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빼먹기와 역행군

38일 차: 4.2. 수요일, 맑음, 바람 없음

by 장석규

A Laxe ~ Bandeira 16.47 + 8.2km = 24.67km, 누적 거리 978.26km


카미노 걷기는 어쩌면 ‘거리 빼먹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비야에서 시작해, 하루하루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조금씩 덜어내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이제 남은 거리는 고작 35km. 그런데도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에 로리아노와 함께 걸으면서 내가 우리말로 "기분 좋다"고 외치면, 로리아노는 "몰토 엘레멘타"라고 소리를 높인다. 반대로 로리아노가 어설프게 "기분 좋다"라고 말하면 내가 "몰토 엘레멘타"라고 이어간다. 38일 만에 950km를 걸어, 이제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코앞에 다가왔으니 그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그 기쁨에 휩쓸리기보다는 더 조심하려고 다짐했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더 겸손한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때는 멜리데에서 넘어져 코를 다치고, 입술이 터져 앰블런스 신세까지 졌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의 쓰라린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특히 다리가 아픈 내리막길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길을 걸으면서 돌을 밟을 때마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두 개의 스틱을 이용해 최대한 균형을 잡는다. 차가 다가오는 길을 건널 때는 반드시 차가 멈추는 걸 확인한 후에야 건넌다. 길을 건널 때는 서두르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할 때는 도로 왼쪽으로, 빠르지 않게 걸어간다. 마을을 지나갈 때는 여유를 가지며 울타리 너머 정원도 구경하되, 스틱은 잠시 사용하지 않는다. 늦잠 자는 아기 또는 낮잠 자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게 위해서다. 숲길에서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걸음을 천천히 늦춘다. 결국, 아무리 서두를 일이 있어도,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이제 남은 거리 35km는 하루에라도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짧게 짧게, 마음도 가다듬으며, 몸에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오늘은 의도치 않게 조금 무리하고 말았다. 거리로 보면 절대 무리가 아니었다. 원래는 Dornelas 마을까지 20여 km 정도만 가면 되니까. 하지만 공립 알베르게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사설 알베르게에 묵기로 했다. 체크인 과정에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루이스와 로리아노의 체크인 절차를 지켜보며 주인의 태도를 살폈다. 주인의 모습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고, 친절하지도 않았으며, 가격도 생각보다 비쌌다. 안내 앱에서는 숙박비가 15유로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17유로로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저녁식사 13유로, 아침식사 5유로, 침대 시트 2유로, 세탁기 4유로, 수건 2유로 등 추가 비용이 더해져 한 사람당 내야 할 돈이 40유로를 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침대 시트를 받지 않고 체크인을 거부했다. 그때 로리아노가 방으로 들어가려던 중 나를 보고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이곳에서 묵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그래서 다음 마을로 더 가려고 한다"고 하자, 로리아노도 대금을 반환받고 나를 따라 나왔다.

"다음 알베르게까지 가려면 12km가 더 남아 있어. 너무 힘들지 않겠어?"
"괜찮아. 왠지 여기서 머물기 싫어졌어."
"그럼 4km를 되돌아가자. 그곳에는 공립 알베르게가 있어."
"너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너는 여기서 쉬어라. 나 혼자 갈게."
"우리가 산티아고까지 함께 가기로 했잖아. 어떻게 너 혼자 가게 할 수 있어? 함께 가자."

결국, 우리 두 사람은 4.1km를 되돌아가기로 했다. 세비야에서 시작한 긴 여정 중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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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에, Cáseres 전에 헤어졌던 클레멘스를 다시 만났다. 그는 마드리드 일을 마치고 살라망카에서부터 다시 걷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묵시아까지 가려고 한다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계속해서 역행군으로 반데이라 Bandeira로 향했다. 며칠 동안 함께하던 독일 순례자들이 우리를 보고 놀라며 우리에게 왜 되돌아가는지 물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세비야까지 다시 가기로 했다"며 웃으며 되돌아갔다. Bandeira 공립 알베르게에는 우리 두 사람과 자전거 순례자 한 명, 이렇게 셋만 있었다. 참 한적했다. 로리아노는 숙박비까지 내겠다고 했지만, 나는 내가 내겠다고 고집했다. 슈퍼마켓에서 저녁과 아침을 살 거리를 샀다. 돈은 조금 더 들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총 36유로가 들었지만, 내가 고생시킨 만큼 내가 다 내겠다고 했으나, 로리아노는 10유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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