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만나는?

by 장석규


프리미티보 길 3일 차 / 9월 28일(목), 맑음

살라스 ~ 캄피에요 / 32.6km, 누적 거리 538.2km


호흡을 길게 가져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루 이틀 걷고 끝나는 여정이 아니고 서두를 일도 아닌데, 자꾸 마음이 앞서 호흡이 가빠진다. 애초 살라스에서 출발해 20km 지점인 티네오(Tineo)라는 작은 도시에서 머무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결국 12km, 세 시간을 더 걸어 캄피에요(Campiello)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살라스 알베르게에서 빵 두 개와 삶은 달걀 한 개로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한 시간은 일곱 시였다. 아직 날은 어두웠지만 발길은 가벼웠다. 살라스를 벗어나면서부터 두 시간 내내 오르막과 숲길이 이어졌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별빛이 좋아 일부러 플래시도 켜지 않은 채 걸었다. 길에 걸그적 대는 돌들이 조심스러웠다. 돌이 잘 보이지 않아 뒤뚱거릴 때면 스틱으로 중심을 잡았다. 하늘에 총총한 별들이 힐끗힐끗 내 발걸음을 훔쳐보는 듯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부에 이르니 하늘이 환하게 열렸다. 동쪽 하늘을 뒤돌아보았다. 막 떠오르는 해가 산봉우리마다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은 해발 고도 1,000m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긴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는 날이었다. 그야말로 '긴 호흡'으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날이다. 지나는 마을마다 교회에 들러 잠시 기도와 묵상을 반복했다. ○○ 군을 위한 기도가 절실했다. 엊그제 갑작스러운 고열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찌 기도하지 않고 지낼 수 있겠는가. 걷는 중에 수시로 기도를 올렸다. 교회가 열려 있으면 잠시라도 들어가 기도를 드리고, 닫혔어도 닫힌 문을 부여잡고 기도를 드렸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수없이 많은 교회를 지나게 되고 길가에 세워진 크고 작은 십자가를 만난다. 나는 큰 도시의 대성당에 들어가 관람도 하고 잠깐씩이나마 기도를 드리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대성당에서보다 소박한 작은 교회에서 오히려 더 큰 은혜를 체험하는 편이다. 일정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대성당은 돈을 낸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걸린다. 들어가서는 지나치게 화려하게 치장된 모습에 놀라곤 한다. 그런 성당에서 과연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역사하실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반대로 소박하기 그지없는 작은 교회에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생각이 나 절실한 기도도 나오고, 잠시라도 앉아 묵상하다 보면 참된 평안을 느끼곤 한다. 오늘 역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나를 이끌어 기도하게 하며 평안을 선사해 준 곳은 바로 소박하기 그지없는 작은 교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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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만나는 무엇일까?' 어제까지는 호두와 사과와 밤처럼 배를 채우는 먹을거리였다면, 오늘은 내게 무엇이 주어질까 은근히 기대하며 걸었다. 첫 번째 고갯길에 올라서면서부터 멀리 보이는 전경, 확 트이는 시야가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늘의 만나는 대자연이 연출해 내는 맑디맑은 공기, 그리고 멋진 자연경관이었다. '너 한국에서 미세먼지 엄청 마셨잖아. 중국과 몽골에서 날아드는 황사 때문에 괴로웠잖아. 어떤 때는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 정도였잖아. 그런데 여기는 어때? 이왕 왔으니 이런 깨끗한 공기 마음껏 마시고 가. 그러면 네 육신도, 마음도, 영혼도 맑아질 거야. 멋진 풍경도 실컷 즐기고 말이야.' 그렇다. 해발 고도 1,000m에 이르는 산길을 오르내리며 32km가 넘는 거리를 걸었어도 크게 힘들지 않은 것은 오늘의 만나, 맑은 공기와 멋진 풍광을 실컷 맛본 덕분이었다. 사설 알베르게 카사 에르미니아(Casa Herminia)에 여장을 풀었다. (숙박비 13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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