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티보 길 2일 차 / 9월 27일(수), 흐리다 맑음
그라도 ~ 살라스 / 22.1km, 누적 거리 505.6km
지난밤은 카미노에 와서 가장 오랜 시간 잠자리에 누워 있던 밤이었다. 무려 열 시간이나. 아니, '잠을 잤다'기보다 '그냥 침대에 누워 있었다'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문제는 내 침대 위층에 있는 순례자가 침대를 심하게 흔들어대는 바람에 겨우 들던 잠에서 자꾸 깨어났다는 것이다. 침낭을 들고 식당으로 나갈까 망설였지만, 깜박 잠이 들라치면 또다시 침대가 삐걱대고 흔들렸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수면의 질은 가장 떨어졌던 밤이었다.
아침이 되어 알베르게 전체에 불이 켜지고서야 순례자들이 일어났다. 중간에 짐을 싸 들고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간에 일어났지만, 몸이 찌뿌듯했다. 배낭을 대충 싸 들고 식당으로 내려가니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러 차례 걸었다던 나이 지긋한 남자 오스피탈레로가 기다란 식탁에 토스트 빵과 잼, 우유와 커피, 사과 등을 차려놓고 순례자들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알베르게를 나선 것은 7시가 훨씬 지나서였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큰 고갯길 두 개를 넘어야 한다. 고도가 서서히 높아지는 데다 오르막 내리막이 꽤 길게 이어지는 길이다. 어제 짧은 호흡으로 오르내렸다면 오늘은 긴 호흡으로 걸어야 하는 날이었다.
엘 프레스노(El Presno) 고개를 넘으면서 유명을 달리한 순례자 두 사람의 기념비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한 사람은 47살, 한창 젊은 나이였다.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아내와 아들, 부모가 세운 묘비석 앞에 발길을 멈추고 잠시 묵념했다. 순례길 위에서 쓰러졌으니 복 있는 사람들일까. 남겨진 그들의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을까. '주님 품 안에서 영면하소서.' 그의 안식을 빌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도전이 먼저일까, 용기가 먼저일까.' 이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 본다. 물론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다. 프랑스 길을 걷다가 '이왕이면 걷지 않은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에 이 프리미티보 길을 택했다. 난이도가 좀 더 높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고개를 넘다가 두 사람이 유명을 달리한 기념비를 보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일흔 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길에 나선 것은 참다운 용기일까, 아니면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도전한 무모함일까. 진정한 용기와 무모한 도전은 종이 한 장 차이일 것이다.
'일단 도전하면 용기가 생기는 것 아닐까?' 용기를 내서 도전했다가 중간에 쓰러진다면 그것은 무모한 도전으로 끝나고 말 일이다. 그래도 나는 어떤 일이든 먼저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고 싶다. 결과는 그다음의 문제이다. 프리미티보 길로 접어든 것도 바로 그런 마음에서였다.
목초지마다 소나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도 평온해졌다. 걸음을 멈추고 소 한 마리가 풀을 뜯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한 발짝, 한 발짝, 아주 천천히 나아가며 풀을 뜯는다. 몇 발짝만 더 다가서면 무성한 풀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데도 소는 딱 한 발짝씩만 움직였다. 소가 움직일 때마다 "뎅그렁, 뎅그렁" 워낭소리가 났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였다. 귀에 거슬리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귀를 정화해 주는 듯했다.
'하나님도 내 목에 종을 달아놓고 계신 것은 아닐까.' 내가 어디를 가든, 무슨 일을 하든, 내가 움직일 때마다 울리는 소리를 듣고 나의 상황을 파악하시며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리라. 마치 목장 주인이 소나 말, 양에게 풍족한 꼴을 제공하듯이 말이다. 내 목에서 울리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나는 만족해요, 이것만으로 감사해요' 하는 소리일까, 아니면 '부족해요. 왜 이만큼만 주나요. 더 많이 주세요' 하고 불평 가득한 소리일까. 내 기도는 '주세요, 주세요' 하는 동냥 기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현실에서는 마치 '결핍증에 걸린 환자'나 다름없다. 워낭소리처럼 듣기에 적당한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작은 것에라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습성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제의 '만나'는 호두와 사과였다면, 오늘의 '만나'는 밤이었다. 가끔 나타나는 숲길은 유칼립투스와 참나무, 그리고 밤나무들로 가득했다. 유칼립투스 나무 특유의 향은 피곤함을 덜어주었다. 밤나무 밑에는 알밤이 밤송이 사이사이에 떨어져 있었다. 알밤들을 주워 호주머니를 두둑이 채웠다. 알베르게에 밤을 삶을 냄비 하나만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것 역시 힘든 걸 잊는 비결 가운데 하나다.
오후 1시 반쯤 살라스(Salas)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밖에서 기웃거리는 나를 본 한 순례자가 손짓으로 안으로 들어와 기다리라고 알려주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왔다는 젊은이였다. 다른 순례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알베르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순례자 한 사람만 더 들어왔을 뿐, 다른 순례자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립 알베르게 운영에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괜한 걱정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 와서까지 의리를 따질 필요는 없다. 그래 봐야 나만 속상할 뿐이다. 서둘러 이런 감정을 떨쳐내는 것이 상책이다.
부엌을 둘러보니 있을 건 다 있었다. 모처럼 만에 주방 시설을 갖춘 알베르게에 머물게 된 것이다. 얼른 밤을 씻어 삶았다. 곧 추석이 다가오는데, 이렇게라도 고향의 맛을 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프리미티보 길에 접어들어 이틀째 무사히 걸었다. 그동안 발에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던 반창고도 모두 떼어버렸다. 카미노 3주만 지나면 온몸이 '카미노 모드'로 전환되었던 십 년 전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제 산뜻한 기분으로 걸을 만하지 않겠는가 기대했다. 햇볕 아래 나가 벤치에 앉아 발과 장딴지를 위로했다. 안티푸라민을 듬뿍 바른 뒤 완전히 스며들 때까지 문지르고, 힘껏 눌러주었다. 무릎을 주먹으로 두들겨주고, 발목과 발가락을 비틀어주고 돌려주고…. 아픈 발과 다리의 수고에 비하면 이 정도로는 별다른 보상이 되지 못하리라. 하지만 길 위에서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몸을 돌보는 그 시간 자체가 순례가 주는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