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20일차 후기(20)
아침이 밝았다. 전날 새벽에 온 식자재를 냉장고에 대충 넣고, 살 빠지는데 좋다는 미온수를 한 잔 마신다. 전날 밤에 세팅해 둔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투닥거린다. 어떤 식으로 쓸지 고민하다 노래를 틀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Speak now>. 뭘 말할까. 주제는 기록 20일 차 후기다.
100일 프로젝트의 1/5이 지났다. 눈에 띄는 변화가 많지는 않지만, 전혀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아침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살면서 아침마다 글을 쓰지 않았으니, 변화는 맞다. 아침에 쓴 글이 20개 쌓였고, 활자로는 23,000자가 넘어간다. 요즘엔 잘 안 쓰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아주 못 썼다고 하기는 그렇고, 눈에 띌 정도로 잘 쓰지도 않은 글이 쌓여간다. 언젠가 단행본을 출간하리라는 꿈을 품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남들이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을 걷는 기분이랄까.
엄마는 자주 말했다. “아무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고. 좋은 말인 건 알겠는데 참 그런 기분이다. 삶은 계란을 사이다 없이 먹는 그런 기분. 체한 것 같기도 하고 혈액순환이 막힌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썼다가 지울 때도 비슷하다. 내 문장을 나도 믿지 못하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키보드를 투닥거린다. 분량이 이유없이 늘었다 줄어든다. 정답을 지웠을지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는 문제를 푸는, 빈 종이로 제출해도 되는데 구태여 종이를 채우고 있는 그런 기분이다.
작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늘 생각한다. 작가와 백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는 아저씨가 “자네 요즘 뭐하나” 물었을 때 두 단어 사이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곤 “취업 준비하고 있어요”라고 얼버무렸다.
작가란 스스로 그런 굴레에 몸을 던진 족속들이 아닐까 싶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돈도 안 되는 일에 목을 매는.
정답인지 오답인지 모를 문장들을 계속 썼다가 지운다.
나는 아직 나를 믿을 수 없다.
작가가 되는 게 나를 믿는 과정이 될지는 가봐야 알겠지.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