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잠자는 돈키호테를 깨우기

세르반테스 소설 『 돈키호테 』를 읽고

by 장석규

이곳에 굳센 기사 양반이 누워 있도다/용사의 고명(高名)을 얻었으니/그의 행적을 볼 적이며/죽음이 죽음 자체로서도/그의 생명을 꺾지를 못하였다네/세상을 우습게 알았도다/속은 허수아비였건만/겉은 무서운 도깨비였네/행운을 믿었던 사나이/미쳐서 세상을 살았고/죽어서 올바른 정신을 가졌네.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장선영 옮김, 누멘 출판사, 2016, 518쪽

이 문장은 파란만장한 생을 마치고 죽은 돈키호테의 묘비명입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서 비쩍 마른 말을 타고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생뚱맞은 모습일 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실감 있게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인 듯합니다. 오래된 기사 소설을 지나치게 탐독하다가 스스로 기사가 되어 마침내는 풍차를 들이받는 돈키호테 모습에서 우리는 재미를 만끽하고는 합니다. 그러면서 광기 넘치는 돈키호테의 그런 모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합니다. 비단 돈키호테라는 소설을 다 읽지 않아도, 아니 아예 가까이하지 않은 사람도 돈키호테에 대해 한두 마디는 할 수 있는 유명한 얘기가 바로 이 장면인 것이지요.


돈키호테를 어떤 인물로 평가하는지요? 돈키호테는 주로 나이 50이 넘어서 기사 소설을 주야로 지나치게 탐독하다가 미친 사람, 가상의 세계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착각에 빠져 황당무계한 짓을 일삼는 사람, 현실에 대한 냉철한 비판 의식은커녕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무모한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돈키호테를 단순히 이상주의자나 미치광이로 단정 짓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을 통해 각자 무엇을 느끼는가 하는 점이 아닐까요?

제가 보는 돈키호테는 적어도 기사도에 따라 강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약자를 도와주려는 - 그것이 곧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는 이상을 갖고 그렇게 행동했느냐에 대한 평가를 떠나- 인물이었으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사람입니다. 돈키호테는 자유야말로 신이 내린 가장 귀한 선물로 여기면서 자유를 위해서는 목숨도 내걸 수도 있다고 합니다. 주위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행동에 옮깁니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면서 웃어댑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란 남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저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왔습니다.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 4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건 그 안에서도 ‘동키’가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사관학교 재학 시절, 좀 이상행동을 하는 생도를 가리켜 ‘동키’라 불렀습니다. 혼자 잘난 체하거나, 비현실적인 주장을 펴거나, 우직하거나 무모한 일을 도모하거나 추진하는 사람, 조금이라도 이상 행동, 독불장군식의 돌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그런 별명을 붙여서 놀려 대곤 했던 겁니다. 하기는 규율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사관학교에서 규정에서 벗어나 봐야 얼마나 어긋난 행동을 하겠습니까? 벗어나면 최소한 벌점을 받아 외출 외박을 제한 받든가 바로 퇴교를 당하는데 그렇게 불러 댔던 걸 생각하면 실소가 나옵니다.


저는 ‘동키’ 편에 해당하지 못했습니다. 가급적 규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좋게 봐서 원칙주의자 또는 규범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용기가 부족하거나 소심한 편이었습니다. 술, 담배, 여자를 금지하는 ‘3금 제도’가 철저하던 시절이어서 감히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사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오직 조직 생활에 충실히 하고자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30년 넘도록 제복만 입고 지내다가 보니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마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빠듯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 한마디로 ‘자유인’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제복을 벗었으니 얼마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좀 치기 어린 생각을 한 것입니다. 때로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뭔가 마음을 먹으면 곧바로 실천하는 사람, 주변에서 ‘좀 이상한 것 아니야!’ 하는 눈치를 줘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던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영하 10도로 떨어지는 추운 날, 길을 가다가 불현듯 이발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불쑥 들어갔습니다. 이발사 아저씨에게 “민머리로 깎아주세요.” 하고 주문했습니다. “아니, 어디로 들어가시려고요?” 이상한 듯 물었습니다. “그냥 깎고 싶어요.” 이발사는 한참 망설이더니 기계로 밀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앞면에 붙은 거울을 보니까 머리에 고속도로를 낸 듯 시원하게 길이 나더군요. 단 몇 분 만에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겉은 속의 반영이지만, 속은 겉모습을 받아주는 스펀지와 같다는 것을 그때 실감했습니다.


민머리를 하고 다니니 만나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건네 왔습니다. “절에 들어가려고요?”, “항암 치료를 받으시나 보죠?”, “보기에 흉해요.” 하는, 좀 측은하다거나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아냐’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반응이 싫지 않았습니다. 민머리를 하고 지내는 동안 제 생활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겉모습의 변화가 나의 내면까지 영향을 주어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 그것이 곧 자유로구나'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비로소 돈키호테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엿본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제복에 익숙한 저에게는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동키’가 선사해 준 하나의 소득이었습니다.


『돈키호테』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게 돈키호테가 죽는 장면이 아닐까요? 그토록 넘치는 광기로 방방곡곡을 누비던 돈키호테도 마지막 순간에는 올바른 정신으로 돌아와 최후를 맞습니다. 이 글의 맨 앞에서 제시한 문장은 삼손 카라스코가 돈키호테의 묘비에 새긴 것을 옮겨 적은 것입니다.


“세상을 우습게 보며 행운을 믿었던 사나이, 미쳐서 세상을 살다가 죽을 때는 올바른 정신을 가졌던 사나이”

그렇습니다. 그토록 미쳐 날뛰던 돈키호테도 죽기 전에는 제정신을 차리고 할 말을 다 합니다. 생명이 붙어 있는 최후의 순간에 산초 판사와 그의 조카딸 등 유언 집행인들에게 유언합니다. 주로 각각에 대한 처우와 재산 상속에 관한 내용을 일일이 짚어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로 인해 엉터리 이야기를 쓰게 했다는 뜻에서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모험의 후편> 저자에게도 미안하다는 뜻을 전해 달라는 부탁까지 잊지 않습니다. 과연 미치광이 돈키호테가 하는 말인가, 돈키호테가 정말 미친 사람이었던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극적인 반전입니다. 그는 유언을 마치고 3일 동안 기절했다 깨었다 하다가 죽습니다.


돈키호테의 광기 넘치는 삶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의 교훈을 줍니다. 돈키호테의 마지막은 또 다른 차원에서 가르침을 줍니다. 인생을 아무리 헛되게 살았다 하더라도 죽을 때는 제대로 죽어야 한다는 것을 대변합니다.


돈키호테의 모습은 사실 누구에게나 잠재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많고 적음이 있을 따름이요, 사회적인 체면이나 개인적인 성격 때문에 드러내지 않고 지낼 뿐이겠지요. 태생적으로 점잖고 훌륭한 인격으로 남에게 감동을 주면서 살아가는 분들이야 예외입니다. 혹시 모르지요. 그런 분들까지도 한 번쯤은 정상 궤도에서 일탈해 보고 싶은, ‘동키’처럼 행동하고 싶은 생각을 가져 봤음 직하다는 얘기입니다.


내 안에서 잠자는 돈키호테를 깨워서 시험 삼아 함께 지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지루한 일상에 변화를 주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누군가가 저에게 '너 칠십 나이를 생각해 봐라.'라며 '동키' 취급을 한다 해도, 히말라야 트레킹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안 되면 네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도 기꺼이 떠날 것입니다. 내 안의 돈키호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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