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괴담 (미쓰다 신조, 2020)
‘비 오는 날 들은 무서운 이야기’에 대한 책이다. 이름도 <우중괴담(雨中怪談)>. 그날도 어김없이 비가 왔다.
차영(30)이 책장을 덮으며 생각에 잠긴다. 아무리 무서운 이야기더라도 계속 보게 되면 면역이 생기는 법이다. 그건 ‘미쓰다 신조’가 아무리 걸출난 작가라 하더라도 예외일 수 없다.
차영이 무서운 책, 호러 소설을 읽어나간지 이제 7번째다. <우중괴담> 역시 무서운 책이지만 그 무서움이 조금은 반감 됐다. 다만 그건 작가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다만 비슷한 장르의 소설을 7권이나 읽으면서 달라진 부분도 있다. 단순히 긴장하고 무서워하는 것을 넘어서 어느 정도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것.
차영은 이제 조마조마하면서 소설을 보지 않는다. 작가가 어떻게 서스펜스를 만들고 개연성을 부여하는지 지켜본다. 그리고 괴담이 얼마나 정당한지도.
어차피 말이 안 되는 괴담 소설을 보면서 개연성을 찾는다는 게 의아할 수 있다. 다만 괴담이기에 개연성은 중요하다. 개연성은 거짓말에 생명을 불어넣으니까.
만약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데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다면 어떨까? 거시기가 달린 사람이 “나는 여자다”라고 주장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뿐이다. 괴담의 개연성이 딱 그런 역할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여자라고 주장한다면 사회 통념상 여자라고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런 요소를 잘 캐치하는 사람이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 특히 미쓰다 신조는 그런 사람이다. 분명히.
4가지 괴담을 엮은 이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를 관통한다. 그게 바로 우중괴담의 핵심. 무엇이 4가지 이야기를 불러왔는지는 소설을 다 읽어봐야 알 수 있다. 중간중간에 들춰본다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차영이 소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초인종이 눌렸다.
‘딩동’
“누구세요?”
대답은 없다. 적막이 흐른다. 대답이 없는 이상 굳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필요는 없겠지 생각하던 찰나 다시 초인종이 울린다.
‘딩동’
“누구세요?!”
차영이 결국 침대에서 일어났다. 철제 프레임에 색유리로 된 현관 건너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오래된 빌라의 유리문에는 방문자를 확인할 수 있는 외시경 따위는 없다.
차영이 현관문 앞에 서서 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남편인 심희(32)는 친구를 만나 간다고 나간 상황. 차영의 집은 1층에서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보이는 집이라 누가 뒤를 밟았다면 여자 혼자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딩동’
초인종이 다시 울린다. 경찰에 신고할 거라며 날 선 목소리로 외쳤지만 아직 반응이 없는 상황. 차영은 울먹이며 침대로 다시 들어갔다.
‘딩동’
초인종이 다시 울리고 차영은 심희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5번 갔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차영은 결국 경찰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아직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기에 경찰은 뜻뜨미지근하다. 누가 왔는지 문부터 열어주라고. 차영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딩동’
다시 초인종이 눌렸고, 차영은 방구석으로 이불을 들고 숨어있다.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 왼손에는 최근에 산 행켈 파이브스타 식도를 들고 있다.
“자기야 문 열어 줘.”
심희 목소리다. 차영이 이불을 내팽개치고 현관으로 나간다. 그리고 문을 연다. 그리고 싸늘한 표정으로 굳은 심희의 얼굴을 마주한다. 심희는 한 번도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다. 설마 함정이었나?
“자, 자기야. 그것 좀 내려놓자.”
‘아하’ 차영은 오른손에 여전히 파이브스타가 들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식도를 살포시 내려놨다. 그리고 심희에게 안긴다. 심희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린다.
“미안해 내가 많이 늦었지? 다신 안 그럴게. 진짜야.”
차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묻고 가만히 있는다. 고개를 살짝 돌려 초인종을 보는데 뾰족한 물건으로 쿡쿡 찌른듯한 흠집이 가득하다.
‘이거 언제 그랬지?’
후에 경찰에 다시 민원을 넣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근처에 주기적으로 출범하던 ‘벨튀 빌런’이라는 답변을 받게 됐다.
지문이 묻을까 봐 꼬챙이로 벨을 누르면서도 CCTV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결국 중학생 2명은 체포됐고 학부모 면담과 사회봉사 처분을 받고 훈방조치로 풀려놨다.
차영은 그 대답을 듣고도 떫떠름했다. 방음이 잘 안 되는 빌라라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소리를 못 들었을 리는 없었기에.
그리고 3년 후 전세계약이 끝나고 집주인을 다시 만났을 때 미쳐 말해주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집은 원래 비 올 때 가끔 초인종이 멋대로 울린다고.
차영은 그때도 비가 왔었는지 곱씹어 본다. 하지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미 3년이나 지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