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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Sep 30. 2015

절반의 줄무늬를 가진 얼룩말,
콰가의 멸종

미국, 윌리스 타워, 4 42.1미터

Willis Tower and Quagga, watercolor on paper, 76 x 57cm, 2014


인디언들에게는 백인들이 자연 안에 있는 모든 것 - 숲과 새, 짐승, 풀이 우거진 늪과 물, 흙, 그리고 대기 - 까지도 미워하는 듯이 보였다.

-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 주오,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나무심는사람(2002), p.25.




남아프리카의 건조하고 온난한 초원지대에 서식했던 콰가얼룩말은 평야얼룩말의 아종으로 몸의 앞부분에만 줄무늬가 있었다. 19세기, ‘사냥꾼의 천국’으로 유명했던 남아프리카에서는 스포츠 사냥과 가죽 무역이 성행해 콰가를 비롯해 많은 동물이 남획되었다.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인은 빈약하고 메마른 목초지에 양과 소를 방목하면서 기르는 가축과 먹이 경쟁을 벌이는 콰가를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콰가가 살고 있던 평야는 순식간에 인간의 차지가 되었고 콰가의 개체 수는 급격히 줄었다. 야생의 마지막 개체군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리스테이트에 살고 있었으나 1878년경에 자취를 감췄다. 암스테르담 아르티스 마기스트라 동물원에서 사육되고 있던 마지막 한 마리가 1883년 8월 12일에 죽음으로써 특이한 줄무늬를 가진 콰가얼룩말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콰가, 종이에 연필, 2014


콰가 복원 프로젝트 


콰가는 머리와 어깨 부위에만 짙은 줄무늬가 있었고 다리는 줄무늬 없이 밝은색이었다. 줄무늬는 다른 얼룩말처럼 개체마다 각기 달랐다. 어깨높이는 134센티미터, 무게는 226~317킬로그램 정도였다. 우두머리 수컷과 여러 마리의 암컷, 새끼들로 구성된 무리는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었고 새끼들은 성숙기에 도달하면 수컷과 암컷 모두 무리를 떠났다. 낮 동안에는 풀이 길게 자란 곳으로 이동해 풀을 뜯어 먹다가 밤이 되면 포식자의 위협을 피하고자 짧은 풀밭 영역으로 돌아왔다. 콰가 복원 프로젝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전에 콰가는 별개의 종으로 여겨졌으나 여러 박물관에 보관된 샘플을 조사한 결과 평야얼룩말의 아종으로 밝혀졌다. 그 후 라인홀드 라우 연구팀이 평야얼룩말을 선택교배하여 콰가 특유의 줄무늬를 복원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2008년, 콰가와 비슷한 줄무늬를 가진 3세대 후손이 25마리 이상 태어나는 성과를 얻었다. 다행히 콰가 복원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줄무늬의 비밀


우리는 얼룩말이나 호랑이의 줄무늬가 주변 환경에 녹아들기 위한 은폐 수단이라 배웠다. 2014년에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얼룩말의 줄무늬가 은폐의 목적이 아니라 흡혈성 파리의 시각을 교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진화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가장 최근의 연구 결과는 또 다른 가설을 제기한다. 평야얼룩말을 대상으로 서식지 16곳의 환경요인과 줄무늬 특징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줄무늬의 특징이 천적인 사자의 출현 빈도나 흡혈성 파리의 수와는 관계가 없었고 온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온도가 높은 지역에 서식하는 얼룩말일수록 줄무늬가 크고 선명했다. 콰가의 서식지였던 남아프리카는 기온이 그리 높지 않은 곳이었다. 줄무늬가 체온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라는 가설을 적용한다면 콰가의 줄무늬가 몸의 일부분에만 있었던 이유가 설명된다. 그러나 아직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라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콰가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19세기에는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나선 유럽인에 의해 여러 지역에서 무자비한 동물 남획이 이루어졌다. 멸종된 동물의 수난사는 판박이처럼 똑같다. 사람들은 탐욕스럽게 땅을 차지했고 거기에 살고 있던 동물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사냥했다. 원주민의 운명은 더욱 참혹했다. 침략자는 원주민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과 소유물 모두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노예로 팔거나 학살했다. 멸종된 과정에 대한 자료를 읽어 보면 마치 유럽인은 무인도나 새로운 땅에 자신들의 힘으로 정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착 초기에는 전적으로 원주민의 도움을 받다가 엄청난 수의 이주민이 떼 지어 몰려들면서 태도를 바꾸게 된다. 침략자는 오랜 세월 동물과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아온 원주민을 오히려 미개인처럼 취급했고 자기네 삶의 방식을 따르도록 강요했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 주오


