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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댁 고양이 Jun 20. 2024

끌릴 수밖에 없는 사람의 조건.

악의 교전 (기시 유스케, 2010)


영어 제목이 <lesson of the evil>이다. 직역하면 ‘악마의 수업.’ 악마의 수업 따위보다는 <악의 교전>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작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


차영이 이번에 읽은 책이다. <악의 교전>.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는 사이코 패스 선생님의 일상을 담은 소설이다. 


책의 결말에는 선생을 때려치우기로 결정하면서 맡은 반 학생들을 모두 제거하기로 한다. 그리고 실제로 92.5% 성공한다. 40명 중 3명이 살아남는 비극으로.


내용이 다소 충격적 일순 있지만 현실보다야 심하겠는가. 그리고 CCTV와 블랙박스 천지인 한국에선 실현 가능성이 없는 전개다. 


차영은 도서관 천장에서 지금도 자신을 찍고 있는 CCTV를 보며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악마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악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물론 진짜 악마는 아니다. 아니,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간이길 거부한 인간은 인간이 아니니까.




<악의 교전>은 올해 들어 읽은 책 중 몇 안 되는 걸작이다. 일본의 도서 어워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괜히 대상을 받은 작품이 아니다. 내용의 좋고 나쁨을 차치하더라도 재미라는 부분에선 분명 걸작이다. 


그리고 이 책이 재밌는 이유는 바로 사이코패스 교사인 주인공 ‘하스미’를 꼽을 수 있다. 정확하게는 작가인 기시 유스케가 하스미를 어떻게 그려냈는지다.


실제로 사람 목숨을 벌레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는가. 당신이 조금 귀찮게 했다고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당신을 죽인 후 자살로 위장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사람을 귀찮게 하지 마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눈이 반쯤 풀린 채 8자 걸음으로 사람들을 툭툭치고 다니는 중년의 남성 같은 존재다. 피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악의 교전>을 읽은 사람이 책을 덮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말로 하면 현실에선 끔찍한 사람을 작가가 매력적으로 그려냈다는 얘기다.




왜 ‘하스미’는 매력적이었는가? 다른 말로는 ‘매력적인 사람은 뭐가 다를까’이기도 하다. 


하스미는 화려한 이력을 가졌다. 미국 아이비리그 MBA과정을 거쳐 월스트리트 은행에서 일했다. 외모는 미소년이고 화려하고 사려 깊은 언변을 갖췄다. 모두 사이코패스를 감추기 위해 공부한 것이었지만.


생각해 보자. 미남에 공부를 잘하고 성격까지 좋으면 매력적인가? 


맞다. 매력적이다. 이런 사람은 좀처럼 없다. 적어도 이 글을 보는 당신이나 나는 결함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자. 내가 키가 183cm에 얼굴은 차은우, 성격과 능력이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남궁민(백승수 역)을 닮았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아마 드라마를 본 10명 중 9명은 “매력적이지 않을까?” 하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는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매력적인 것에 불과하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올 수는 없다는 얘기다. (진정으로 매력적이라고 느꼈다면 당신은 나를 후원하는 댓글을 달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왜? 기시 유스케의 사이코패스 매력적이고 내가 방금 적당히 만들어낸 ‘남궁차은우’는 왜 매력적이지 않은가. 


공을 들인 시간이 다르다면 그 얘기도 맞는 얘기다. 하지만 50점짜리 정답이다. 


그렇다면 내가 남궁차은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달라지겠는가? 


그렇게 말한다면 75점까지는 줄 수 있다. 하지만 본질은 단순히 설명의 양이 아니리라.




이 책을 보고 하는 얘기기니 당신이 <악의 교전>을 읽는다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14년 전에 나온 일본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 설명하겠다.


<악의 교전>을 읽었다는 가정 하에 당신은 내가 방금 만든 ‘남궁차은우’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또 반대로 <악의 교전> 속 주인공 ‘하스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는 위의 질문이 ‘매력적이다’고 느끼게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기시 유스케는 하스미의 과거와 성장, 상처를 책에 잘 담아냈다. 


기시 유스케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말하지도 않았고, 끝까지 모든 것을 감추지도 않았다. 독자가 체하지 않게끔 하나씩 비밀 보따리를 풀었다. 그리고 결국 독자는 모든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인위적이지 않다.


<악의 교전>이 대상을 받은 이유는 하스미가 매력적인 사이코패스라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같은 작가가 썼다면 하스미가 찌질하고 한심한 인간일지언정 책은 불티나게 팔렸을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당신이 남궁차은우의 과거와 성장, 현재, 상처를 당신이 수용 가능한 수준과 속도로 알게 된다면 당신은 남궁차은우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실로 돌아오자. 이제 당신도 누군가가 당신을 좋아하도록 만들 수 있을 테니.


당신은 매력적으로 자신을 가꿀 필요도 억지로 다이어트를 할 필요도 없다. (물론 건강은 챙기길 바란다.) 


할 일은 상대방이 체하지 않는지 점검하며 당신 이야기를 적당히 풀어내는 것. 그게 전부다. 


당신이 이야기를 잘했다면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괜찮을 거다. 대전제는 상대방이 체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배려’라고도 한다. 


물론 쉽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단순히 여자나 남자 꼬시는데 말고도 쓸 데가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어머니나 아버지, 당신의 친구도 있으니까.


또 당신이 말하는 것 말고 상대방이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은 응용 방법일 수 있겠다.




책장을 덮은 차영이 옆에 앉아서 졸고 있는 남편 심희를 빤히 본다. 심희도 눈치를 채고 긴장한 모양.


차영이 말한다. "자기야, 자기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심희가 우물쭈물한다. "글쎄?"


차영이 말한다. "글쎄?"


심희는 생각했다. 생각보다 길어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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