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1922)
깨달음은 가르쳐줄 수 없다.
헤르만 헤세가 <싯다르타>를 통해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당신도 이 말에 동의한다면 더는 글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겁니다.
다만 한 발짝 더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제 깨달음은 전할 수 없다는 말이지 당신이 글을 읽고 무언가를 깨닫지 못할 거라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그동안 저는 제 깨달음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고민해 왔습니다. 더 좋은 작품을 읽거나 더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죠.
그런 노력이 다 무의미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본질적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당신이 저와 같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면 제 깨달음은 온전히 저밖에 느낄 수 없거든요.
반대로 당신이 깨달은 것도 온전히 당신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싯다르타>에서 주인공 ‘싯다르타’는 인도 계급사회의 브라만입니다. 최상위 귀족이죠. 싯다르타는 아름다운 청년이었고, 지혜로웠으며, 공손했고, 조금 오만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가 아버지를 버리고 떠돌이 중이 된 이야기, 최고의 창녀에게 사랑을 배운 이야기, 최하층민인 뱃사공이 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싯다르타는 오만하고 자기밖에 몰랐지만, 카발라를 통해 낳은 아이를 사랑하면서 성숙해집니다. 카말라가 오냐오냐 키운 덕에 어린 싯다르타는 버르장머리가 없었고, 자기와 어머니를 버리고 뱃사공이 된 아버지를 무척 경멸했죠.
싯다르타는 아들을 사랑했고, 지켜봤고, 다정하게 대했으며, 기다려줬고, 품어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싯다르타가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싯다르타는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지만, 아들이 바라는 건 그 어떤 것도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어린 싯다르타를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저는 싯다르타였습니다.
저는 싯다르타가 보는 것을 봤고, 싯다르타가 하는 것을 했으며, 힘들 때나 즐거울 때도 함께였습니다. 때로는 사색(思索)하고, 기다렸으며, 단식(斷食)도 했죠.
저는 싯다르타가 돼봤기 때문에 싯다르타가 느낀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잠시나마 그와 같은 길을 걸었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