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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Oct 16. 2015

한국에서 사라진 한국표범

중국, 광저우 인터내셔널 파이낸스 센터, 438.6미터

Amur Leopard and Guangzhou International Finance Center, 76x57cm, watercolor on paper, 2015


오도산의 표범은 1973년 8월 11일, 더위가 한창일 때에 순환기 장애를 일으켜 쓰러졌다. 병든 표범은 여름이라 파리가 꼬여도 꼬리로 쫓는 것이 불가능해 구더기가 끓고 말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구하고 싶었지만 위험해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같은 달 19일, 새벽 4시 30분에 귀중한 표범은 죽음을 맞이했다. 사육된 지 11년 하고도 5개월 만이었다. 사망 시의 체중은 87킬로그램으로 과체중이었고 유감스럽게도 모피가 상해 박제는 불가능했기에 골격 표본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몸길이 98센티미터, 높이 69센티미터, 가슴둘레 95센티미터이고, 꼬리 길이는 담당자가 기록하지 않아 불명이었다.

-한국의 마지막 표범, 엔도 미키오 지음, 이은옥 정유진 옮김, 이담북스, p.110.




한국표범은 아무르표범, 만주표범, 극동표범으로도 불린다. 주로 고산지대의 산림에서 발견되며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러시아 연해주 남부에 널리 분포하고 있었다. 현재 러시아의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소규모 지역에 마지막 야생 개체군이 약 57마리 정도 남아 있다. 인접한 중국 지역에 7~12마리의 개체가 흩어져 살고 있고 북한에도 극소수만이 남아 있다. 북한 과학원이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2002년 발간한 공식자료 “우리나라 위기 및 희귀동물”에 따르면, 함경도, 평안도, 강원도 고산지대 일부에 극히 드물게 생존해 있다. 남한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르표범, 종이에 연필, 2014


표범의 땅을 위하여


최상위 포식자인 표범은 먹이만 충분하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해 살 수 있다. 그러나 2000년 국제자연보존연맹은 아무르표범을 야생에서 멸종할 가능성이 대단히 큰 위급 단계로 분류했다. 무엇보다 서식지 상실과 먹이 감소가 아무르표범의 가장 큰 위협이다. 먹이가 부족해 인근의 농장을 습격해서 농장주에게 사살되는 일도 있다. 모피 상품과 약재용으로 밀렵되기도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위협은 근친교배로 인해 생활력과 생식능력이 떨어지는 근교약세다. 극소수의 개체군으로는 정상적인 번식이 이루어질 수 없다. 현재 많은 연구자의 노력으로 아무르표범의 사촌격인 아무르호랑이의 개체 수가 의미 있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아무르표범 역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관리가 뒤따른다면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 러시아 정부는 아무르표범만을 위한 ‘표범의 땅 국립공원’ 설립을 공식 발표했고 (사)한국범보전기금에서는 비무장지대에 아무르표범을 재도입하고자 계획을 수립하고 연구 중이다.


아무르표범의 삶


아무르표범의 수명은 야생에서는 10~15년이고 사육 상태에서는 20년까지도 산다. 성숙한 수컷의 몸무게는 32~48킬로그램이고 특별히 큰 개체는 75킬로그램 이상이 나가기도 한다. 몸길이는 대략 156~190센티미터, 꼬리 길이는 60~83센티미터 정도다. 머리는 크고 둥근 편이며 여름에는 털이 2.5센티미터로 짧아지지만 겨울에는 7센티미터로 길어지는 뛰어난 환경 적응력을 보인다. 털 색깔도 여름에는 적황색이지만 겨울에는 밝게 변한다. 높이 쌓인 눈 위를 수월하게 걸을 수 있게 적응되어서인지 다리도 긴 편이다. 대부분 홀로 생활하지만 교미 후에 수컷이 암컷과 함께 지내며 새끼를 돌보는 경우도 있다. 새끼는 3개월 무렵 젖을 떼고 1년 반에서 2년이면 성숙해져서 어미 곁을 떠난다.


엔도 키미오의 마지막 한국표범 이야기


마지막 한국표범에 대해 조사하고 책으로 낸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 동물문학 작가 엔도 키미오다. 표범 생포 당시의 상황을 알고 싶어서 1975년, 창경궁에 방문한 그는 한국에 표범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국내 정세가 극히 혼란해 그런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1985년, 엔도 키미오는 다시 한국에 왔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표범을 잡았다는 한국의 산골 마을을 찾아다녔다. 그가 수집하지 않았다면 귀중한 자료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엔도 키미오의 저서 『한국의 마지막 표범』에는 표범을 잡은 사람들의 증언과 사진 자료가 실려 있다. 

