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의 만우절

37일 차: 4월 1일 화요일 / 맑음, 바람 없음, 7~21도

by 장석규

Cea ~ A Laxe / 33.23km (누적 964.37km)


사월의 노래가 떠올랐다.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드는, 빛나는 꿈의 계절.”
T. S. 엘리엇은 사월을 잔인하다고 했지만, 청록파 시인 박목월은 생명과 빛을 노래했다.
부정 대신 생명에 눈을 돌린 그의 시선이 새삼 마음 깊이 와닿는다. 역시 그는 섬세하고 깊은 눈을 가진 시인이었다.


들과 산의 앙상했던 가지마다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연둣빛 새잎은 참새 혀처럼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다.
지나는 집집마다 피어난 자목련은 눈부시게 곱다. 신랑을 기다리는 새색시처럼, 수줍으면서도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는 그 모습이 정겹다. 정녕, 봄. 생기발랄한 계절임이 틀림없다.


오늘은 만우절. Cea에서 10km쯤 걷던 중, 장난 하나가 떠올랐다.
“어이쿠, 어이쿠, 이걸 어쩌지…”
앞서 걷던 로리아노가 깜짝 놀라 돌아본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허리춤 가방을 뒤적인다.

“여권 든 가방을 알베르게에 놓고 온 것 같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
그는 번역 앱을 열어 진지하게 상황을 파악하려 애쓴다.
“내가 다시 다녀올까, 아니면… 네가 젊으니까 부탁해도 될까?”
점점 그의 얼굴이 굳어간다.

“네가 싫으면 내가 갔다 올게.” 하고 돌아서는 척하자, 로리아노가 급히 길을 막는다.
“3~4km만 가면 버스나 택시도 있으니까… 그렇게 하자.”
“아니야. 그 사이에 무슨 일 생길지도 몰라. 최대한 빨리 가야 해. 지갑도 거기 있어.”

내 표정이 조금 느슨해졌던 걸까.
그가 조심스레 묻는다. “농담이지?”

결국 들통이 나고 말았다.

“오늘 만우절이잖아. 한 번 놀려봤어.”
그러자 그는 내 스틱을 뺏어 엉덩이를 툭 치며 웃는다.
“그래도 깜짝 놀랐단 말이야.”
만우절 장난은 그렇게 끝났고, 이번에도 로리아노 승, 장석규 패.


오후 한 시 반쯤, 길가에 앉아 배낭에서 꺼낸 빵과 치즈, 초리소, 사과로 점심을 해결했다.
로리아노는 식사 중 무당벌레를 발견하더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유치원생처럼 들여다본다.
“이탈리아에선 무당벌레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 보기 드문 곤충이거든.”
“한국엔 많아서 오히려 골칫덩이야.”
그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원래는 6km 앞 Estación de Lanín에서 쉬려 했지만, 며칠 전 앞서간 루이스가 A Laxe까지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로리아노가 그를 놀라게 해 주자며 목적지를 늘리자고 제안했다.
덥석 응하긴 했지만, 6km가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정한 거리였다면 모를까, 갑작스레 늘어난 여정은 마음도 몸도 무겁게 했다. 25km쯤 지나자, 지친 기색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오후로 갈수록 햇살은 점점 뜨거워졌다.
내가 점점 뒤처지자, 로리아노는 다시 장난을 건다.
“연세 드신 분이라 힘드시죠?”
스틱 하나를 뺏더니 슬쩍 내민다.
“잡으세요. 제가 끌고 가드릴게요.”
“싫다.”
이번엔 나를 업겠다는 시늉까지 한다.
“이 녀석, 못됐구나.”
한국어로 욕 아닌 욕을 하고서, 그에게 내가 하는 대로 따라 말하라고 했다. 로리아노가 나에게 '로 소노 안시아노'를 따라 하게 했던 것처럼...
“나 못된 사람, 나 못된 사람.” 곧잘 따라 했다.
하지만 이내 내가 그에게 말했다.
“아냐, 넌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야.” 하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목적지를 2km쯤 남겨두고 지나던 마을 어느 집. 울타리 너머 막 현관문을 나서던 할머니에게 붓꽃을 가리키며 예쁘다고 했더니 그 붓꽃을 선물로 주겠다고 한다.
극구 사양했지만, 끝내 꺾어주려는 그 마음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기에,
“꼬레아요.” 하고 대답하며 연세를 여쭈니, 85세란다.
고운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참 곱운 분이셨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고통의 상징이면서도, 내게는 평안의 기호다.
예수께서 나의 고통까지 짊어지셨기에, 그 앞에 설 때마다 묘한 위로와 기쁨이 함께 찾아온다.

사순절을 이 길 위에서 보내며, 곳곳에 서 있는 교회와 십자가는 은혜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도와주는 표지판이 되었다. 고속도로 옆 철망에, 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를 세우는 건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작은 믿음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렇게 한 걸음 더 믿음 쪽으로 다가가 본다.


카미노에도 기피 인물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간단히 씻고 나오니 저녁 시간.
로리아노와 루이스는 이미 식당에 가 있다며, 식사가 곧 시작된다고 문자를 보냈다. 서둘러 나가 보니, 나까지 아홉 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카미노에서 몇 번 얼굴을 본 적은 있지만, 인사를 나눈 건 처음인 이들도 있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함께 걷거나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둘 오르내렸다.

그중 누군가의 이름이 나오자, 누군가 손으로 가위표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몇 차례 마주친 적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무슨 얘기인지 짐작이 갔다. 한 명은 남자, 또 한 명은 여자. 그들의 공통점은—말이 너무 많다는 것. 어떤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그들 옆에 있으면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탈리아 출신. 로리아노도 그들을 떠올리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말이란 것도 적당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지나치면 소음이 된다.
카미노처럼 긴 여정을 함께 걷는 길 위에서는, 말수보다 온기가 더 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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