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을 찍던 사나이(21)
벚꽃은 원래 매년 핀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도 그래왔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빠져있던 사나이는 벚꽃을 보고 벌떡 일어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 벚꽃을 본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금요일이면 종강인 세무 학원에 가는 길이었다. 2호선 지하철을 타고 돌다 보면 도림천을 지나는데 땅 밑이 아닌 위로 지나는 구간이 있다. 4월이 되고서 달라진 게 있다면 벚꽃이 피었다는 것 정도.
사람들은 이날도 스크린 타임을 채우는 데 진심이었다. 어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새로운 영상을 넘기며 연신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안다는 표정으로. 잠시 미소 지을 영상을 발견해도 그때뿐이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이날은 자리가 없어 서 있었을 뿐이다. 자리가 언제 생기나 기다리며 창밖을 보는데 벚꽃이 보이더라. 2호선 옆길을 따라 하얀 꽃이 피었다. 엄마가 봤으면 소녀가 됐을 법한 꽃이. 그것도 아주 많이.
80km/h 이상으로 달리는 지하철에서 벚꽃을 볼 수 있는 건 그때뿐이다. 다른데 눈이 팔렸다면 금세 땅 밑으로 들어가니까. 창밖을 봐도 유리면에 비친 내 모습밖에 없다. 그게 싫어 시선을 곧장 화면으로 옮긴다. 내가 택한 삶의 모습이다.
선택지가 많았든 적었든 나는 최선을 택했고, 그 결과가 현재의 모습이다. 대부분은 땅 아래를 지나지만 간혹 위로 올라오는 지하철 같은.
그래서였을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벚꽃을 사진에 담던 사나이는 꽤나 멋져 보였다.
그는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더니 출입문의 넓은 창 사이로 비친 벚꽃을 담기 시작했다. 다리까지 벌려 자세를 낮추면서까지. 짙은 회색 양복을 빼입은 사나이는 훤칠하고 키까지 컸다. 사실 잘 몰랐다. 그도 시큰둥한 표정으로 스크린 타임을 채워가는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까.
그는 일어섰고, 벚꽃을 담았다. 나는 그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하철은 곧 땅 아래로 들어갔다.
며칠 후면, 길어도 일주일이면 벚꽃이 지리라.
생각해 본다. 나도 벌떡 일어나 벚꽃을 담을 용기가 있는지.
기록이 길이 된다면 나는 그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