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는 있었다, 알고만 있었을 뿐.

할아버지도 사람이었다는 걸(12)

by 장수댁 고양이

“그런 건 상놈들이나 하는 거야.” 할아버지는 늘 말하셨다. 아니, 할아버지에 대해 떠올리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말이 그랬다. 할아버지란 내게 그런 의미다.


이질감을 느낀 건 동년배 선배가 조모상을 당하면서다. 꽤 오래 쉬었길래 의아해했는데 후에 듣기론 할머니가 직접 키우셨다더라. ‘왜 슬퍼하는 거지’하고 있으니 인정머리 없는 놈이란 말이 들릴 것 같았다.


어느새 나도 그런 사람이 돼 있더라. 할아버지가 보시면 뭐라고 하셨을까 하면서도 그런 대화를 나눌 리 없겠지 싶다.


할아버지는 ‘양반처럼 행동하는 게’ 무척 중요하신 분이었다.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하면 상놈들이나 먹는 거라며 뭐라고 하셨고, 2만 원이 넘는 만둣국을 사주며 흡족해하셨다. 가슴을 펴고 걸어야 했고 숨을 쉴 때도 입을 다물고 코로 쉬어야 했다. 훈장님이 되고 싶으셨던 걸까.


어렸을 때는 방학마다 1주일씩 댁에 가 있곤 했는데 그게 참 싫었다. 한 번은 <나 홀로 집에(1992)>를 보며 깔깔거리고 있었는데 이유도 모르고 맞았다. 양반보다는 상놈이 체질이었나 보다. 그것도 머리가 굵어지면서는 피곤하다고 방에 들어가 자거나 적당히 흘리게 됐다.


성인이 되고서는 아예 가지 않게 됐다. 전화도 받기 싫었고, 실수로 받아도 바쁘다며 끊기 바빴다. 엄마가 명절 때는 가야 하지 않겠냐며 나무랐지만, 그럴 땐 참 완고했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할아버지도 전화를 걸지 않게 됐다.


‘어느 날 갑자기’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밤에 엄마가 전화했다. 할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왜’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이상할 건 없었다. 여든을 훌쩍 넘기셨고 호흡기도 안 좋으셨으니까. 알고는 있었다. 알고만 있었을 뿐이다.


차가워진 할아버지를 보면서도 눈물이 나진 않았다. 있을 때 잘하지 그랬냐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형은 매정한 놈이라며 뭐라 그랬지만 그래도 그 순간엔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훈장님처럼 굴어야 했던 이유를. 내가 어딜 가서도 기죽지 않고 대접받기를 바랐다는 것도,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다소 투박해지셨다는 것도. 상놈처럼 군다고 혼내는 것도 나름의 사랑 표현이었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눈물이 났던 건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일상으로 돌아간 지 얼마 안 돼서다. 퇴근길 골목에서 달을 보는데 달이 참 밝더라. 그냥 할아버지 생각이 났고, 서서 한참을 울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 것 같은데 그냥 눈물이 났다.


와이프는 가끔 묻는다.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냐고. 사실해줄 말이 없다. 잘 모르니까. 할아버지의 짝사랑은 평생 보답받지 못했고, 그게 매정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할아버지도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달랐을까.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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