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해진 순간의 그 아득함

by 장석규

프리미티보 길 10일 차 / 10월 5일(목), 맑음

페레이라 ~ 멜리데 / 20.2km, 714.1km


'좋은 일 뒤에 화가 따른다'는 말처럼, 마귀 사탄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좋다고 늘 좋은 것만은 아니고, 일이 잘 풀린다고 끝까지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은 이 순례길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알베르게 체크인 시 아침 식사 비용 6유로를 냈으니 다른 때보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할 수 있었다. 오르막 내리막도 심하지 않고 쾌적한 '천 년 숲길'이 자주 나타나는, 걷기에 최적의 길이었다. 멜리데(Melide)는 프리미티보 길과 프랑스 길이 만나는 곳으로 인구 1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다. 순례자들 사이에는 문어 요리(Pulpo)로 유명하여 통과 의례처럼 문어 요리를 맛보기도 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남은 거리가 60~70km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느긋한 마음으로 멜리데에 들어섰다.

그런데 너무 '느긋해진 것'이 문제였다. 긴장의 끈을 풀면 안 되는데, 느슨하게 풀어진 결과는 '처참함'으로 다가왔다. 멜리데 산타 마리아 성당 바로 앞에서 정면으로 넘어지고 만 것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보이자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 카메라 앱을 열다가 그만 발을 헛디뎠다. 순간, 정말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아차' 할 순간조차 느낄 새 없이 바닥에 고꾸라진 그 순간의 '아득함'이란….


배낭을 멘 채 나는 마치 큰절을 하듯이 코와 입술로 지구에 마주 닿은 채 한참 동안 정지 상태에 있었다. 동네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일으켜주려고 했지만,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나 앉았다. 심한 통증이 밀려들고 입으로 피가 흘러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십여 명의 동네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부축해주기도 하고, 얼굴을 들여다보며 피를 닦아주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뭐라고 말을 걸어왔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였다.

그런 가운데 남자 한 사람이 '구급차'를 불렀다며 잠시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하고는 건물 벽에 기대앉도록 도와주었다. 그제야 휴대폰 카메라 앱을 열어 내 모습을 비춰봤다. 콧등이 깨지고 인중이 파여 피가 흐르고 있었다. 윗입술도 터져 있었다.


그 사이 구급차가 '위잉'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 구급 요원이 내 상태를 확인하더니 차에 타라고 했다. 나는 번역 앱을 통해 "저는 순례자인데 그냥 걸어갈 수 있다. 다만 구급차에서 소독만 해 주고 간단히 약만 발라주면 고맙겠다."라고 요청했다. 구급 요원은 "아니다. 당신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라며 거의 강제로 차에 태우다시피 했다. 모여 있던 동네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손을 흔들어주며 환송해 주었다.

오륙 분가량 달렸을까. 멜리데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지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현대식 2층 건물이었다. 1층 응급실에는 여자 의사와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여자 의사가 곧바로 내 다친 상태를 확인하더니, 얼굴의 피를 닦아내고 소독을 해주었다. 쓰라려 저절로 눈이 찡그려졌다. 부상 부위에 약을 바르고 거즈를 붙여주었다.

치료비가 얼마인지 물었더니 의사가 큰 소리로 "그라티스, 그라티스(Gratis, Gratis)"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무료'라는 뜻이었다. 합당한 치료비를 내고 싶다고 말하는데도 아니라고 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Muchas Gracias)"를 반복하며 그냥 병원을 나와야 했다. 구급차는 나를 성당 인근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까지 태워다 주었다. 뜻하지 않게 멜리데 주민들과 스페인 당국에 톡톡히 신세를 졌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공립 알베르게의 오스피탈레로가 내 얼굴을 보더니 안쓰러웠는지 두 개 밖에 없는 1인용 침대 가운데 하나를 배정해 주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세면장에 전신 거울이 있었다. 거울 안에 웬 낯선 사람이 서서 나를 내다보는 것 같았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유대인들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 빼빼 마른 몸에 얼굴에서는 핏물이 흐르고 콧잔등에 거즈를 붙이고 있는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바로 나였다.


일기를 쓰려고 알베르게 식당에 앉았다. 일기장을 펴긴 했지만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핏물이 입술을 타고 입으로 흘러 들어갔다. 거즈를 꺼내 닦아내지만, 그것도 그때뿐 금세 다시 흘러내렸다. 맞은편 벽에 붙은 포스터에 눈길이 멈췄다.

Camino de Santiago, Camino Seguro (산티아고 순례길, 안전한 길)

마음에 찔리는 듯했다. '안전한 카미노'라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안전한 길'에 오점을 남긴 듯한 가책이 느껴졌다. 그러나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도로를 왜 그렇게 만들었냐고 책임을 돌릴 수도 없다. 굳이 내 책임을 가볍게 하려면, 나의 교만과 태만을 비집고 들어온 마귀를 들먹일 수밖에 없으리라.


집 떠난 지 만 한 달, 카미노를 걸은 지 28일, 다리가 조금 아프고 발이 일부 부르튼 것 말고는 그동안 아파서 고생한 적이 없었다. 길에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주워 먹고 매일 물을 갈아 마시면서도 배탈 한번 나지 않았었다. 메세타 지역에서 온종일 비를 맞으며 추위에 떨었던 것과 한두 차례 잠을 잘 못 자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적 빼고는 달리 문제가 없었다. '이제 힘든 고비도 다 넘기고 산티아고에 거의 다 왔으니 별문제 없겠지.' 하고 방심했던 것이 사달을 일으킨 것이다. 잠깐의 실수로 얼굴이 흉물처럼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입술이 조금 깨졌으나 먹을 수는 있다. 다리는 멀쩡하다. 나의 길을 계속 가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교만한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장난친 마귀를 머쓱하게 만들려면, 쉬지 않고 계속 걸어 나가야 하리라. 이 느슨해진 순간의 아득함이 나에게 준 교훈을 잊지 않고, 다시 단단히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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