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그 후 2일 차 / 10월 9일(월), 맑음
묵시아 ~ 피스테라 / 32km, 누적 거리 822.1km
'세상의 끝'이라는 피스테라(Fisterra) 바닷가, 대서양 망망대해를 향해 선 카미노 0.0km 표지석에 마침내 당도했다. 프랑스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출발한 지 32일 만이다. 이곳으로 올라오면서 길가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에 들러 무사 완주 감사 기도를 올렸다. 십 년 전에는 이곳 절벽에 서서 통곡의 기도를 올린 적이 있다.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며 수술을 반복하며 차츰 병마에 무너져 가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어 카미노를 걸으며 눈물의 기도를 드렸고, 마지막 날 이곳에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우리 사랑하는 손자 시후의 고통을 다 가져가 주세요. 고통의 나날을 제발 끝내주세요.' 하고 간절히 호소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병이 나아서 고통이 사라지기를 그토록 간절히 바랐건만, 그게 아니었다. 나의 순례길 기도를 끝내고 꼭 한 달 만에 시후는 하늘나라로 갔다. "엄마, 나 졸려!" 단 한 마디만 남기고 훌쩍 떠난 것이다. 더 이상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갔으니 나의 피스테라 해안 절벽에서 올린 눈물의 기도는 그래도 응답된 것인가. 그것은 우리 가족이 원했던 방식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고 말았다.
'하늘의 천사가 된 시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야 어쩔 수 없지만, 더 이상 그로 인해 지나치게 애통해하지 말라. 이제 시후를 놓아주라. 그리하여 자유로이 세상을 비추는 더 큰 별이 되게 도와주라.' 이것이 이번 카미노 여정을 통해 비로소 얻은 답이다. 물론 내가 얻은 이 답이 정답일 수도, 오답일 수도, 혹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에도 더 이상 연연하지 않으련다. 나름대로 답을 얻었다는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귀하다.
지금 내가 내려다보는 피스테라의 바다는 조용하다 못해 호수처럼 평온하다. 어제 묵시아 성당 해변에서 바라보던 바다 또한 같은 북대서양인데 어떻게 이다지도 대조적일까. 파도가 바위를 철썩이는 묵시아 해변, 이내 세찬 바람과 함께 밀려들던 해무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던 그곳과는 달리, 이상하리만큼 잔잔한 피스테라의 바다. 끼리끼리 앉아 속삭이는 순례자들의 이야기 소리가 더 크게 들릴 정도다.
먼바다 수평선을 초점 없이 바라보다가 바위에 쪼그리고 앉아 일기장을 폈다. 지난 카미노 일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메세타 지역을 걸으며 광활한 대지 위에서 꿈을 새겨보았던 일. 섭씨 5도로 급격히 떨어진 기온에 온종일 비를 맞던 날, 입과 목덜미로 흘러 들어가는 콧물 반 빗물 반, 그 짭조름하고 야릇한 맛을 보면서 저체온증으로 죽음에 이르는 것이 어떤 것인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일. 프리미티보 길을 걸을 때 1천 미터 언덕길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진땀을 흘리던 일. 살리메 댐을 지나며 그동안 가둬두었던 그리움이 폭발해 나도 모르게 울음보를 터뜨렸던 일. 힘든 고비를 지나 천 년 숲길에서 느끼던 평안함. 그러다 긴장의 끈을 늦췄다가 넘어져 큰코다쳤던 일 등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의 카미노는 이것으로 마무리한다. 이제부터의 걸음은 '보너스' 걸음이 될 것이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은 한층 더 힘차게 내디딜 수 있으리라. 끝이라고 끝난 건 아니다. 길은 계속되고, 삶은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