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깡통에 담긴 어떤 희망

39일 차: 4.3. 목요일, 구름/비바람 조금, 기온 7 ~ 18도

by 장석규

Bandeira ~ Outeiro 17km, 누적 거리 986.46km


약 4.1km, Bandeira ~ Dornelas 구간을 세 번이나 걷다니… 어제 Dornelas 알베르게까지 갔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Bandeira로 되돌아가서 자고, 또다시 걸어가고 있다. 두 번씩이나 왔다 갔다 한 길인데도, 묘하게도 그 풍경은 새롭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지만, 로리아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저 걷는 데만 집중한다. 오늘따라 로리아노도 조용하다. 저 멀리 혼자서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는다. 내 마음도 그를 이해한다. 아무래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테니까.


한 시간쯤 지나자, 이제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구릉과 구릉을 넘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자동차 길과 카미노가 반복적으로 교차한다. 로리아노는 아마 카페인이 부족한 건지, 지나가는 마을마다 카페를 외쳐보지만, 문을 연 곳은 어디에도 없다. 단 한 군데 간판은 있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래도 길에서 중간중간 만나는 유칼립투스 숲은 우리를 반기듯 그 진한 향기로 호흡을 가볍게 해 준다. 이 숲은, 우리가 얼룩지고 때 묻은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만들어 산티아고에 입성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그동안의 고생을 치유하듯 더 편안한 마음으로 산티아고에 들어가라는 뜻일까. 무엇이든, 유칼립투스 숲에서만큼은 속도를 늦추고 더 머물고 싶었다.


숲길 한가운데, 이탈리아 청년 지오반니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번엔 예술적인 감각을 발휘한 작품이 나무에 걸려 있었다. 25살의 지오반니는 뭔가 인생의 답을 찾고자 순례길에 나섰다고 했다. 몇 번이나 만났던 그가, 이제는 한 구간씩 먼저 지나가버려서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순례길에서 버려진 깡통들을 하나하나 엮어 걸어놓은 것이다. 나무나 전봇대, 터널 등 자기가 올라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기어 올라가 깡통 꾸러미를 걸어 놓는다. 로리아노와 나는 깡통을 발견할 때마다 반갑게 "지오반니가 지나갔네" 하며 웃고, 그 흔적을 찍어 사진으로 남긴다.

오늘 발견한 작품은 전위 예술 전시회에 출품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시각적 효과나 구성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동안 줄줄이 꿰어서 여기저기 걸어두었던 작품의 결정판이라고나 할까. 수십 년 된 아름드리나무에, 하얀색 판데기를 배경으로 깡통 꾸러미를 매달아 놓았다. 깡통을 소재로 삼는 이유는 그 고리에 줄을 꿸 수 있어서였다. 길을 가다가 보이는 빈 깡통들을 주워서 줄에 꿴다. 줄은 길가에 흔히 있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마신 음료통을 아무렇게나 버리고 가는 것을 보며, 그가 이 작품을 남기고 싶은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지오반니가 이렇게 깡통을 모아 매달아 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게 물어봤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쿨하게 답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깡통을 걸어놓는 것은, 버려진 것들을 다시 의미 있는 것으로 되살리는 일종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첫째로, 자기가 마신 빈 깡통을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일 수 있다. 둘째로, 환경을 보호하는 운동을 실천하는 것이리라.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이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는가.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 역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스스로 처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오늘로 산티아고가 바로 코앞이다. 내일이면 1,000km 순례 대장정이 마무리된다. 물론 나는 산티아고에서 묵시아(Muxia)를 거쳐, 피스테라(Fisterra)까지 계속 가려고 한다. 피스테라는 내가 꼭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순례 때, 그리고 두 번째 순례 때도 피스테라에 들렀지만, 이번에는 꼭 그곳에 가서 뭔가 특별한 일을 하려고 한다. 친구의 아들 ㅇㅇㅇ 군을 위해,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거두기 위해 피스테라로 가고자 한다. 그곳에서 기도하며, 그의 완치와 회복을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나의 카미노 기도는 간단하고 반복적이다. 숨이 가쁘게 내딛는 걸음걸이 속에서 기도를 잊지 않는다. 십여 년 전, 네팔에서 대지진을 만나 죽을 뻔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나는 "하나님, 살려주세요"라는 말만 반복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 절박함이 오늘날의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카미노에서의 기도 역시 그렇다. 하나님,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치유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세요. 그들에게 치료의 광선을 비춰주세요.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 주세요. 그 간단한 기도가 계속되었다. 이렇게 단순하고 반복적인 기도를 1,000km 가까이 걸으며 이어왔다. 기도는 끝이 없기에, 그 끝을 찾을 수 없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아서, 언제나 숨 쉬는 순간마다 계속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과 함께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13:00쯤, Outeiro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숙박비는 10유로, 공정 가격이었다. 주위에는 마트나 식당도 없어서, 오스피탈레로 추천을 따라 인근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배달시켰다. 로리아노가 피자를 먹고 싶다고 해서, 내가 제안했다. "피자 한 판과 파스타 한 사람 분, 나눠 먹는 게 어떨까?" 그는 동의하며 그렇게 주문했다. 이제는 뭐든지 나누어 먹는 게 익숙한 로리아노가 쉽게 동의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내일은 맑은 날씨가 되기를 바란다. 서쪽 하늘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는 걸 보며, 내일의 희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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