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앤드 타워, 423.2미터
치명적인 다섯 개의 상처를 입었던 그날, 디지트는 여섯 명의 밀렵꾼과 사냥개가 자신의 가족인 심바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들의 새끼에게 가려는 걸 지연시키고 그들을 안전한 비소케의 경사지대로 도망치게 했다. 디지트의 마지막 전투는 외로웠고 용감했다.
- 안개 속의 고릴라, 다이앤 포시 지음, 최재천 남현영 옮김, 승산(2007), p.367
고릴라는 서부고릴라와 동부고릴라, 이렇게 2개의 종으로 분류된다. 서부고릴라에 속하는 2개의 아종은 크로스리버고릴라와 저지대고릴라이고 개체 수는 약 3만 5,000마리 정도다. 동부고릴라에 속하는 2개의 아종은 동부저지대고릴라와 산악고릴라로 나뉜다. 동부저지대고릴라는 약 5,000마리, 산악고릴라는 겨우 700여 마리가 남아 있는 상태다. 인류에게 발견된 지 채 100년이 못 돼서 멸종위기종이 된 산악고릴라는 르완다와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의 국경을 이루는 비룽가 산맥의 화산지대에 약 380여 마리가 살고 있다. 나머지 300여 마리의 개체군이 발견된 곳은 우간다 남서부에 자리한 브윈디천연국립공원이다.
예전에는 흑마술을 신봉하던 토착민과 밀렵꾼이 고릴라처럼 강한 힘을 얻기 위해 수컷 산악고릴라의 귀와 혀, 생식기와 손가락을 절단해 끓여 마셨다고 한다. 밀렵꾼은 새끼 고릴라를 잡아서 외국의 동물원에도 팔아넘겼는데 고릴라는 강한 가족 유대감을 지닌 동물이라 새끼 한 마리를 포획하기 위해서는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죽여야 했다. 수컷 고릴라의 두개골과 손이 관광객에게 팔리기도 했고 다른 동물을 잡기 위한 덫에 희생되는 일도 많았다. 고릴라 사망 원인 중 3분의 2가 밀렵꾼에 의한 것이었다. 20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멸종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꾸준한 노력으로 개체 수가 서서히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밀렵과 서식지 감소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산악고릴라는 이름대로 해발고도 2,500~4,000미터의 산악지대에 서식한다. 맹수 같은 외모를 지녔고 위협을 받으면 사나워지지만 평소에는 매우 조용하고 온순한 데다 지적인 동물이다. 나무뿌리나 껍질, 과일, 셀러리 등을 주식으로 먹는다. 이동이 제한되고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우기에는 자신과 다른 개체의 분변을 먹기도 한다. 주로 낮에 활동하고 매일 밤 다른 장소에 잠자리를 만든다. 안정되고 결속력 강한 산악고릴라 집단의 개체 수는 2마리에서 20마리까지 다양하며 평균 10마리 정도다. 성적으로 성숙한 15살 이상의 수컷이 우두머리가 되고 아직 번식 능력이 없는 8~13살 사이의 수컷과 8살 이상의 암컷 3~4마리, 8살 미만인 어린 고릴라 3~6마리가 함께 생활한다. 수컷은 성적으로 성숙해지면 등과 허벅지에 은빛 털이 나서 ‘은색등Silver-back’이라 불린다. 집단이 이동할 때는 은색등이 맨 앞에 서고 젊은 수컷인 검은등이 무리의 맨 뒤에서 가족을 보호한다.
암컷의 임신 기간은 9개월이고 한 마리의 새끼를 낳으며 3살 무렵 젖을 뗀다. 번식 연령에 도달한 성숙한 고릴라들은 종종 집단을 떠나는데 이것은 근친교배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저지대고릴라에 비해 짧은 팔과 긴 털을 지녔고 몸집은 다른 고릴라보다 크다. 평균 키는 150~180센티미터, 체중은 90~180킬로그램 정도며 콧구멍의 모양과 코에 있는 주름이 인간의 지문처럼 달라서 개체 수를 파악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평생 고릴라 연구와 보호에 헌신했던 다이앤 포시의 책, 『안개 속의 고릴라』에는 15년 동안 야생 산악고릴라와 함께 지낸 이야기와 연구 자료가 담겨 있다. 산악고릴라 연구가 꿈이었던 다이앤 포시는 제인 구달의 침팬치 장기 연구를 지원한 루이스 리키 박사와 레이턴 윌키에게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1967년, 안개가 자주 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3,000미터 높이의 비소케 산에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산악고릴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폐기종에 시달리면서도 비룽가 산맥의 우림을 장화가 다 헤질 정도로 돌아다니며 고릴라를 관찰했다. 밀렵꾼이 설치한 수많은 덫을 제거하고 다른 동물도 구조하며 서식지를 보존하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다. 몇 년간 관찰만 하면서 고릴라 무리 곁을 맴돌던 어느 날, 호기심 많고 어린 수컷 고릴라 한 마리가 다가와 다이앤 포시의 손을 만졌다. 그녀가 피너츠라고 이름 붙인 고릴라였다. 그때부터 경계심이 강한 고릴라들은 다이앤 포시를 무리 안으로 받아들였고 보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연구할 수 있었다.
