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2020)
정신이 혼미해지는 책.
이 책을 읽었던 글쓰기 모임 회원이 내게 해준 말이다. 대체 어떤 책이길래 그런 얘기를 하는 걸까?
미국의 기자 ‘룰루 밀러’가 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작가가 한 어류 분류학자의 삶을 보면서 인생의 혼돈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또한 특정 신념을 고집했을 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책이기도 하다.
밀러는 ▲어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 ▲작가 ‘룰루 밀러’의 인생 ▲혼돈을 마주하는 자세 ▲파시즘의 일종인 ‘우생학’ ▲어류 분류학 등 여러 가지 소재를 책 전반에 걸쳐 다루고 있다.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던 밀러는 어류의 20%를 발견하고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까지 역임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통해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고 달려간다.
평생을 물고기를 분류해 온 어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물고기를 사랑했고, 세계를 다니며 물고기를 찾고 분류했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지진으로 모든 표본이 흙으로 돌아갔을 때도 있었지만 조던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평생에 걸쳐.
하지만 분류학에 심취한 조던은 연구를 위해서라면 살인마저 불사하는 인간이었고, 심지어 인간마저도 우등종과 열등종이 있다고 믿었다. 조던은 열등 인종의 불임을 장려해 우등 인류를 보존해야 한다는 ‘우생학’에 심취했다.
우생학이 터무니없다는 주장은 너무나 많았지만 평생을 분류학에 매몰됐던 조던은 우생학을 버릴 수 없었다.
밀러는 조던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혼돈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어류가 없다는 사실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간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목처럼 분류학적으로 어류라는 카테고리는 존재할 수 없다.
산에 사는 동물을 산짐승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고래가 물속에 살아도 포유류이듯 어류는 분류학적으로 의미가 없다. 심지어 비늘과 아가미가 있는 물고기더라도 사실 관계없는 종일 가능성이 더 크다.
조던은 평생에 걸쳐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흐르지 않는 물과 같다.
멈춰있는 물은 곧 썩게 된다.
썩지 않기 위해선 흘러야 한다.
흐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룰루 밀러가 묻는 게 이런 질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