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는 여전히 날 작가라고 부른다

최고의 비즈니스 파트너(11)

by 장수댁 고양이

글을 쓰면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와이프. 와이프는 알고 있다. 글을 봐야만 한다는 걸. 일종의 계약이라는 걸. 계약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사람이 거래에서 대접받을 수 있다는 걸 말이다.


키보드를 투닥거리는 나를 보면 와이프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와이프는 귀찮아하면서도 글을 읽는다. 기대보다 꼼꼼하게. 전에도 그랬지만 이젠 매일 반복이다. 와이프도 글이 하루아침에 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래도 와이프는 성실하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잡지사에 다니던 고참 기자. 나이 차가 많이 나기에 그냥 좋은 누나라고 생각했지만, 빈도가 늘면서는 달라졌다. 의리가 있는 성실한 사람. 그리고 라면을 반 봉지만 끓여 먹을 줄 아는 희귀한 사람. 와이프였다.


결혼을 결심하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3개월쯤. 매일 보는데 피곤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 난 성실함과 거리가 멀었고, 피곤함 대신 같이 사는 방향을 골랐다. 작은 빌라에 신혼집을 차렸고,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새로운 전셋집에 백수가 하나 굴러다니지만 와이프는 여전히 성실하다.


와이프는 말했다. 일하지 말고, 글 쓰라고 그래도 된다고.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때가 많았다. 아니, 그럼 돈은 누가 벌며, 내 사치와 향락은 어떡하나. 다만 난 생각보다 포기가 빨랐다. 출근 대신 아침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걸 보면.


와이프는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열심히 구인 공고를 검토 중이다. 스피커로는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가비엔제이의 <해바라기>. 나는 그 맞은 편에서 키보드를 투닥거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의 우리 집 아침 풍경이다.


‘의무 이행’. 맞다. 와이프는 그걸 잘한다. 내뱉은 말을 잘 지킨다.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약속은 꺼내지도 않는다. 신중한 편이라고나 할까. ‘진국’이라는 사람들이 가진 보편적인 특징 말이다.


와이프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지 않을까. 불공정거래로 부당 이익을 취하지 않을 사람. 최고의 비즈니스 파트너.


물론 그게 다는 아니리라. 다만 괜찮다.


와이프는 여전히 날 백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작가라고.


든든한 계약자가 있는 백수는 그렇게 키보드를 투닥거린다.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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