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최초로 노숙한 이야기

by 장석규

프리미티보 길 6일 차 / 10월 1일(일), 맑음

카스트로 ~ 폰사그라다 / 20.6km, 누적 거리 611.8km


아무래도 내 '생애 최초 노숙'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알베르게를 미리 예약하지 않겠다는 나의 원칙은 '여차하면 노숙까지 하겠다'는 각오의 다른 표현이었다. 공립 알베르게는 선착순으로 받지만, 순례자들이 주로 예약하는 곳은 사설 알베르게다. 숙소 예약을 해두면 주변 경치를 즐기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예약에 얽매여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행동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감수해야 한다. '알베르게 잡기 경쟁'이라는 말도 있지만, 결국은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 아닐까. 나는 '경쟁' 아닌 경쟁에서 일부러 밀린 셈이었다.


노숙하면 '풍찬노숙(風餐露宿)'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바람을 먹고 이슬을 맞으며 잔다는 말로, 객지를 떠돌아다니며 고생하는 삶을 이른다. 그렇다면 내가 지난밤에 한 노숙은 진정한 풍찬노숙은 아니었다. 교회 입구에 있는 포치(porch)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하늘을 가려 이슬을 피할 수 있었으니, '바람을 먹고 지붕 아래서 잤다'는 의미에서 '풍찬숙'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음식 대신 바람이나 맞았으니 '풍숙'을 한 것에 불과하다 할 수도 있겠다.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차디찼다. 골판지 한 겹 위에 얇은 침낭을 펼친 것만으로는 냉기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잠은 쉬이 오지 않았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등과 옆구리, 엉치뼈가 자꾸 배겼다. 자다 깨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어서 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깨어난 시간이 6시 26분, 어제 사두었던 빵 두 개 가운데 한 개를 노숙 동료인 싸비(Szabi)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빵 한 개와 사과 한 개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다. 다시 짐을 꾸려 나선 시간은 아침 7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어제 뜻하지 않게 5.6km를 더 걸은 덕분에 오늘은 무리 없이 폰사그라다(Fonsagrada)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걸은 거리는 20.6km였다. 거리는 짧았지만 쉬운 코스는 아니었다. 해발 1,100m가량 되는 아세보 봉(Alto do Acebo)을 오르내리는 데만 네 시간 이상 걸렸다.


닷새 동안 걸어온 아스투리아스(Asturias) 지역을 벗어나 갈리시아(Galicia) 지역으로 넘어오는 동안, 배를 채울 만한 곳이 딱히 없었다. 배고픔을 이기며 내내 걷기만 하다가 집 몇 채 안 되는 바르베이토스(Barbeitos) 마을의 작은 바르를 발견하고서야 겨우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열두 시 45분에 폰사그라다에 도착해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았다. 숙박비는 10유로였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배정받은 침대에 짐을 풀어놓은 뒤 몸을 씻고 곧바로 그날 입었던 옷을 세탁한다. 이건 꼭 따라야 하는 규칙은 아니지만, 순례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절차'처럼 굳어졌다. 그런데 옷을 빨 때마다 늘 구정물이 나온다. 바짓가랑이야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지났으니 그렇다 쳐도, 속옷에서는 왜 구정물이 나오는 걸까? 프랑스 길도 그랬지만, 특히 프리미티보 길은 대도시나 교통량이 많은 도로를 지나는 곳이 거의 없다. 그만큼 '청정지역'을 통과하는데도 말이다.


'땀을 많이 흘렸으니 그런 거겠지' 싶으면서도, 혹시 한국에서 마신 황사나 미세먼지가 땀구멍으로 배출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 카미노를 걷는 동안 내 안에 쌓였던 노폐물이 모조리 빠져나가면 좋겠다. 내 마음과 영혼에 누적된 쓰레기들도 싹 다 배출되면 얼마나 좋으랴.


갈리시아 주의 루고(Lugo) 지방에 속하는 폰사그라다는 해발 930m에서 1,000m 사이의 산꼭대기에 있는 소규모 도시다. 인구는 대략 1만여 명으로, 쉬는 동안 시내 곳곳을 둘러보니 병원, 약국, 마트, 식당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다 있는 듯했다. 일요일이라 내일을 위한 아침 식사와 간식거리를 사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내일도 아침을 굶고 길을 나서야 할 처지였다. 저녁 식사를 한 식당에서 바게트 두 조각이라도 챙겨 넣어야 했다. '아, 배곯는 순례자여!'


생애 최초의 노숙은 불편했지만, 그 속에서 예상치 못한 자유와 평안을 느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몸은 여전히 고되었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옷에서 나오는 구정물을 보며 몸과 마음의 정화를 생각했고, 문 닫힌 상점들 앞에서 '배곯는 순례자'의 현실을 마주했다. 길 위에서의 모든 경험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불편함 속에서 감사함을 찾고, 부족함 속에서 채워짐을 배우는 것. 이것이 카미노가 나에게 가르쳐주는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24-1.폰사그라다 식당에서 즐거운 한 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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