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그 후 1일 차 / 10월 8일(일), 맑음
둠브리아 ~ 묵시아 / 23km, 누적 거리 790.1km
지금 묵시아(Muxia) 성당 옆 바위에 앉아 있다. 북대서양의 '죽음의 해안(Costa da Morte)'으로 파도가 끈질기게 밀려든다. 바위는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서서 기어이 산산조각 내고 만다. 파도와 바위의 싸움이 볼만하다. 누가 이길까.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지만, 바위는 조금씩 조금씩 깎여나갈 수밖에 없으리라. 파도와 바위가 경쟁하며 연출하는 장관에 나는 넋을 잃었다. 그 탓인지 나는 쏟아지는 졸음에 지고 말았다. 등 뒤에 쬐던 햇볕은 어느새 사라지고 해무가 덮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바위에 기대앉은 채 졸고 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쉬지도 않고 곧바로 일정을 강행하였기 때문이리라.
어제는 북대서양에 맞닿아 있는 라 코루냐(A Coruña)에 잠시 들렀었다. 건설된 지 2천 년이 넘는 이 도시는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격파한 무적함대가 정박해 있던 군사적 요충지이다. 또한 영국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스페인에 첫발을 딛는 곳이기도 하다. 라 코루냐 북쪽 끄트머리 해안에 있는 '토레 데 에라클레스(Torre de Hércules)', 즉 헤라클레스의 탑(등대)을 구경했다. 외관만 보았을 뿐이지만, 그 웅장하고 역사성 있는 등대를 본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탑은 고대 로마 시대 때 등대로 건설되었다. 그 높이가 55미터로, 높은 만큼 '죽음의 해안' 인근을 지나는 배에 신호를 보냄으로써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탑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은 탑이 지닌 역사성이나 건축적 가치가 큰 데도 있겠지만, 이러한 '생명 구조' 역할도 인정받은 데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았다.
라 코루냐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둠브리아(Dumbría)에 도착했다. 밤 열 시에 마감하는 공립 알베르게에 겨우 여장을 풀었다. 800km 카미노를 완주했으니 좀 쉬는 것도 좋으련만, 다시 이렇게 걸어온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어제 새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걸어가며 비로소 답을 얻었었다. '별이 된 시후와 나눈 짧은 대화', 그것을 통해 지난 십 년 동안 가슴에 묻어두어야 했던 슬픔과 애통함을 풀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 '그리워는 하되 이제는 울지는 말자.' 그것이 시후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걸으면서 시후와 나눈 대화를 곱씹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오늘 둠브리아에서 묵시아에 이르는 카미노는 편했다. 최고 260미터 안팎의 오르내림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계속 이어지는 유칼립투스 숲길과 한적한 마을들은 내 마음과 영혼에 평안함을 더해주기에 충분했다. 새벽에 길을 비추는 초롱초롱한 별들과 진한 유칼립투스 향내는 배고픔을 잊게 해 주었다. 두어 시간 만에 만난 바르는 시골 마을에 있는데도 인테리어가 세련되었고 실내 어디를 둘러보아도 깔끔하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내려준 카페 콘 레체의 고소한 맛과 크루아상, 그리고 타르타 데 산티아고(tarta de Santiago, 산티아고 케이크)라 이름 붙인 케이크 한 쪽, 부드러움 위에 살짝 올라탄 단맛이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다시 힘을 내 걷는 카미노는 한적했다. 어쩌다 묵시아에서부터 반대 방향으로 오는 순례자들을 스칠 뿐, 주기도송을 마음껏 불러도 눈치 볼 일이 없었다. 23km 정도 되는 이 길의 난이도는 대략 '중하' 정도였다. 오른쪽 무릎 통증 때문에 약간 절면서도 어렵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묵시아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빈자리가 많았다. 십 년 전에 비해 알베르게도 많이 달라졌다. 첫째, 그 운영 주체가 어디든 간에 숙박비가 두 배 가까이, 혹은 그 이상 올랐다. 예전에는 공립이 보통 6유로였는데 지금은 10유로 또는 12유로, 사설은 8유로에서 15유로 내외로 인상되었다. 둘째, 주방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운영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셋째, 시설이 전반적으로 리모델링되어 현대화되고 깨끗해졌다. 넷째, 샤워장과 화장실이 남녀 구분되어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십 년 전에는 남녀 혼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도미토리는 아직 남녀 공용인 곳이 훨씬 많다.
묵시아는 북대서양을 낀 스페인 북부의 인구 5,00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다. '죽음의 해안'이라 불릴 정도로 험한 바닷가에 세워진 산타 마리아 성당 역시 야고보 사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고보가 묵시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주저앉아 있을 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서 돌로 만든 배를 마련해 주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성당 전면에는 마리아가 보냈다는 돌배 조각이 남아 있고, 성당 내부에도 꽤 많은 배 모형이 벽마다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이 성지 순례지로 많은 순례자가 찾는 이유이며, 따라서 이곳에도 0.0km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내일은 피스테라(Fisterra)로 간다. '이 세상의 끝'을 향하여, 내 카미노 일정의 마무리를 위해! 파도와 바위의 싸움처럼, 삶도 끊임없이 부딪히고 깎여나가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