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서 부른 마지막 합창

40일 차: 4. 4. 금요일, 흐리고 비 온 뒤 갬, 기온 4~18도

by 장석규

Outeiro ~ Santiago de Compostela 17.0km, 누적 거리 1,003.4km


로리아노와 코리아노. 정확히는 이탈리아노 로리아노와 코리아노 장. 우리가 힘들 때나 즐거울 때 함께 외치던 '산타 루치아'와 '오 솔레 미오'의 노래도, 오늘로 막을 내린다. 스페인 대평원을 가로질러 울려 퍼졌던 우리의 노래, 산과 구릉에 메아리쳤던 그 소리는 사라졌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가슴 속에 남으리라.

로리아노는 영어를 못하고, 나는 이탈리아어를 모른다. 조금씩 아는 스페인어로 몇 마디 나누다 막히면 서로 통역 앱을 들이대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40일 동안 하루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걷고, 먹고, 자고, 웃고, 때론 침묵했다. 눈빛과 표정, 몸짓과 눈치로 서로에게 다가갔고, 언어를 넘어 우정이 자랐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 성을 쌓는다’는 옛말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마흔 개의 만리 성을 함께 쌓은 셈이다.

이 길에서 친구가 되고, 떨어지지 않은 채 마흔 날을 함께 걷고, 오래도록 알고 지낸 벗처럼 지냈던 나날들.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러나 이젠 각자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리 좋아도 친구와는 결국 헤어져야 하고, 아무리 행복해도 순례길에 머물 순 없다.

예수님의 산상변모 사건이 떠오른다. 얼굴이 빛나고 옷이 하얗게 변한 예수님의 곁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을 본 베드로가,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지어 여기 머물게 하소서”라고 말하던 장면. 나 또한 유칼립투스 향기 가득한 숲길을 지날 때면, 그저 그 자리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머물 수는 없었다. 발걸음은 늘 다음 길을 향해야 했고, 그렇게 걸어온 끝에, 오늘 12시 30분경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1,003km를 걸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아무리 물을 아무렇게 마셔도, 닥치는 대로 먹어도 탈이 없었고, 무릎이 아파 절뚝이며 걸을 때조차 포기하지 않았다. 로리아노와 함께 어깨동무하며 걸어온 이 모든 날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아침은 어제 배달해 먹고 남은 피자 한 조각과 바게트에 올리브유를 듬뿍 뿌려 만든 샌드위치로 간단히 때웠다. 07시 50분경 출발, 국내에서 들려온 대통령 탄핵 소식에 무거운 마음으로 걷고 있는데, 로리아노가 묻는다.
“왜 아침부터 슬픈가요?”

그는 내가 조용하면 무슨 일이 있는 줄 안다.
“그냥 생각 좀 했어.” 하고 넘기려다, 이번엔 “너와 곧 헤어져야 하잖아. 그게 서운하고 아쉬워서 그래.”라고 말했다.
사실, 나랏일이 어찌되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10시 30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몰려오던 먹구름이 결국 비를 뿌린다. 마지막 날만은 비가 안 오길 바랐지만,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듯, 날씨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우의 쓰는 일에 익숙해져선지, 비를 맞아도 덤덤했다. 잠시 비를 피하자며 로리아노와 길가의 어느 헛간으로 들어섰다. 그때, 우의도 없이 달려오는 순례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함께 묵었던 스페인 사라고사 출신 후안(65세)이었다. 우의를 씌워주고 잠시 몸을 녹이다 다시 길을 나섰다.

A Veiga라는 마을을 지나는데 작은 교회 이름이 ‘Santa Lucia’였다. 로리아노가 반가운 듯 ‘산타 루치아’를 부르기 시작했고, 나도 덩달아 목청껏 합창했다. 그것은 우리의 마지막 합창이었다.

어느새 산티아고 시내로 접어들었다. 분주히 오가는 차량들, 점점 분주해지는 거리. 나는 왼편, 로리아노는 오른편에서 말없이 걸었다. 마치 이제는 각자의 길로 나아가야 함을 연습하듯, 그렇게 나뉘어 걸었다.
마침내, 산티아고 성 안으로 들어서는 문 앞. 누가 보든 말든, 둘이서 의미 없는 듯 의미 깊은 함성을 질렀다.
“우리가 해냈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대성당 앞에 이르자, 비를 맞으며 우산을 쓴 순례자들, 우의를 입은 단체 순례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서로를 껴안고, 사진을 찍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도 그 감정을 고스란히 나눴다.
마요르카에서 온 여성 순례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는 1,000km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잠시 젖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다시 피스테라로 갈 준비를 해야 했다.
미리 예약해둔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수잔나라는 오스피탈레라가 너무도 친절하게 맞아준다. 18유로가 전혀 아깝지 않은 숙소.
약속대로 로리아노와는 서로의 모자를 바꿔 썼다. 그 행위 하나에도 깊은 우정이 담겼다.

알베르게에서 잠시 쉰 후, 순례자 사무소로 향해 인증서를 발급받았다. 김지영 씨라는 자원봉사자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그녀가 인증서 발급비 3유로를 대신 내주었다.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에, 피스테라에서 돌아오면 음료라도 대접하겠노라 약속했다. 연락처라도 받아둘 걸 그랬다. 스페인에서 25년을 살아온 그녀, 정말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이었다.

저녁 무렵, 로리아노는 오는 9월, 북쪽길과 프리미티보 길을 함께 걷자며 약속을 청했다.
“가서 아내한테 허락 받아야지.” 라고 하자, 그는 익살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 못 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더 애틋하다.

그리고는 어깨동무를 하고 마지막으로 노래를 불렀다.
“산타 루치아~ 오~ 솔레 미오오오~” "로리아노~ 코레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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