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19)
오전 9시, 하얀 샤시 사이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보며 글을 쓰고 있다. 직장에 가야 할 시간이지만 장수댁고양이는 태평하다.
장수댁고양이. 내 필명이다. 고양이처럼 생기진 않았다. 그럼에도 고양이가 돼 있었다. 5년 전부터. 그것도 장수댁의 고양이다.
많은 ID(계정)와 닉네임을 만들고 없앴지만, 장수댁고양이만한 건 없었다. 친구들이 작명 센스로 경쟁할 때도 시큰둥했다. 어차피 게임 속에서만 불리고, 패잔병의 이름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실명은 밝힐 용기가 없기도 하다. 살면서 동명이인을 본 게 손에 꼽기도 하고, 유혈이 낭자하고 욕망을 퍼붓는 글을 썼을 때 주변 시선도 신경 쓰인다. 자극적이거나 문제 될 건 없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런 과정을 거쳐 정착한 필명이 장수댁고양이, 영어로는 장수CAT이다.
장수댁고양이로 활동한 지 이제 5년째.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오래 사는 고양이냐”고. 아니다. 장수댁은 와이프다. 직역하면 와이프의 고양이가 되겠다. 팔불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필명을 고수하고 있다.
사람들을 차가운 눈으로 지그시 관찰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걸 수도 있겠지만 괜찮다. 그런 바보 고양이라도 행복감을 준다. 5년 전에 만난 와이프도 나를 좋아해 줬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와이프를 만나면서 누군가의 고양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때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고 싶었지만, 나조차 나를 믿을 수 없었다. 뭐 하나라도 진득하게 하는 게 있어야지.
무엇보다 고양이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장수댁고양이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거나, 등뼈를 사다 핏물을 빼고 감자탕을 끓인다. 뽀송하게 마른 빨래를 개는 것도 잘한다. 그렇게 일과를 마치고는 집사의 “잘했다”는 칭찬을 기다린다.
집사에게 미안할 때도 있지만 고양이 생활에 이미 취해버렸다. 그래도 되냐고 물으면 집사는 말한다. “결혼하기 전부터 각오했다고.”
그래, 원래 자기 팔자는 자기가 꼬는 거라고 했다. 이번 생에도 사람 되긴 글렀으리라.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