한국표범이 잡힌 것은 1962년, 경상남도 합천군 오도산에서 생포된 한 마리와 1963년 경상남도 거창군 가야산 인근 마을에서 포획된 한 마리가 마지막이었다. 두 마리 다 1~2살 정도의 어린 표범이었고 소백산맥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혈연관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가야산 표범은 진돗개 한 마리를 잡아먹은 후 그 주인과 개에게 쫓기다 잡혀 바로 죽임을 당했다. 노루 덫에 걸린 오도산 표범은 당시 64세였던 사냥꾼 황홍갑 씨가 생포했다. 죽이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는 표범을 전 국민에게 보여 주고 싶었고 주민들의 도움으로 생포했다. 그 와중에 황홍갑 씨의 동생은 표범의 발톱에 상처를 입었다. 어린 표범이 아니었다면 그런 식으로 생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황홍갑 씨는 소정의 사례금을 받고 표범을 드럼통에 넣어 창경궁에 기증했다. 표범을 죽이거나 때리지 않고 온전히 생포한 이야기를 읽으며 감동을 받았다. 황홍갑 씨의 용기와 현명한 선택 덕분에 우리가 한국의 마지막 표범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창경궁에 살던 오도산 표범은 1973년 8월 11일, 순환기 장애로 쓰러졌다. 구더기가 끓었지만 위험해서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 8월 19일 4시 30분, 마지막 한국표범은 죽음을 맞았다. 창경궁에 있는 동안 한국표범은 암컷 인도표범과 교미해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모두 암컷이었지만 수컷 인도표범과 교미하려 들지 않아서 번식에는 실패했다. 


또 다른 증언과 기록들


오도산 표범이 포획된 지 2~3년 후에 전라북도 익산에서 한 교회의 목사가 암컷 표범을 팔겠다고 창경궁에 연락해 왔으나 가격을 너무 비싸게 부른 데다 호랑이 덫에 걸려 앞다리가 떨어져 나간 표범이라 사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의 글에서 오도산 표범 이후 포획된 표범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 몇 가지를 찾아볼 수 있었다. 1963년 11월 13일 자 《동아일보》에는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잡힌 몸길이 2미터, 무게 56킬로그램의 어미로 보이는 암컷 표범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오도산 중턱에서 잡힌 이 표범은 창경궁으로 간 표범의 어미였을지도 모른다. 이 암컷 표범은 철사로 된 올가미에 잡혀서 10여 시간가량 몸부림치다가 죽었다. 1970년 3월 6일 자 《경향신문》에는 경남 함안에서 나이는 18살, 몸길이 160센티미터, 무게 51.5킬로그램의 수컷 표범이 포수의 총에 맞아 쓰러졌고 가격이 70만 원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세상의 어느 산에서든지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창경궁에 살던 마지막 한국표범의 사진을 3장 보았다. 하나는 실내에서 창살 앞에 앉아 있는 사진이었고 하나는 햇볕을 쬐는지 창살 밖에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창경궁에서만 지낸 지 오래라 살이 찐 모습이다. 나머지 사진은 창경궁으로 옮겨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찍힌 것으로 날씬한 편이고 몸을 비스듬하게 하고 반쯤 누워 있었다. 오도카니 앉아 있는 살찐 한국표범의 모습이 내내 마음에 남는다. 죽지 않고 살아 준 것이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표범에게는 어땠을까. 굶주림으로 인가 근처까지 내려왔다가 덫에 걸린 어린 표범. 산에서 보낸 시간은 1~2년 남짓이고 사육장에서 보낸 시간은 11년 5개월이다. 배불리 먹고 편히 지낼 수 있어서 좋았을까?아니면 매일 밤 산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을까?창경궁이 아니라 산으로 돌려보냈다면 어땠을까?동물에게는 국경이 없다. 세상의 어느 산에서든 표범이 자유롭게 오가며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사라진 소중한 것들을 위하여


우리 민족은 자연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오랜 환난을 겪으며 소중한 것들이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사라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우리가 잃은 것은 너무나 많다. 나의 어머니도 겨우 4살 때, 전쟁 통에 부친을 잃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인 시절이라 사진이나 기록 따위도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는 아버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과 당신의 어릴 적 별명이 대한민국 집 딸이라는 것뿐이다. 모두가 고통스런 시대였기 때문에 내 어머니의 사연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마지막 한국표범 이야기를 읽으며 언젠가 할아버지의 자취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사라진 동물뿐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세우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참조 


『한국의마지막표범』, 엔도 키미오 지음, 이은옥 정유진 옮김, 이담북스(2014), p.110.

“二미터의암표범陜川郡下서아”, 동아일보(1963년 11월 13일)

“咸安에서18년된표범잡아”, 경향신문(1970년 3월 6일)

“한국마지막표범뱀가게에팔렸다”, 한겨레(2014년 1월 2일)

http://wwf.panda.org/what_we_do/endangered_species/amur_leopard2/

http://www.arkive.org/amur-leopard/panthera-pardus-orientalis/


멸종동물, 멸종위기동물,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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