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늙은이에 들어 앉은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도입부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해 본다. 내가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곳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보아뱀 그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대신 지리, 역사, 수학, 그리고 문법에 관심을 가지라고 권고했다. (...) 나는 그림 1번을 보여주며 그 사람이 정말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지만, 언제나 그 사람은 “그거 모자네” 하고 대답했다. (...) 나는 내 자신을 그 사람에 맞추어 브릿지, 골프, 정치, 그리고 넥타이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 그 어른은 매우 지각 있는 사람을 알게 된 것에 대해 아주 만족해했다."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이정서 옮김, 새움, 2019, 16~17쪽
여섯 살인 어린 '나'가 그린 보아뱀 그림을 두고 어른들은 모자로 오해한다. 그들은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하기보다 '지리, 역사, 수학, 문법'을 공부하라고 권고한다. 이는 어린 시절의 '나'가 화가의 꿈을 포기하게 된 이유였다. 이 첫 장면을 통해 어른과 아이의 시선 차이,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는 깊어진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순수'와는 거리가 멀어지기 마련이다. 세파에 시달리며 현실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마음이 때 묻고 찌들기도 한다. 이를 좋게 말하면 '지혜로워진다' 할 수 있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꾀가 늘었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는 어린이의 특권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과 같다. 어른이 그 '순수'라는 거울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때가 묻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문득 악취를 깨닫게 된다. 흔히 '애어른'이라는 말이 있다. 어린 나이에도 어른처럼 행동하거나 말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데, 이는 보통 '아이답지 않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일 텐데, 그 기준은 바로 '순수'이다.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백지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어른들은 여섯 살 '나'가 그린, 코끼리를 삼키는 보아뱀 그림을 '모자' 외에 다른 것으로는 결코 바라보지 않았다. 그림의 본질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아이에게 '쓸데없는 일' 대신 공부나 하라고 종용했다. "공부나" 하라는 표현에서 어른들의 단호함과 함께, 아이다운 상상력이 본의 아니게 억누르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모습은 비단 소설 속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안 그래', '우리 집은 아니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림을 들고 다니며 '나'는 조금이라도 명석해 보이는 어른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는 실험을 반복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하나같이 "그거 모자네."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상상력이 사라지고 감수성마저 피폐해지기 때문일까? 그런데 더 서글픈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는 그런 어른들과는 더는 보아뱀이나 원시림, 또는 별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내 자신을 그 사람에 맞추었던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브릿지, 골프, 정치, 그리고 넥타이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 그 어른은 매우 지각 있는 사람을 알게 된 것에 대해 아주 만족해했다." (『어린 왕자』, 17쪽)
여섯 살 어린아이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어른들의 관심사에 맞춰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이 어린아이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골프나 정치 이야기를 잘하면 '지각 있는' 아이라고 여기는 어른들의 모습은 비단 소설에만 등장하는 풍경일까? 그런 어른의 범주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나'를 비롯해서 우리 주변에 이런 어른이 흔하다는 사실은 서글프다. 더 안타까운 현실은 교육 현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정해진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은 아이는 쉽게 '문제아'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학교에서 창의력을 길러주는 교육을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을 어른 세상에 '잘 적응시키는' 틀 속에 집어넣으려는 교육이 우선하는 경우는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교육 현실의 극단적인 단면을 볼 때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아이들의 세상이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몰랐다. 아이들은 때론 어른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과도한 경쟁과 학습에 내몰리기도 한다. 심지어 미래의 '의과대학 진학'이라는 구체적인 목표 아래, 초등학생 시절부터 '선행 학습'에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는 극단의 사례라 하더라도, 어른들이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강제로 특정한 틀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새로운 꿈을 꾸게 하기는커녕 가진 꿈마저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바꿔 말하면 어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자, 어린 왕자가 보여준 순수한 상상력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의 단면과도 같다.
『어린 왕자』의 흥미로운 스토리와 보석 같은 문장에 미소를 짓으면서도, 소설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을 생각하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이 소설을 대할 때마다 어린 왕자처럼 별을 두루 여행하며 여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드는 것은, 책이 상상력을 한껏 북돋워 주기 때문일 것이다. 모자를 닮은 보아뱀 그림을 보며 "뱀이 코끼리를 잡아먹다니,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상상하거나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과연 눈을 감으면 코끼리도 보이고, 코끼리를 삼키고 있는 보아뱀도 보일까?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면 보일까?
그렇다. 아무리 상상력이 부족하고 감수성이 메마른 우리 어른들도 눈을 감으면 어린이들의 순수한 꿈을 보고, 그들의 꿈 성취를 위해 진심으로 돕는 손길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날로 늘어나는 주름살에 은근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나도 가끔은 침침해지는 눈을 살며시 감고 마음의 눈을 뜨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때로는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린 왕자와 함께 여행하는 상상을 펼쳐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