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테라를 향한 침묵의 여정

41일 차:4.5. 토요일, 비, 기온 7-17도

by 장석규

Santiago de Compostela ~ Negreira 20.47km, 누적 거리 1023.9km


참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알베르게를 나설 때부터 내리는 비는 약해졌다 잦아들기를 반복했고, 때로는 세차게 쏟아지다가도 갑자기 햇살이 비추는 등, 종잡기 힘들었다. 우의 단추를 잠갔다 풀었다, 모자를 썼다 벗었다를 여러 번 반복해야 했다.


오늘은 유독 발걸음이 무거웠다. 꼭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은의 길' 1,000km를 늘 함께해 온 로리아노와 아쉬운 작별로 여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둘이 함께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하고 바르를 나섰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는 순간,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지만 애써 참았다. 재빨리 카미노 방향으로 돌아서 로리아노를 향해 손을 들자, 그 역시 손을 흔들어주었다. 내가 쓰던 러닝 모자를 쓴 로리아노와, 그가 살라망카에서 샀던 빨간 모자를 쓴 내가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점차 멀어졌다.


이제 혼자서 120km를 더 가는 순례 여정에 오른다. 묵시아를 거쳐 땅끝마을 피스테라까지, 짧게는 4일, 길게는 5~6일이 걸리는 코스이다. 친구의 아들 십자가를 품고 '은의 길'을 걸어온 나는, 피스테라에서 그 십자가를 걸어놓기 위해 순례 여정을 이어간다. 이 길 위에서 친구 아들과 그의 가족, 그리고 내가 마음 깊이 중보 했던 친구들과 가족들이 겪었던 환란, 고난, 아픔 등 모든 시련과 상처가 깨끗이 정리되기를 간구하며 걷는다.


어떤 자세로 남은 여정에 임할까 고민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 속에서 걷기로 다짐했다. 그동안 로리아노와 함께 노래하고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며칠만이라도 혼자 오롯이 기도와 묵상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길에서나 알베르게에서 만나는 순례자들에게는 '올라' 또는 '부엔 카미노'와 같은 간단한 인사만을 건네고, 내면의 묵상과 기도에 충실한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걸으니 저절로 기분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마침 몸이 아픈 아들의 십자가를 맡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순례길 마지막 여정에 올랐노라, 피스테라에 가서 아들의 십자가를 잘 전하겠노라 하니, 아들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주었다. "할렐루야!" 감사의 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런데 또 이런 경우가 있단 말인가. 얼마 안 가서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친구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동네 교회에서 만나 늘 함께 마음을 나눴던 친구다. 전립선 암이 발견되었으며, 신장에도 문제가 있다는데 구체적인 건 상세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그 친구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 때마침 아내가 친구의 입원 소식을 전해 온 것이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친구에게 간단히 문자만 보냈다.

"친구야. 힘내자. 하나님께서는 그 사정을 다 아시고 책임져 주실 거야."
얼마 안 있어 친구에게 답이 왔다.
"고마워~ 친구야~!^^*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기 마련이니 이 또한 지나가겠지..."

그래, 그래! 친구의 말처럼 이 어려운 일이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 대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고난과 시련으로 친구를 단련시키려는 뜻인가?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이미 수많은 풍파를 겪었는데, 아직도 이토록 단련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란 말인가. 회의감이 든다. 아무쪼록 친구가 오늘의 아픔을 잘 이겨내고 우리 함께 마음껏 웃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피스테라까지 가는 순례 여정에 침묵 속에 걸음걸음마다 꾹꾹 눌러 기도드려야 하리라.

12시 반쯤 네그레이라 Negreira 시내를 통과한다. 사설 알베르게들 간판이 유혹한다. 꾹 참고 공립 알베르게로 가야지 마음먹는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문 여는 상점이 없을 테니, 오늘 점심부터 내일 잠심까지 네 끼니를 미리 준비해야 했다. 마침 슈퍼마켓이 보인다. 바게트 빵과 초리소, 초콜릿, 요거트 등 10유로 조금 넘게 사 들고 시내를 벗어나 위치한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공립 알베르게는 1인용 침대로만 되어 있어 잠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1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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