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무엇을 할까?

by 장석규

나이가 들어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 머리도 다 굳었는데…” (…) 공부는 성공을 낳고, 성공은 성취감과 자신감을 거쳐 행복으로 이어진다. 행복은 우리 삶에 생기와 의욕을 불어넣는다. 공부는 돈보다 값진 희망과 행복을 만든다. 공부는 돈 그 이상이다.

-이시형,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중앙북스, 2009, 39쪽


지금 사회는 평생교육을 추구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배우고 익히고, 써먹을 수 있는 여건이 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 동네만 해도 지역 도서관에서, 주민자치센터에서, 교회나 성당에서, 문학 박물관 또는 문학 기념관에서 각종 강좌가 정기 또는 수시로 개설되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는 “죽을 때까지 해야만 하는 가장 가치 있는 일, 그것이 바로 공부다.”라고 ‘평생 공부’를 강조합니다. 그가 펴낸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은 나이 든 사람들이 봐야 할 필독서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이시형 박사는 이 책에서 나이 들면서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이며, ‘저위험 고수익’ 투자처라는 것입니다.


‘에이, 공부 신물 나게 했는데 공부는 무슨…’ 그런 생각이 드시나요? ‘학교 다니면서 제대로 안 했으니까 지금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시나요? 이시형 박사는 또 강조합니다. “이 나이에 무슨…” 하고 자기 스스로 한계를 짓는 게 나이 듦의 최대 약점이자 걸림돌이라고요.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고 권장합니다.


“공부는 돈보다 값진 희망과 행복을 만든다. 공부는 돈 그 이상이다.”라는 말도 깊이 와닿습니다. 공부야말로 손해 볼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기당할 염려 전혀 안 해도 되는 가장 안전한 투자처라는 겁니다. 나이 들수록 위험한 일을 하다 한번 잘못되면 복구 내지는 만회가 어렵습니다.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학창 시절에 하는 공부는 학생으로서 의무이고 책임이니까 부담을 안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했습니다. 책을 봐도 머리에서만 뱅뱅 돌다가 그냥 사라지거나 남아 있어도 가슴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시험 보고 나면 그대로 ‘반납’했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는 ‘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싶어서’ 합니다. 그러니까 차갑던 가슴도 쉬이 따뜻해집니다. 어느새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합니다.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는 자격증을 따기 위한 시험에 응시하거나 학위를 위한 공부보다는 자기 성찰과 사색, 취미 개발을 위한 공부가 일반적이지요. 가볍게 하는 공부이지요. 공부를 죽기 살기로 하는 공부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공부’라는 말에 저항감이 생길 수도 있고, 지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공부를 취미로 삼거나 친구로 여기고 함께 하기로 하면 어떨까요?


나이 들수록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해 내는 일과는 멀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창조적인 일을 해야 인지 기능도 유지하고, 정서적인 안정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나이 들어야 하는 공부 가운데 가장 창조적인 행위로 독서와 글쓰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책을 친구로 여기자는 겁니다. 책을 쓴 저자나 작가, 그리고 소설이면 소설의 주인공을 친구로 삼자는 겁니다. 고전 유명 작가로부터 젊은 신출내기 작가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초월하고 원하면 언제든, 누구든 불러낼 수 있습니다. 커피 한잔 앞에 두고 홀짝거리면서 그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친구를 골라 함께 상상 속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또는 작가들은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구하고 조언을 듣습니다. 몽테뉴나 니체 같은 철학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내 안의 나, 내가 모르는 다른 또 하나의 나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돈키호테를 만나 ‘내 안에 잠자는 돈키호테’를 깨워 함께 라만차의 풍차를 들이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안나 카레니나를 만나 속 깊은 사랑 이야기를 듣다가 절망하기도 합니다. 헤르타 뮐러 소설 『숨그네』에서 17살 난 레오폴트라는 친구를 만나 우크라이나 강제수용소의 비참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하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기도 합니다.


제가 친구를 만나는 장소는 주로 도서관입니다. 가끔 인근 카페에서 백색 소음을 즐기면서 만나기도 하지만, 역시 제일 좋은 곳은 도서관입니다. 개가식으로 된 자료 열람실에서 원하는 도서를 찾아 읽다가 시간이 부족하면 대출합니다. 내가 잘만 고르면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 부족한 문학적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으니 신나는 일입니다.


책을 친구로 삼아 가까이 지내다 보면 글쓰기가 저절로 따라옵니다. 누구나 책을 가까이하면 책에서 보고 느끼고 간접 경험하는 것들을 언젠가는 토해내고 싶어 하게 마련입니다.


케냐 작가 비냐방가 와이나이나(Binyavanga Wainaina)는 “짜릿짜릿 내리깔리는 밤과 숲의 소리, 차가운 바람이나 멀리서 들려오는 차와 그 음악 소리의 자극을 사랑”하므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케도니아 시인이자 소설가인 리디야 딤코브스카(Lidia Dimkovska, 1971~)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창 너머로 보이는 건물의 지붕을 언제나 좋아했다. 아침에는 굴뚝에 황새가 한 마리 찾아와서는 내 방을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고 또 이해했다. 그는 내 하늘이고, 나는 그의 땅 친구였다. 그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독서는 글쓰기 욕구를 자극합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이 새롭게 보입니다. 주위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게 되고 교감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자신을 더 깊이 성찰하고 발견하고, 사색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앞의 두 작가처럼 자신이 관찰하면서 느끼고 사색한 것들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글쓰기 교실을 찾아서 공부하거나 아니면 혼자서라도 글을 써보려 합니다. 요컨대 좋은 독서 활동은 글쓰기와 쉽게 연결된다는 얘기입니다. 글쓰기는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창조적인 일을 할 때 행복감은 배가됩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쓰는 글은 ‘수필’이 원만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수필은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고백하는 글입니다.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거나 발견한 삶의 의미를 기록하는 글입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자신의 소중한 경험을 나누고 전수하는 글입니다. 글을 쓰려면 고독이라는 친구와 잘 지내야 함은 물론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글쓰기에 대해 왁자지껄하다가도 정작 글을 쓸 때는 혼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필은 자신과 대면하는 글입니다. 자발적 고독을 즐기며 내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글을 쓴다면, 독자들의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글을 쓰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위대한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Vatslav Nizhinskii, 1890~1950)는 “춤추는 사람은 없어지고 오직 춤만 남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니진스키처럼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이시형 박사가 말하는 것처럼, 나이가 들어가면서 ‘진짜 공부’를 한다면 우리 삶의 영역은 무한 확장될 수 있으며, 돈보다 값진 희망과 행복을 만들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가슴에 남는 독서, 가슴을 울리는 독서, 글쓰기를 통한 자기 고백과 경험의 전수, 이 모든 것은 우리들을 가슴 벅차게 하는 멋진 일입니다. 이제 나이 드는 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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