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 『칼의 노래』를 읽고
저는 어린 시절부터 강을 끼고 있는 마을에서 자랐고, 살아왔습니다. 가평이 고향이어서 북한강에 나가 수영도 하고 고기를 잡으며 놀았고,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군 생활을 하며 여러 지역을 떠돌다가 은퇴 후에는 북한강 줄기의 양평 한갓진 마을에 터를 잡아 지내고 있으니, 강은 제게 마음의 고향이라 할 만큼 늘 가까이 있었습니다.
요즘도 산책 삼아 운동 삼아 북한강가를 거닐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늘 강 건너편에 시선이 머뭅니다. 강 이편에서 바라보는 강 저편은 황홀함으로 시시각각 아름답습니다. 아침 물안개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건넛마을의 신비로움, 한낮 햇볕이나 저녁노을에 반짝이는 황금빛 물비늘 넘어 보석처럼 보이는 강 건넛마을에는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곤 합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깊은 동경이자, 그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꿈을 꾸게 합니다. 때로는 헤엄을 쳐서라도 강을 건너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이편에 머무는 데 그칠 뿐입니다.
강을 건너고, 안 건넌다는 것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고대 로마의 시저는 원로파의 귀국 명령에 직면해 루비콘강을 건넘으로써 로마 역사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돌아가면 죽임을 당하고, 거역하자니 명이기에 고민했지만, 결국 무장한 채 강을 건너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침을 겪었습니다. 저는 그중 조선 시대의 임진왜란을 통해 '강을 건너고 안 건너고'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는 일본의 임진년 침략 시 가장 다행으로 꼽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방비 상태에서 왜군의 침략을 받았으면서도 임금이 적군에게 포로로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요, 둘째는 선조가 의주까지 가서 명나라로 도망칠 마음을 먹었음에도 끝내 압록강을 건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선조가 압록강을 건너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1592년 4월, 일본군은 부산포를 통해 한양으로 밀려들었습니다. 신립 장군이 충주 전투에서 대패하자, 선조는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천을 결정합니다. 영의정 류성룡은 만약 임금이 적에게 잡히면 조선의 운명이 끝날 것이라는 걱정에 파천을 막지 못했습니다. 선조는 겉으로는 백성들과 함께 도성에 남겠다 했지만, 민심은 흉흉해졌고 4월 30일 새벽, 호위하는 군사마저 대부분 달아난 가운데 궁궐을 나섰습니다. 비와 굶주림 속에서 임진강을 건너 개성에 도착한 선조는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망명할 것을 고민했고, 신하들 대다수가 이를 반대했지만, 결국 반대하는 류성룡을 파직하기까지 합니다.
한편 한양은 왜군이 무혈입성했을 때 이미 궁궐이 불타버린 뒤였습니다.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떠나자 격분한 백성들이 불을 지른 것이었죠. 왜군조차 왕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선조는 평양에 머물며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했으나 소식이 없었습니다. 왜군이 계속 북상하자 6월 11일 평양마저 버리고 영변으로 향했습니다. 그의 관심은 위험한 조선 땅에서 벗어나 명나라로 망명하는 것이었죠. 대신 세자 광해군에게 "나는 늙고 힘이 달리니 안전하게 의주로 가겠다. 너는 젊으니 여기 남아 종묘사직을 지키라."며 분조(分朝)를 명했습니다. 이는 41세의 왕이 겨우 18세의 세자에게 짐을 지우고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려 했던 비굴한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선조는 의주에서 언제든 압록강을 건널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명나라 측의 답변은 싸늘했습니다. "부득이 오겠다면 막지는 않겠지만, 인원은 백 명 이내로 하고 요동의 빈 관아 건물을 내주겠다."는, 사실상 오지 말라는 뜻이었죠.
김훈 작가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임금은 자주 울었다. 압록강 물가에서 터져 나온 그의 울음은 조정 대신들과 선전관, 명군 총병부 관리들의 입을 통해 남쪽 바다에까지 퍼져 나갔다. 피난 행궁이 들어선 의주 목사의 동헌은 처마가 내려앉고 마루가 삐걱거렸다. 골기와 틈새에서 잡초가 올라왔고, 대청 대들보 사개가 뒤틀렸다. 강가의 행궁은 빈 절간처럼 적막했다. 밀물이 강을 거스를 때마다 물은 소용돌이치며 철썩거렸고, 강 건너편은 나라가 아니었다. 북쪽의 짧은 해가 일찍 저물어 밤은 길었고 겨우내 눈이 쌓여 길은 보이지 않았다."
-김훈, 『칼의 노래』, 문학동네, 2015, 182쪽
이는 비록 작가의 상상력이지만, 사실에 근접한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군은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압록강 건너편으로 갈 수도,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였으니 말입니다. 나라도 백성의 안위도 뒷전이었습니다.
물론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선조가 왜군에게 포로로 잡혔거나,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넜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상상만 해도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을 겁니다. 그렇기에 선조가 왜군을 피해 압록강을 건너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역사상 가장 다행스러운 일 중 하나로 꼽을 만합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심약하고 무능한 지도자를 만난 백성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두고두고 교훈 삼아도 부족함이 없는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