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고 하는 자는 기소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추방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총살할 것이다."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김욱동 옮김, 민음사,1998
‘미국의 셰익스피어’, ‘미국 문학의 링컨’으로 통하는 마크 트웨인이 그의 대표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 앞에 버젓이 붙여 놓은 경고문입니다. 소설을 읽으려고 책을 펼치자마자 동기, 교훈, 플롯을 찾지 말라는 이 살벌한 경고문은 독자를 의아하게 만듭니다. 이 경고의 주체는 ‘지은이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G.’이니, 작가가 군사혁명이라도 사주했단 말일까요? 어기는 자는 ‘기소’, ‘추방’, 심지어 ‘총살’까지 하겠다는 이 말에 어느 독자인들 태연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이 소설에 어떤 내용을 담았기에 이런 어마 무시한 경고문을 맨 앞에 붙여 놓았을까요? 소설에서는 저 유명한 탐험 소년 ‘톰 소여’의 친구이자 말끝마다 거짓말을 일삼는 백인 소년 ‘허클베리 핀’과 흑인 노예 ‘짐’이 자유를 찾아 모험을 나서는 이야기가 실감 나게 펼쳐집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 소여의 모험이 끝난 뒤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과 헉은 도둑들이 동굴에 감춰 놓은 돈을 찾아 부자가 됩니다. 그 뒤 헉은 더글러스 과부댁에 양자로 들어가 양복도 입고 학교도 다니고 문명인 수업을 받습니다. 누더기를 입고 설탕통에서 자유롭게 살던 헉에게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헉은 산으로 달아나 혼자 살게 됩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헉이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헉을 찾아와서 오두막에 가둬 두는 등 괴롭힙니다. 헉은 자신의 운명을 쥐고 있는 아빠로부터 탈출하여 잭슨 섬에 숨어듭니다. 거기에서 헉은 왓슨 양의 노예인 짐을 만납니다. 짐은 주인이 자신을 다른 곳에 팔아버리려는 것을 알고 도망쳐 잭슨 섬에서 우연히 헉과 마주친 겁니다. 자유를 찾아 나선 두 사람은 미시시피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모험을 시작합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남북전쟁 이전에는 극도로 혼란한 사회였습니다. 열세 살 소년 헉은 모험을 하면서 당시 미국 사회에 들끓는 갈등과 폭력을 목격합니다. 살인 사건을 보고, 강도를 만나고, 협박을 당하고, 사기를 당합니다. 그때마다 헉은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꾸며 위기를 모면하고, 우여곡절 끝에 짐과 함께 자유를 찾게 됩니다.
다시 경고문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그랬습니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래, 지은이가 경고한 대로 줄거리와 동기, 교훈, 플롯 따위는 떠올리지 말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을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의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왜 허클베리 핀과 같은 ‘불량’ 끼 넘치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주인공 헉 핀은 왜 자유를 갈망한 거지? 다양한 모험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아서 내 어린 손주들에게 전해줄까? 작가는 전통적인 소설과는 다른 구성으로 소설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던 걸까? 그런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앞세운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독자라면 누구나 열세 살 소년인 ‘헉’의 친구가 되어 친구를 응원하면서 함께 모험에 나서게 될 것 같습니다. 또한 ‘헉’과 동행하는 기분으로 600여 쪽에 이르는 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탐독하게 될 겁니다. 제가 이 소설을 읽은 지 한참 지났는데도 총상이나 추방은커녕 아직 기소조차 당하지 않고 있으니 독자 여러분도 아무런 걱정 없이 읽어도 될 것입니다. 경고문을 거꾸로 받아들여 읽는다는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요? 혹시 모릅니다. 나중에 출두 통보서가 이메일이나 우편으로 날아올지…. 그 정도는 각오하고 이 소설을 읽는다면 뭐 겁날 것이 없겠지요.
헉이 학교 근처에는 가 보지 못한 채 미시시피강 강가를 떠돌며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을 통해 한 소년의 성장이 갖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쉬지도 못하고 학교 공부, 학원 공부를 넘나들어야 하는 요즘 우리 어린 자녀들이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아울러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헉과 노예인 짐이 만나서 서로 흉허물 없는 관계를 맺어 난관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실감 나게 묘사함으로써 당대의 미국 노예제도를 풍자하는 것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합니다.
일찍이 미국의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의 모든 현대 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비롯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설이 가진 문학사적 의의가 어떻다는 것뿐 만 아니라, 미국의 남북전쟁 이전 사회상과 현실을 잘 담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겠지요. 역경과 시련이 이어지는 탈출과 모험 가운데서도 두 사람의 나이와 신분 등을 뛰어넘는 순수한 우정이 오롯이 전해지는 문장들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예컨대 이런 문장은 어떻습니까?
“짐은 달이 별을 낳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272쪽)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가운데 밤이면 여지없이 떠오르는 달과 별을 바라보는 짐과 헉의 여유, 달이 별을 낳았을 거라는 짐의 상상력, 또 그런 말을 흘려듣지 않는 헉의 구김살 없는 마음에서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보는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 문장가인 이덕무의 글에도 별을 보고 ‘달 가루(月屑)’라 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별은 달 가루’라든가 ‘달이 별을 낳았을 것’이라는, 이 말들을 언제 떠올려 봐도 달빛처럼 은근하게 미소 짓게 만드는 멋지고 아름다운 표현 아닙니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는 내내 팽팽하게 흐르는 긴장감과 동시에 누리는 싱그러움이 소설의 재미를 배가해 줍니다. 나는 이제 작가의 경고를 어긴 셈이니 ‘총살’을 당할지 모릅니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