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티보 길 11일 차 / 10월 6일(금), 맑음
멜리데 ~ 오 페드로우소 / 33.7km, 747.8km
어젯밤, 다친 얼굴에서 진물이 나와 입으로 흘러들어 가는 바람에 거즈로 자주 닦아내야 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요 며칠 밤마다 왼발에 이상 증세가 심하게 나타났다. 걸을 때는 괜찮은데, 자려고 침낭에만 들어가면 발가락부터 발등까지 후끈 달아올랐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깜박깜박 선잠을 자는 사이에 중학교 3학년 때 일이 꿈에 생생하게 나타났다. 3학년이 되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자면 1학년 때부터 해 온 밴드부를 그만두어야 했다. 한 달 내내 방과 후 연습에 빠져 도망을 다니다가 어느 날 선배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고등학교 선배인 밴드부장이 내게 제안을 해왔다. "너 '빠따' 50대만 맞으면 (밴드부에서) 빼 줄게." 나는 이를 악물고 '빠따' 50대를 기어코 다 맞았다. '이제 밴드부를 그만두고 공부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구나' 생각하며,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밴드부장 왈, "새꺄, 너는 그 깡으로 계속해!"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결국 졸업 때까지 밴드부를 계속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참 '미련퉁이'였다.
중학교 때 그 일이 지금 이 시점에 꿈에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너는 비록 다쳤더라도 그 깡으로 쉬지 말고 네 갈 길 가라'는 뜻이 아닐까. 비몽사몽 간에도 그 메시지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아침 7시에 기상했다. 몸도 다쳤겠다, 컨디션도 좋지 않아 하루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하루 더 머물면 오히려 침체할 게 뻔했다. 저녁때 사두었던 즉석 빠에야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배낭을 둘러멨다. '대신 오늘은 조금만 걸어야지' 출발할 때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멜리데를 벗어나자마자 만나는 길은 그동안 걸어온 프리미티보 길과는 사뭇 달랐다. 오르막 내리막도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어서 걷기에 최적이었다. 숲길도 좋고 걸그적 대는 돌들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전형적인 프랑스 길 분위기였다.
프랑스 길과 만나서 그런지 순례자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십 년 전 묵었던 리바디소(Ribadiso) 마을의 한 바르에서 카페 콘 레체 한 잔을 마시니 좀 우울했던 기분이 싹 가시는 듯했다. 세 시간 만에 북쪽 길(Camino Norte)과 만나는 아르수아(Arzúa)에 들어설 때까지 평이한 길이어서 부담이 없었다.
19.4km 지점인 아스 퀸타스(As Quintas)에서 쉴까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역시 내 발걸음을 이끄는 이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6km 정도만 더 가서 멈추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데, 누군가가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두어 시간만 더 가면 산티아고까지 20km만 남게 돼. 더 가. 더 가.' '그렇지. 맞아, 그러면 남는 시간에 묵시아와 피스테라까지 갈 수 있겠다. 그러지 뭐.' 얼굴에서는 진물이 계속 흘러나와 자주 닦아내야 했다.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프랑스 길과 북쪽 길에서 온 순례자들이 합쳐져서인지 오후인데도 순례자들이 많았다. 단체로 온 순례자들 같았다. 사람마다 가리비가 그려진 작은 배낭을 메고 가볍게 걷고 있었다. 사리아쯤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때마침 점심을 먹는 시간인지 바르나 레스토랑마다 순례객들로 꽉 차 시끌벅적했다. 나는 눈도 돌리지 않고 내 갈 길만 바라보며 행진하듯 발을 옮겼다. 그렇게 해서 33km, 여덟 시간을 훌쩍 넘겨 오 페드로우소(O Pedrouzo)의 한 사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사설인데도 숙박비는 10유로라고 했다. 50유로짜리 지폐를 냈더니, 여자 오스피탈레로가 체크인을 취소하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소리 하는 건가' 하는 뜻으로 "No!" 하고 큰 소리를 내니 옆에 있던 직원이 잔돈으로 바꿔주겠다고 했다. 스페인에서는 50유로, 100유로짜리 지폐를 쓰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오비에도에서도 잔돈으로 바꾸고 싶어 은행 두 군데 들렀었는데 자기네 은행에 계좌가 없다고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알베르게는 저렴한 가격인데도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자기가 원하는 침대를 골라 자리 잡을 수 있는 데다가 침대 시트 또한 깨끗한 흰 천으로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주변에 꽤 여러 개의 알베르게가 있어서 서로 경쟁하는 덕분에 가성비 좋은 알베르게에 묵을 수 있었다.
이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거리는 약 20km, 다섯 시간이면 도달할 거리에 당도했다. 이후에 어떻게 할까는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맡겨두자. 어차피 내가 나를 온전히 조정하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중학교 시절의 꿈처럼, 비록 몸은 힘들고 다쳤지만 '그 깡'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 그 힘에 이끌려 오늘도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