콰가가 멸종한 시기와 동일한 1860년에서 1890년 사이는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 중에서 황금기에 해당하는 시기이자 인디언의 문화와 문명이 파괴된 잔혹한 폭력의 시기였다. 미국 인디언의 멸망사를 다룬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에는 당시의 참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이 어마어마한 금광과 자원을 대로 두고 바람을 맞으며 천막에서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디언들은 먹지도 않으면서 들소를 죽이고 쓸데없이 자연을 훼손하는 백인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왜 서로를 죽이지 않고 함께 살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백인들은 땅을 빼앗으려고 온갖 저열한 술수를 쓰다가 저항하거나 회유가 통하지 않는 인디언들을 결국에는 거의 몰살했다. 추장이나 전사들은 죽은 후에도 가혹하게 다뤄졌다. 교수형을 당한 모도크족의 추장, 킨트푸애시의 시체는 입장료 10센트를 받고 여러 도시를 떠도는 구경거리가 되었다. 인디언들은 극소수만 겨우 살아남아 침략자들이 지정한 ‘보호구역’으로 추방되었다. 그곳은 늪지대나 풀이 자라지 않는 불모지였다.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궁핍한 지역은 인디언 거주 지역이다. 인디언 문명과 부족이 멸망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한 사람의 죽음도 슬픈 일인데 공동체 전체의 죽음이라니. 그때부터 멸망이라는 단어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내가 동물의 멸종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 책과 무관하지 않다. 


진정한 자연주의자들


인디언들은 진정한 자연주의자였다. 그들이 얼마나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지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작은늑대, 말을두려워하는젊은이, 큰독수리, 붉은구름, 점박이꼬리, 외로운늑대, 열마리곰, 앉은소, 까마귀왕. 모두 추장과 전사의 이름들이고 대부분 최후까지 저항하다 죽음을 맞았다. 책에는 그들의 흑백사진도 실려 있다. 골격이 크고 바위처럼 단단하게 생긴 그들의 얼굴에서 고고함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살았던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왜 자신들을 보호구역에 몰아넣고 답답한 건물에서 살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코만치족의 추장 열마리곰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원치 않는다. 나는 바람이 거칠 것 없이 불어오고 햇빛을 가리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평원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울타리도 없고 모든 것이 자유로운 숨을 쉬는 곳이다. 벽 안에 갇혀서 죽기보다는 거기서 죽고 싶다.”


콰가를 꼭 끌어안고 어루만지는 소녀의 그림에 자연을 아끼고 사랑했던 인디언들의 마음을 담았다. 뒤편에 보이는 건물은 1974년에 시카고에 들어선 지상 108층, 높이 442.1미터의 윌리스 타워로 1998년, 말레이시아에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준공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고층 빌딩이었다. 인디언을 멸망시키고 차지한 땅에 쌓아 올린 초고층 빌딩들. 왜 백인들은 인디언들에게서 평화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지 못했을까. 왜 그토록 자연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문명을 멸망시켰을까. 


사랑과 공존의 역사가 시작되기를


멸종된 동물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인류가 저지른 폭력과 야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라진 동물의 목록보다 중요한 것은 ‘왜 사라졌는가’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과거 인류가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 반성하지 않고서는 현재를 바로잡을 수 없고 미래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충분히 반성하지 않은 것 같다. 콰가가 멸종한 19세기보다 우리의 21세기가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문제가 너무 뿌리 깊고 복잡해서 해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시간이 희망이라면, 아직 희망은 있는 것이다.”*폭력과 야만의 역사가 아니라 사랑과 공존의 역사로 나아갈 시간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 



참조


『나를운디드니에묻어주오』,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나무심는사람(2002), p.25.

http://www.iucnredlist.org/details/41013/0

http://www.arkive.org/quagga/equus-quagga-quagga/

http://www.sciencetimes.co.kr/?news=얼룩말-줄무늬의-존재론


멸종동물, 멸종위기동물, 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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