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티보 길 7일 차 / 10월 2일(월), 맑음
폰사그라다 ~ 오 카다보 / 24.4km, 636.2km
어제저녁에 남긴 밥과 빵 한 조각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6시 50분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오늘도 해발 1,026미터 고갯길을 오르다 보니 쉬이 지쳤다. 프리미티보 길에 와서 1,000미터 넘는 고개가 몇 개인지 세어보기도 하고 그 이름을 외워두려고도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매일 큰 고갯길을 한두 개씩 넘다 보니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어디였는지 기억해 내기가 쉽지 않다. 주의 집중력도 흐트러지고 기억마저 흐릿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 보다. 아무래도 나이 탓도 있겠지 싶다.
출발하고 한 시간 만에 만난 마을의 바르는 굳게 닫혀 있었다. 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문이 열릴 기세는 보이지 않았다. 나도 조금 지켜보다가 포기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두 시간가량을 더 걸으니 이번에는 '깔딱 고개'가 나타났다. 그동안 지나온 길 가운데 가장 급경사인 오르막에다 꽤 길어 보였다. '원 스텝 원 레스트(One Step One Rest)' 기법을 적용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숨이 차오르고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배낭은 더 무거워지고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가다 서다 반복하며 숨을 돌려보는데, 지나가는 다른 순례자들은 잘만 올라갔다. '저들은 폐활량이 더 크겠지? 유럽인들은 남녀노소 다리도 탄탄해 보이고 마치 걷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잘도 걷는구나.' 체구도 작은 데다 헐떡이며 오르는 사람은 나뿐인 듯싶어 괜히 위축되기도 했다.
얼마나 올랐을까. 고갯마루를 지나면서 순례길 옆에 폐허로 남은 돌담이 보였다. 몬투토 왕립병원(Real Hospital de Montouto) 터였다. 몬투토 병원은 14세기에 설립되어 17세기말 현재 위치에 지어졌다고 한다. 20세기 초까지 활동을 유지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돌로 쌓았던 건물은 다 무너지고 그 흔적만 쓸쓸히 남아 있을 뿐이다. 순례자들의 발길은 뜸했고, 그곳에 들르는 이들조차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차가 다니는 포장도로에 올라서니 저 아래 집 몇 채가 보였다. 알베르게를 나선 지 네 시간 만에 만나는 아 라스트라(A Lastra) 마을이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바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허기지고 지칠 대로 지친 내게 '오아시스'가 나타난 것이었다. 미리 배낭 멜빵과 허리끈을 풀고 한쪽 어깨띠를 풀었다. 도착하자마자 바르로 뛰어들 만반의 예비 자세를 취한 셈이다.
바르에 들어가 여섯 번째 대기자로 줄을 섰는데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목이 점점 더 타올랐다. 앞서 주문하는 순례자들도 꽤 갈증이 났나 보다. 시원한 맥주와 콜라가 인기 품목이었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다. 콜라 하나와 사과 한 개, 달콤한 초콜릿 빵 한 개를 주문했다. 바깥으로 나와 의자에 앉자마자 콜라 뚜껑을 따서 크게 한 모금을 들이켰다. '콜라가 원래 이렇게 시원한 것이었나?' 새삼 놀라웠다. 평소 콜라를 잘 마시지 않던 나는 카미노에서 처음으로 마시는 콜라였다. 사과를 베어 물었다. 새콤달콤한 맛과 향이 온몸에 기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배낭을 둘러멨다. 빵 한 개를 더 넣었지만 배낭은 오히려 훨씬 가벼워진 듯했다. 발뒤꿈치로 디뎌도 한결 편해진 느낌이 들었다. 다시 급격한 오르막이 시작됐다. 해발 고도 1,004미터나 되는 아 폰타네이라(A Fontaneira)를 향해 '원 스텝 원 레스트'로 천천히 오르는데 다른 순례자들이 쏜살같이 추월했다. 나는 여전히 이마에서 구슬땀이 쏟아졌다. '콜라 한 잔 마신 게 다 땀으로 배어 나오는가 보네.'
오늘 역시 공립 알베르게에 여장을 풀었다. 두 개의 도미토리에 침대 22개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한적했다. 오 카다보(O Cádavo) 마을 초입에 있는데 순례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쳤다. 오후 한 시에 문을 열었는데 오후 네 시가 넘도록 프랑스에서 온 부부 등 네 명밖에 없었다. 그동안 묵었던 그라도, 살라스, 폰사그라다 등 다른 공립 알베르게 대부분이 그랬다.
공립 알베르게가 순례자들 사이에 인기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접근성이 좋지 않은 것도 아니다. 시설도 개보수하여 비교적 깨끗했다. 숙박비는 10유로 안팎으로 사설 알베르게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주방은 코로나 영향으로 아직 이용에 제한을 두는 곳이 많은데, 혹시 바로 이 점이 순례자들이 공립 알베르게를 외면하는 이유일까. 아무튼 나는 더없이 좋다. 침대가 삐걱대거나 흔들릴 일이 없어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으니 말이다. 힘든 깔딱 고개를 넘고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 만난 아 라스트라 마을의 바르처럼, 조용하고 편안한 공립 알베르게는 나에게 또 다른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