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에서 (기시유스케, 2008)
사람답게 살고 싶지 않다면 굳이 사람일 필요가 없다.
책을 읽고 생각에 빠졌다.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가’에 대해서다. 기시 유스케의 또 하나의 걸작 <신세계에서>는 읽는 내내 그런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사람이 없고, 다른 사람보다 열등한 사람이 없다고 배웠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그렇지 않다는 걸 느낄 때가 있지만, 그럴 때가 있을 뿐이다. 매번 그렇진 않으니까.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대통령이나 나나 맛집에 오면 줄을 서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압도적인 힘’이 생기면 어떨까? 말 그대로 압도적인 무력이다. 개미를 실수로 밟듯 죽일 수 있는 압도적인 강함이 있다면. 그때도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신세계에서>는 초능력이 생긴 소수의 인간이 지구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70억 인구 중 0.3%였다. 하지만 그들은 개개인이 핵무기에 버금갈 만큼 위력적이었고, 결국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초능력자들이 지구의 주인이 되면서 인간의 정의가 바뀐다. 초능력이 없는 자들은 인간이 아니게 됐다. 노예, 아니 그 이하의 존재다. 심심하다면 죽여도 된다. 인간이 아니게 됐으니까.
소설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뭐 더 아름다울 게 있겠는가. 다만 서로를 죽일 정도의 힘이 없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자. 정말 다른가? 책에서 얘기하는 압도적인 무력이 없으니 괜찮다는 것인가?
<신세계에서>에선 ‘초능력을 가진 인간’과 ‘인간이 아닌 지적 존재’가 등장한다. 둘의 차이는 초능력밖에 없다.
현실로 돌아오자. 초능력 같은 건 없다. 결국 재력과 권력(세상의 인정)이다.
나는 재력과 권력이 없으니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다. 재력과 권력이 있다면 초능력자 측일 것이고, 없다면 학살을 당하는 존재일 뿐이다.
누가 인간답지 않은가? 힘이 있는 자인가? 아니면 힘이 없는 자인가.
그렇다면 누가 인간다운가? 힘이 있는 자인가? 아니면 힘이 없는 자인가.
두 질문이 말해주듯 인간답다는 말은 힘과는 하등 상관없다. 힘이 있어도 인간다울 수 있고, 힘이 없어도 인간답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돈과 세상의 인정을 넘어선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 않다면 결국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면 굳이 사람답게 살 필요가 있느냐고 묻겠다.
굳이 사람답게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사람일 필요가 없다. 짐승이 짐승답게 사는 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이는 말장난이다. 하지만 언중유골(言中有骨)임도 틀림없다.
<신세계에서>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