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유체이탈 화법은 싫어요.
“어, 이거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나이 많은 후배인 김 대리가 모터를 바라보며 중얼댄다.
지금은 회의시간. 자기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 하는 그의 말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는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알고 있다.
‘하~~’ 쟤를 왜 회의에 끌고 들어왔을까.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박 과장이 김 대리에게 눈치를 준다. “김 대리, 뭐라고?”
김 대리는 차분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 대리는 원래 무언가를 분명하게 얘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박 과장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박 과장은 김 대리가 회의 시간에도 그럴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박 과장의 PPT는 별 감흥 없이 끝났다. 지극히 상식적이었고 평범했다. 작년에도 했었고, 그 전년에도 했었기 때문이다.
최 부장도 무언가 새로운 걸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부서는 매년하는 행사를 문제없이 치르면 될 뿐이니까.
다만 김 대리가 총무과에서 편입해 오면서부터는 분위기가 미묘하다. 그는 무언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무언가 건의하지도 않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나름 성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미묘한 쌔함은 어디서 오는걸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니 뭐라 할 말이 없고, 박 과장도 별 말이 없으니 내가 나서는 것도 웃긴 모양새다.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걸까?
김 대리는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 앉았다. 박 과장을 보니 앗차 싶다. ‘그냥 조용히 있을껄. 어차피 무늬만 과장이니 때가 지나면 도태될 대상이다. 굳이 얼굴 붉힐 필요 없다.’
김 대리가 총무과에서 좌천됐지만 박 과장한테 무언가를 배울 짬밥은 아니다. 박 과장에게는 그저 친절하게 대답했고, 물을 게 없어 묻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느껴진다. 박 과장의 ‘적의(敵意)’가 무얼 잘못한 걸까. 도움이 필요 없어서 묻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마케팅부의 연례 행사는 늘 지적을 받아왔다.
어차피 박 과장이 김 대리에게 시키는 것도 간단하고 아무 의미 없는 일들이라 무서울 건 없다. 하지만……. 하지만?
박 과장이 결국 일을 냈다. 일이랄 것도 참 뭐하다. 뻔했으니까. 운영진들은 행사가 왜 매년 그 모양이냐며 최 부장을 갈궜고, 결국 담당자였던 박 과장은 대차게 깨졌다.
박 과장은 풀이 죽었고, 김 대리는 평소처럼 자기 일을 묵묵하게 한다.
1년 후 치른 행사는 김 대리가 진행했고 김 대리는 김 과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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