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읽고

by 장석규

무엇보다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점을 이 여행의 미덕으로 꼽고 싶다. 눈여겨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넉넉지 못한 사람들은 그 점을 높이 치고 반길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그들과 다른 부류에 속하지만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에서 더 환호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누구냐고? 누구긴, 바로 부자들이다. 병약한 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인 새로운 여행법이 아닐 수 없다. 날씨와 기후의 변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여행법은 소심한 사람에게도 좋은데, 도둑을 만날 걱정도 없고, 낭떠러지나 웅덩이를 만날 걱정도 없기 때문이다. 여행이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고 여건도 안 됐던 사람들, 아예 꿈도 꾸지 못했던 사람들, 그런 이들이 나를 보면서 여행할 마음을 낼 것이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내 방 여행하는 법』, 장석훈 편역, 유유, 2016, 15~16쪽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여행이 일상화된 여행의 시대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여행이고, 일상이 여행의 순간입니다. ‘여행하는 인간’ Homo Viator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교통이 발달하고 정보가 실시간대로 유통되고 공유되는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여건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방 하나 싸 들고 먼 길을 나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행은 또 하나의 도전이요 모험입니다. 더구나 준비가 소홀하거나 나이 들어 떠나는 해외 여행은 체력이나 정신적 피로가 커서 생각만큼 즐겁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평소 지친 심신을 회복하기보다는 더 지쳐서 돌아오는 여행이라면 떠나지 않는 것보다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즐길 수 있는 효과적 여행법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안전하면서도 알찬 ‘내 집, 내 방으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1763~1852)가 지은 『내 방 여행하는 법』이 바로 이런 여행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도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입니다. 그자비에는 직업 군인으로 1790년 당시 법으로 금지된 결투를 벌이다가 42일간의 가택연금형을 받았습니다. 방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참에 무료함을 달래고자 글을 쓴 것이 『내 방 여행하는 법』이었습니다. 이 책을 펴내면서 군인이었던 그자비에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화려하게 등장하였습니다. 이후 그의 이 책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프리드리히 니체, 마르셀 프루스트, 알베르 카뮈 등 유명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내 방 여행법’이 공인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자비에의 여행에 대한 발상은 독특하고 신선합니다. 여행은 낯선 것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발견함으로써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낯설게 보게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의 견해는 우리의 여행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기에 충분합니다. 여행에 대한 그의 열린 생각이 가택연금이라는 상황을 ‘내 집 여행’으로 환치 시켜서 예상치 못한 문학적 성과까지 가져온 것이 아닐까요?


그는 연금된 42일동안 ‘집으로 들어간 여행’을 실속 있게 즐겼습니다. 늘 사용하던 의자와 침대 같은 가구들의 유용성을 재발견하면서 애견 로진과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벽에 걸린 판화 속의 알베르트와 로테를 보고 격한 감정에 싸입니다. 비운의 로테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알베르트의 권총을 닦는 장면을 보면서, 냉정한 알베르트를 그림에서 끌어내 요절내고 짓밟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느낍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8장 참조) 철학자들을 만나 깊은 상념에 젖어 영혼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 대로 돈 한 푼 들이지 않은 알찬 여행을 한 셈이지요.


귀족 가문 출신인 그자비에가 연금된 집은 저택이었습니다. 그를 돕는 하인도 있었습니다. 우리네 아파트나 작은 집, 아니면 골방 같은 개념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아서, 체력이 약해서, 시간이 없어서,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먼 곳으로 여행을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저는 무릎 관절이 아파서 트레킹이나 등산 등을 자제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던 적이 있습니다. 안에만 갇혀 지내다 보니 괜히 우울해지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시골에 사는 덕에 조그만 별채를 가지고 있는 게 다행이었습니다. 그자비에 흉내를 내기로 했습니다. 바깥으로 나가는 여행 대신 별채로 떠나는 여행을 즐겨보자고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별채라고 해 봐야 8평짜리 창고를 개조해서 쓰는 허름한 공간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저에게 몸과 마음의 제약을 넘어 떠나는 오감 만족 홈 여행이자 디지털 가상 여행의 출발점이 되어 줍니다. 혼자 음악을 감상하고, 독서하며, 이런저런 편집 작업도 하는 이 내밀한 공간이 저의 특별한 여행지입니다.


이 별채 여행은 우선 음악 감상부터 시작합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놓고 호르니스트의 전설로 불리는 데니스 브레인의 호른 소리를 듣습니다. 봄 햇볕처럼 따스하고 호소력이 넘칩니다. 크리스 보티가 혼을 다해 내뿜는 트럼펫 소리로 이어집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소리에 나도 덩달아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첼로의 신으로 불리는 카잘스가 연주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을 들으며 달뜬 가슴을 진정시킵니다.


그러다가 문학 여행을 떠납니다. 책을 펼쳐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톨스토이, 밀란 쿤데라, 니코스 카잔차키스, 김승옥의 문학 세계를 두루 탐색합니다. 여자 친구에게 던진 농담으로 처절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루드비크의 사연을 들으면서 말 한 마디의 무게는 어때야 하는지 상념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순간순간을 바로 태어난 사람처럼 경이와 찬탄으로 마주하는 자유인 조르바, 나도 그같이 자유를 누리며 살 수는 없을까? 부러운 마음으로 무진기행에 나기도 합니다. 적군처럼 몰려드는 안개 속에 던져진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성찰합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에 흠뻑 빠져서 상상으로나마 파울로 코엘료와 더불어 순례길에 오릅니다.

노트북 또는 스마트폰의 도움으로 인터넷 가상의 세상으로 들어갑니다. 한국의 좁은 땅을 벗어나 드넓은 사이버 세상으로 가면 버킷 리스트를 다시 만들고 싶어 집니다. 캐나다 로키산맥과 알래스카,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 이탈리아 돌로미테, 스위스 알프스, 네팔 히말라야, 몽골의 푸른 평원, 중국 차마고도…. 직접 걷지는 못해도 남들 걸었던 길을 따라 걸으면서 대리 만족합니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당신의 집에서 여행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소로는 스스로를 지금 살고 있는 고장에 처음 방문한 이방인으로 여기고, 아직 여행하지 않은 여행자의 마음가짐을 가져보라고 권했습니다. 또한, 평소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고국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다른 곳에 온 것처럼 낯설게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일상에서 익숙한 것들을 보면서도 낯설게 바라보는 습관을 들인다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멋진 곳을 여행하는 효과를 얻을 것입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여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행은 어디로 떠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몸이 불편해도, 시간이 부족해도, 예산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여행은 무궁무진합니다. 디지털 화면 속을 유영하고, 문학 속 세상으로 떠나며, 미각과 후각으로 낯선 문화를 탐험하는 오감 만족 여행, 디지털 여행, 내면 여행 등...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이 말하듯이, 내면에 품고 있는 생각이 어떠하며, 무엇을 보고 발견하여 나의 것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여행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여행을 마음껏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실속 가득한 여행으로 인생을 살찌우시기를 바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농담 속 진담을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