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티보 길 5일 차 / 9월 30일(토), 맑음
베르두세도 ~ 카스트로 / 25.4km, 누적 거리 591,2km
어제저녁에 남긴 밥과 빵 한 조각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7시 15분에 출발했다. 한 시간 만에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을 오를수록 발아래 펼쳐진 운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구름바다가 넓다는 것은 오늘 걷는 카미노의 해발 고도가 높다는 증거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고개 정상부의 풍력 발전기들(Aerogeneradores, 고도 1,020m)을 지나 한참 아래로 펼쳐진 운해는 올라오는 동안 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장관을 이루었다. 시야에 다 담을 수 없이 드넓은 구름바다, 아무리 파노라마로 돌려가며 찍어봐도 하나의 앵글에 잡히지 않았다.
급한 내리막 경사를 조심스레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가까워지는 구름바다에 마치 다이빙하듯 풍덩 뛰어들어 헤엄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 구름바닷속에는 무엇이 감춰져 있을까. 신비감이 더해졌다. 음악가들은 이런 광경을 어떻게 표현할까. 해안 절벽에 철썩이는 파도 소리? 해변으로 조용히 밀려들어 소곤소곤 몽돌 굴리는 소리? 내가 작곡을 할 수 있다면, 잔잔한 바다에 거품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작은 배 한 척에서 들릴 듯 말 듯 울리는 뱃고동 소리를 표현하고 싶다.
살리메(Salime)를 향하는 급한 내리막길에서 마침내 구름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원한 공기가 훅 하고 밀려왔다. 가시거리는 불과 10여 미터, 사방이 어둡다고 할 정도로 앞으로 가야 할 방향마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 발짝 앞만 보면서 돌을 피해 발을 디딜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주 천천히, 조심조심 내려오는 어느 한순간, 앞을 가리던 운무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는 '짜잔' 하고 나타나는 광경, 푸르디푸른 나비아 강(Río Navia)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살리메 댐(Embalse de Grandas Salime)이 담은 호수이자 나비아 강이었다. '내 마음속에 흐르는 강이 있다면 언젠가 저렇듯 절경으로 흐르는 강이면 좋겠다'는 허황된 생각도 들었다.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건너편 산자락을 황금색으로 물들이는 햇빛이 한순간에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굽이굽이 돌아 살리메 댐에 이르렀다. 작은 동굴을 통과해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130미터 높이의 댐은 웅장했다. 댐을 가로질러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니 바르가 보였다. 호수를 내려다보는 경관이 뛰어난 곳이었다. 호텔과 알베르게를 겸하고 있어서 혹시나 하고 하루 묵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예약 손님들로 다 찼다고 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인 뒤 햄을 곁들인 빵 한 개로 점심 식사를 대신했다. 이십 분가량 쉬다가 일어났는데 갑자기 하늘이 빙 도는 것이 아닌가. 사실은 하늘이 돈 것이 아니라 내가 돈 것이었다. 맥주 한 잔의 취기가 나를 현기증 나게 한 것이었다.
내내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오르막이 이어졌다. 왼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걷노라니 느닷없이 '울음보'가 터지는 것이 아닌가. 철근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막은 저 댐이야 쉽게 무너지지 않겠지만, 내 마음속 울음보는 너무나 허약했다. 내 안에 가득 담아두었던 그리움을 틀어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십 년 전 나의 카미노 기도가 허망하게 끝났다는 생각에, 졸지에 손자를 잃은 슬픔을 가득 담아 두었던 보가 터져 목울대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하늘에 총총한 별빛을 따라 길을 걸어온 것은 홀연히 곁을 떠나 별이 된 손자를 보고 싶은 마음 때문 아니었던가. 그동안 겨우겨우 참아왔던 그리움을 더 이상 가둘 수 없었다. 한 번 터진 울음보는 다시 틀어막을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시후를 우리 곁으로 돌려보내 주실 수는 없느냐고 간곡하게 올리는 호소는 통곡으로 변해 있었다.
두 시쯤 도착한 그란다스 데 살리메(Grandas de Salime) 마을은 축제가 벌어진 것인지 요란한 밴드 소리에 사람들의 소리가 어우러져 시끌벅적했다. 알베르게 두 곳에는 모두 'FULL'이란 팻말이 걸려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추천받은 호스텔마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안내 앱을 확인해 보니 5.6km를 더 가면 카스트로(Castro)라는 마을에 알베르게가 하나 있는 것으로 나왔다. '그래, 거기까지 가지 뭐! 아직 힘도 남았고, 물도 있잖아. 물론 거기까지 간다고 해서 침대가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잖아? 거기에서도 침대가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러면 노숙이라도 해야지, 달리 방법이 없잖아.'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사이 발걸음은 이미 마을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늘 보장된 길만 걸어온 적이 없다. 막연하나마 믿음을 갖고 미련한 듯 걸어왔을 뿐이다. 어찌 보면 앞날을 모르기 때문에 걸어올 수 있었다. 불확실하기에 오히려 단단히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올 수 있었다.
한 시간 좀 더 지나 카스트로 마을에 단 하나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바르를 겸하고 있었다. 여자 오스피탈레로에게 물어보니 "No hay cama. (침대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인근 호스텔에 여유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곳도 자리가 없다고 했다. 이어서 도착하는 순례자 몇 명은 사정을 알더니 곧바로 택시를 불러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나는 일단 오스피탈레로에게 사정 이야기를 더 해보기로 했다. "식당에 자리를 펴고 자도록 해 줄 수 없겠느냐"라고 물었다. 그녀의 답은 역시 "NO"였다. 어조가 단호했다.
드디어 '노숙'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알베르게 바로 옆에 작은 교회가 있는데, 마침 입구에 포치(porch, 지붕이 달린 현관)가 있는 것이 아닌가. 노숙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이슬은 피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시 그 알베르게로 들어가 커피를 주문해 놓고 일기장을 폈다. 콘센트를 찾아 핸드폰 충전기도 꽂아 놓았다. 땀에 젖은 옷은 햇볕에 말리면 되고, 샤워는 하루 생략해도 문제 될 것 없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이제 편안히 잠만 잘 자면 되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십 유로에서 십육 유로나 하는 숙박비도 절약하고, 복작대는 알베르게보다 훨씬 편했다. 혼자서 노숙할 생각이었는데, 헝가리 청년 한 명이 함께하게 되었다. 싸비(Szabi)라는 이름을 가진 스물아홉 살의 미남 청년이었다. 싸비는 노숙에 미리 대비한 듯 에어매트를 꺼내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더니 침낭을 펴고 자리에 누웠다. 나는 교회 옆 쓰레기통에 버려진 종이상자 두 개를 가져다가 자리에 깔고 그 위에 침낭을 폈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태양에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나도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포근했다. 잠을 청하는데 온 동네 개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짖어댔다. 옆을 보니 누워 있는 싸비 얼굴도 노을빛에 황금빛으로 번득였다. 다시 침낭에서 빠져나오는데 누군가가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저 청년은 젊으니 그렇다 쳐도, 너는 늙어가면서 대체 무슨 짓이냐?' 하지만 나는 마음이 편안했다. 그 누가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로움'과 '평안함'을 침해할 수 있으랴. 번지는 노을 속에서 편안히 잠드는 이런 노숙은 그 어느 황제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