1977년, 다이앤 포시가 사랑했던 고릴라 디지트가 머리와 손이 토막 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녀가 이름을 지어 준 많은 고릴라가 거듭 밀렵꾼에게 도살당하자 다이앤 포시는 밀렵꾼의 활동을 방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적으로 응징하기 시작했다. 밀렵꾼을 붙잡아 때리고 고문하거나 밀렵꾼의 소유물을 불태우고 마녀처럼 분장하고 저주를 내린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이런 소문으로 다이앤 포시는 전 세계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목격된 잔혹 행위는 많지 않으며 밀렵꾼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기 위해 과장된 소문을 퍼뜨린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980년, 지원 단체들의 압박으로 다이앤 포시는 르완다를 떠나야만 했다. 코넬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안개 속의 고릴라』를 집필한 후, 1985년에 다시 연구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연구센터로 돌아간 지 겨우 2주가 지난 후인 12월 26일, 다이앤 포시는 숙소에서 손도끼로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다.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무성한 추측만 존재할 뿐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피에르 불의 공상과학소설 『혹성탈출』에는 진화한 유인원에게 지배당하는 인류의 미래가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매우 친숙한 이야기지만 각색된 영화와 원작소설은 다른 매력이 있다. 흥미로운 우연도 있는데 이 소설이 발간된 1963년은 다이앤 포시가 비룽가 산맥의 화산지대에서 고릴라와 처음 만난 해이기도 하다. 실제로 고릴라는 평화롭고 온순한 초식동물이지만 『혹성탈출』에 등장하는 고릴라는 육식을 하며 다소 과격한 사냥꾼이나 권력욕이 강한 기업가 계층으로 묘사된다. 다른 유인원인 침팬지는 주로 지식인 계층이고 오랑우탄은 과학, 예술, 정계를 장악하고 있다.
2500년, 주인공 윌리스 메루는 베텔게우스계의 두 번째 행성 소로르에 도착한다. 지구와 쌍둥이처럼 똑같은 이 행성에서 처음 마주친 것은 야생에서 살아가는 벌거숭이 인간이었다. 옷을 입고 말을 타면서 총을 쓸 줄 아는 고릴라는 인간을 무참히 사냥하고 그 시체더미 앞에서 갖은 포즈를 취하며 기념촬영을 한다. 생포된 인간은 우리가 동물에게 행하는 여러 가지 실험을 고스란히 당하면서 각설탕을 상으로 얻어먹는다. 유인원이 실험용 발암물질을 인간에게 주사한 후에 뺨을 살짝 두들기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소설 속 인간이 처한 상황은 비극적인 동시에 너무나 희극적이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의 오만함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착각인지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움을 느꼈고 영겁의 시간, 광대한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한 우리의 현재를 겸허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다이앤 포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고릴라의 생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당시 242마리에 불과했던 산악고릴라는 완전히 사라졌을 수도 있다. 다이앤 포시가 목숨을 걸고 지켰던 산악고릴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녀의 뜻을 기리는 수많은 사람이 산악고릴라 보호에 헌신하고 있으니 앞으로 멸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믿고 싶다. 한 사람의 열정과 사랑이 얼마나 큰일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동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이 그림은 다이앤 포시를 위해서 그렸다. 지금 그녀는 평화로운 천국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디지트를 꼭 끌어안고 행복해하고 있을 것이다. 만물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함을 내려놓고 순수한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다이앤 포시처럼 우리도 자연과 동물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멸종동물, 멸종위기동물, 마운틴고릴라, 기후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