슴은 1938년에 각각 죽임을 당했다. 숀부르크사슴은 멸종했지만 뿔은 여전히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1년, 라오스에 있는 중의약품 상점에서 숀부르크사슴의 뿔이 발견된 적이 있었다. 일부 학자는 아직도 숀부르크사슴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 여기지만 구체적인 생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 단 하나의 표본이 파리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숀부르크사슴은 인도와 네팔 부근에 서식하는 사슴인 바라싱가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우아한 사슴이었다. 털은 짙은 갈색이었고 배와 꼬리 아래쪽은 하얀색이었다. 암컷에게는 뿔이 없었지만 수컷은 안쪽으로 모인 바구니 형태의 커다란 뿔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깥쪽에서 가장 긴 뿔의 길이는 최대 89센티미터까지 자랐고 30여 개의 크고 작은 가지가 뻗어 나왔다. 숀부르크사슴의 무리는 한 마리의 수컷과 여러 마리의 암컷, 새끼들로 구성되었고 초목이 우거진 숲을 피해서 주로 긴 풀과 관목이 자라는 습지에 서식했다. 


숲에서 들려온 이상한 울음소리


2012년, 강원도 원주에 있는 토지문화관 예술인 창작실에 3개월간 입주한 적이 있었다. 내가 머물렀던 창작실은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숲이 있었다. 창작실에서 지낸 지 며칠이 지나서 숲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기침을 하는 건지 악을 쓰는 건지 고통스럽게 내지르는 짧은 울음소리가 한밤중에 계속 들려왔다. 처음에는 함께 머무는 작가 중에서 누군가가 술에 취했거나 스트레스가 심해서 숲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가만 들어 보니 사람의 소리가 아닌 것도 같았다. 정체불명의 괴물이 내는 소리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혹은 아이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기이하고 무서운 소리였다. 모두 그 소리를 듣고 있을 텐데도 창작실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조용했다. 그래서 주정뱅이거나 내가 모르는 어떤 동물의 소리려니 짐작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 한 맺힌 소리가 귀엽게 생긴 사슴과 동물, 고라니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다음날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미가 새끼를 부르거나 동료에게 신호를 보내는 소리라고 했다. 그때서야 나는 사슴을 숲에서 풀을 뜯거나 조용히 걷는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 사슴의 목소리를 전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아한 외모를 자랑하는 사슴들의 목소리는 어떠한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인간을 보고 뭐라 말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만약 숀부르크사슴이 멸종되기 전 마주할 수 있었다면 그래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나는 무엇을 들었을까?나는 숀부르크사슴이 인간을 만났을 때, 새끼나 동료에게 “도망쳐!”라고 외쳤을 것만 같아 미안해졌다.


자연에 미친 사람의 이야기


글을 준비하면서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자연에 미친 사람』이라는 책을 다시 꺼내 보았다. 원서의 제목은 『The Tracker』, 우리말로 추적자다. ‘짐승이나 인간의 발자국을 쫓는 사람’을 일컫는 추적자는 작은 흔적만으로도 동물의 실체를 모두 파악해내는 기술을 지닌 사람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추적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톰 브라운은 20년 넘게 동물의 행방을 쫓고 실종자를 찾는 일을 해 왔다. 그는 7살 무렵에 친한 친구의 할아버지인 아파치 추적자 ‘뒤를 밟는 늑대’를 만나 9년간 기술을 전수받는다. 이미 자연에 매혹된 아이였던 톰 브라운은 매일 쉬지 않고 자연과 추적에 관해 배우고 익혔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추적자란 단순히 자취를 쫓는 기술가 아니라 자연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책을 읽다가 감동을 받으면 그 책에 날짜를 적어 놓는다. 2001년 10월 29일, 나는 자연에 미친 사람인 톰 브라운의 아름답고 놀라운 이야기를 경탄과 동경의 마음으로 열심히 읽었다. 


잔혹한 사슴 밀렵꾼들


어느 날, 톰 브라운은 숲에서 밀렵꾼들이 사슴을 잔혹하게 사냥하고 도살한 현장을 발견했다. 당시 도시에서 온 밀렵꾼은 사슴의 뒷다리와 어깨 부분만 도려냈는데 그 부위가 뉴욕에서 비싼 값에 팔렸기 때문이다. 밀렵꾼은 필요한 부분만 도려내고 죽은 사슴을 ‘찌그러진 맥주 깡통’처럼 내버리고 떠났다. 톰 브라운은 밀렵꾼의 뒤를 쫓으면서 여러 차례 학살 현장과 마주했고 그곳에서 가학적 쾌락의 분위기를 감지했다. 사슴들은 하나같이 톱으로 허리가 절단된 상태였고 살가죽은 아무렇게나 난도질되어 있었다. 임신한 사슴의 뱃속에서 새끼를 꺼내 나무에 던진 흔적도 있었다. 마침내 톰 브라운은 밀렵꾼들의 창고를 찾아냈다. 그는 난자당한 상태로 거꾸로 매달려 있던 사슴과 눈이 마주치자 광기에 가까운 분노에 사로잡혀 벽과 집기를 깨부수며 다시는 사슴을 건드리지 말라고 밀렵꾼들에게 경고했다. 이 일을 겪은 후 그는 새로운 목적과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사슴의 뒷다리와 어깨가 뉴욕에서 비싸게 팔린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일부 부유층의 패션 소품이나 장식품으로 이용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태국에 살던 숀부르크사슴이든 미국에 살던 버지니아흰꼬리사슴이든, 전 세계 어디서나 사슴은 뿔과 가죽을 빼앗으려는 사람들로부터 무자비하게 공격받았다. 크고 아름다운 뿔이 없었더라면 숀부르크사슴은 멸종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뿔이 오히려 저주가 되다니 너무나 슬픈 일이다. 


동물에게도 목소리가 있다


이 세상 마지막 숀부르크사슴이 죽기 전에 보았던 무기를 든 사냥꾼은 바로 우리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언제부터 인간은 자연과 소통하지 못하는 파괴적인 존재가 된 것일까. 우리는 자연을 이해하는 능력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으며 인간과 같은 방법으로 말하지 못하는 존재의 삶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자연에 미친 사람, 톰 브라운의 이야기가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자연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기괴하게 느껴지는 소리일지라도 동물에게도 목소리가 있다. 아름다운 뿔을 가졌던 숀부르크사슴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말할 수 있는 존재였다.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면 우리도 톰 브라운처럼 자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참조


『자연에미친사람』, 톰 브라운 지음, 김훈 옮김, 정신세계사(1993), p.224.

http://www.iucnredlist.org/details/4288/0

https://en.wikipedia.org/wiki/Schomburgk%27s_deer


멸종동물, 멸종위기동물,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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