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를 늦추는 삶의 지혜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얻는 지혜

by 장석규

정신의 노화를 피할 수 있는 한 피한다. 늙지 않는 것은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에 나는 정신의 노화를 피할 수 있는 한 피하라고, 할 수 있다면 고목에서 피어나는 겨우살이처럼 초록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라고 조언한다. (…) 예전에는 강력하고 생기 있고 완전하며 안정적인 건강이 나에게 주었던 기쁨을 이제는 정정亭亭함과 안정감에서 찾을 수 있다.

“육체가 시들어가면 정신도 어떠한 일에도 일어서지 못하고 함께 시들어간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안해린 편역, 소울메이트, 2015, 44~45쪽


저는 가끔 『몽테뉴의 수상록』을 끼고 앉습니다. 그럴 때마다 은근히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왜냐고요?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개인과 사회, 종교와 과학, 교육과 형벌, 남녀평등, 자연과 문명, 권력과 평등부터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글들이 짧은 편이어서 눈으로 읽기에는 부담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두려움을 느끼느냐고요? 어느 것 하나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습니다. 많은 것을 사색하게도 하지만, 저는 ‘멍하다’는 표현을 써야 맞을 것 같습니다. 글을 앞에 두고 몇 줄 읽다 보면 가슴이 멍해지더라는 겁니다. 한참 뒤에야 정신을 수습하고 조금씩 사색할 수 있게 되더군요.


한 세기를 이끌었던 몽테뉴 앞에서, 그리고 우리 살아가는 시대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지요. 왜냐하면 몽테뉴 스스로 던진 것이긴 하지만,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명제를 앞세웁니다. 이 명제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더군요. 무력 앞에서는 맞짱 뜰 수 있지만, - 그것이 비록 만용이 될지 언정- 이런 질문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는 게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배워서 알고 실천해 온 게 어떤 것이며, 얼마나 되는가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특히 몽테뉴가 삶과 늙음, 죽음의 문제를 다룬 부분에서는 더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더군요. 맨 앞에서 제시한 문장이 바로 나이 드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몽테뉴의 사색을 정리한 일부입니다.

나이 들어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서는 ‘안티 에이징’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항노화’ ‘노화 방지’를 위해 고가 화장품으로 피부를 관리하는 등 수선을 피기도 합니다. 그런다고 늙지 않는 것이 아니지요. 나이 들고 늙어가면서 무엇을 하면서 지낼 것인가에 앞서 우리는 나이 듦과 늙음, 나아가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몽테뉴는 더없이 좋은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몽테뉴는 말합니다. “정신의 최대한 피하고 늦추라”고. 이를 위해서 육신의 노화는 피할 수 없으므로 젊을 때처럼 생기발랄한 데서 얻는 기쁨을 추구하지 말고, 정정함을 유지하는 데서 오는 안정감에서 기쁨을 누리라고 조언합니다. 몽테뉴는 또 “빨리 늙기보다는 늙어 있는 시간을 최소화” 하라고 하면서 플라톤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노인들에게 운동이나 댄스, 젊은이들의 놀이에 참여하면서 그들이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은 젊은 신체의 유연함과 아름다움을 즐기며, 청춘의 축복과 특권을 되새겨보라는 겁니다. 다만, 노인들을 즐겁게 해주는 젊은이들에게 공을 돌리라고 합니다. 나이 든 자가 젊은이들에게 베푸는 당연한 자세입니다. 아울러 나이는 들지만, 번민과 늙음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하는 상상에서 즐거움을 누림으로써 빨리 늙기보다는 늙어 있는 시간을 최소화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 들면서 과거로 회귀하는 경향이 짙어집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지난 시절의 추억 거리를 떠올립니다. ‘그때가 좋았지’ 하거나 ‘왕년에는 내가 어땠는데’ 하면서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나이 들수록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과거 화려했던 것에서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이 드는 것을 ‘나이 먹는다’라고 말합니다.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잘 시켜야 하듯이, 우리가 ‘일 년에 한 번씩 먹는 나이’를 잘 소화하는 것이 나이 들어 ‘나다움’을 지키면서 정신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요?


시계는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시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나이 들어가면서 알게 모르게 자꾸 과거로 돌아가는 습성이 나옵니다. 친구를 만나 대화를 하거나 글을 써도 지난 이야기로 흘러 들어가지 일쑤입니다. 과거는 익숙하거나 편안한 경험의 세계인 데 비해, 닥쳐올 미래는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요, 불안을 가중하는 세계라는 의식이 기저에 깔리기 때문일까요? 지난날이 아무리 아름다웠다고 하더라도 누구 한 사람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란 현재에 충실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곤봉체조와 턱걸이, 덤벨 들어 올리기, 일주일에 3~4회 1만 보 걷기로 육체를 단련하거나 유지를 위한 운동을 합니다. 산책에서 들꽃이나 나무, 사람, 도시 특성 등 대상물에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면서 교감합니다. 밤이면 문득 머리 들고 달이나 별빛을 구경합니다. 어쩌다 낯선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여건이 되면 낯선 나라 여행도 다녀옵니다. 친구들과 만나면 가급적 옛날이야기는 피하고 그저 살아가는 재미를 대화 소재로 삼으려고 합니다. 매일 독서와 시 또는 수필 등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정신적인 젊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것들입니다.


미래를 상상하며 살아가는 일 또한 노화를 늦출 수 있는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미래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말 그대로 전대미문,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장차 일어날 일들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요? 3년 뒤에는 손주들이 훌쩍 커서 보송하던 솜털도 거뭇해지겠지, 아들은 회사에서 어엿하게 자기 일을 감당할 거고, 나는 문학성 있는 글을 써서 문학상을 받을지도 몰라 하고 기분 좋은 상상도 해 봅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도 생깁니다. 상상은 꿈이 되고, 한번 품은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성경에도 청년은 비전을 갖고 노인이 꿈을 가지라고 하지 않았나요? 상상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뇌 활동을 자극하는 일이니 그만큼 정신의 노화를 늦추게 되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나이 들면서 상상력을 키우는 방법은 시를 가까이하는 것이더군요. 시인은 보통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며, 새로 발견한 것들을 낯선 언어로 개성 있게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한 편의 시는 남다른 상상을 표현해 낸 작품입니다. 시인은 대상물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인식합니다. 낡은 언어, 죽은 언어를 거부하고 신선한 감각을 가진 언어로 표현합니다.


자기 주변에 호기심을 갖는 게 좋습니다. 호기심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합니다. 상상력은 미래를 내 것으로 만들어줍니다. 또한 미래를 오늘의 것으로 끌어내 줍니다. 상상력을 최대한 응축해 표현한 시는 때로 도끼처럼 굳은 내 머리를 쪼개버립니다. 때로는 톱이 되어 단단히 굳은 가슴을 동강내 버립니다. 시는 늘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시는 정신의 노화를 늦추는 가운데 정정함과 안정감을 유지하면서 기쁨을 누리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기에 저는 ‘늙어감’을 인정하되, 매일 호기심을 잃지 않고 주변을 바라보며 갖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정신의 푸른 싹을 틔워나가려 합니다. 그렇게 '나다움'을 지켜나가는 것이 바로 제가 찾은 노화를 늦추는 가장 귀한 지혜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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