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터졌을 때(17)
‘게임을 던진다’는 표현이 있다. 롤(league of legends)을 하다보면 잠수를 타거나 조작에 신경 쓰지 않고 대충 하는 경우를 말한다. 5명이 하는 롤에서 1명이 사라진다는 건 전력이 80%가 된다는 의미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게임이 터졌다”고 했다.
초반부터 계속 죽거나 잘하지 못할 것 같은 게임에서 종종 게임을 터트리곤 했다. 부모님 욕이 관례인 채팅창이 무섭기도 하고 “왜 사냐”는 말에 할 말도 없었다. 잠수를 타면 다음에 접속해도 게임을 할 수 없는 페널티를 주는데, 접속해 놓고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게 더 났더라.
도망칠 수 있을 때 자주 그러는 사람.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다.
큰 일을 하고 싶었지만 중압감은 싫었다. 기대받는 게 두려웠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도 그랬다. 기대하는 사람 없이 느끼는 중압감. 그런 아이러니조차 싫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그 길을 선택한 적은 거의 없다. 아니, 없다.
무언가를 자주 바꾸려고 했던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멀쩡히 잘 쓰던 윈도우 노트북을 맥북으로 바꾼 것도, 취미를 이것저것 바꿔가며 하루가 멀다고 새 장비를 들이는 것도. 포기하기는 싫은데 어떻게 할지 모르기에 새 판을 짜려는 거다. 나도 바뀔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잡으려고.
또다시 시작되는 발버둥. 발버둥이 심해지면 지쳐 뻗어버린다. 어쩌면 아빠를 닮았는지도. 다행이라면 정신 차리라며 바가지를 긁는 어머니와 달리 와이프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침대에 처박혀 ‘힝’ 하고 있으면 와이프가 안아준다. 토닥토닥도 해준다. “괜찮을 거야. 숟가락을 떨어뜨린 거야. 다시 주우면 돼”라는 말도 함께.
알고 있다. 와이프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철저하게 설계된 멘트다. 여러 가지 변주를 주긴 하지만 그래도 본질은 같다.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 이제는 하나의 루틴으로 굳어졌다. 어떻게 아냐고 물으면 내가 알려준 방식이니까.
감수성이 풍부한 와이프는 내가 힘들면 같이 울거나 불안을 표출하기 바빴다. 힘든 건 나인데 너는 왜 우느냐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그럴 수 없었다. 다만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미래가 불투명해진다는 걸. 그래서 알려줬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자세하게.
5년이 흘렀다. 와이프는 나를 잘 다룬다. 내가 알려준 대로. 와이프의 멘트를 하나하나 듣고 있으면 안다. 내가 했던 말인지 아닌지. 성실한 와이프는 내가 했던 말들을 주머니에 담아뒀다가 필요할 때 돌려준다.
계산된 위로들을 듣고 있다 보면 괜찮아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터진 게임도 다시 시작할 용기와 함께.
이렇게 다시 글을 쓰는 것도 그런 위로 덕분이다. 느낀다. 책이나 영상에서 100마디 말을 듣는 것보다 와이프의 한마디가 더 와닿는다는 걸.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