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심장 (크리스 카터, 2014)
차영이 책장을 덮는다. '요즘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아 뿌듯하네. 이번 책도 완전 괜찮았어.'
차영이 이번 달에만 소설을 2권 읽은 자신을 대견해하고 있는데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난다.
"삑 삑 삑 - 삑 삑, 띠로링"
남자친구인 심희다. 차영이 시계를 보니 7시 반이 넘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심희는 요즘 감량 중이라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간헐적 단식이라나 뭐라나.
차영은 퇴근한 심희를 안아 주고, 짐 정리를 돕는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읽은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사이코패스의 마음으로 쓴 책
샤워를 마친 심희가 소파에 앉아 차영을 바라본다. "뭐해?"
차영이 시선을 심희에게 옮겼다. "얼마 전에 빌렸던 책 이제 다 읽었거든. 독후감 쓰고 있었어."
심희는 부지런하게 독서 일지를 기록하는 차영이 신기하다. "그래? 그 사이코패스 나오는 거? 소름 끼치는 내용이 많다더니 결국은 다 읽었나 보네? 제목이 뭐였더라?"
차영은 노트북 옆에 놓인 책을 훑어본다. "<악의 심장>. 이름처럼 시작부터 꺼림직한데 읽다 보니 완전 빠져들더라고."
"소시오패스면서 사이코패스인 악당의 이야기야. 뭐랄까. 작가가 범죄심리학과에 검찰청 출신이라 그런지 FBI가 우연히 잡힌 연쇄살인범을 심문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야."
"근데 신기한 게 누가 쫓아오거나 외적인 위기 상황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읽으면서 빨려 들어가더라. 범인이 잡히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서 범인이 누구인지도 알고,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도 대충 예상이 가는데도 말이지."
"아마 단순히 잘못을 했는지 보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잘 표현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심희가 차영에게 책을 건네받고 표지를 훑는다. "그래? 어떤 게?"
차영이 노트북에 정리한 내용을 읽는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게 참 어렵잖아? 근데 이 책은 그중에서도 '사이코패스'면서 동시에 '소시오패스'인 범인의 입장에서 뭘 했을지를 잘 보여줘."
"이런 식이야. 자기가 만약 사이코패스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심희는 아차 싶다. 차영은 무엇이든 성실하게 대답해 준다. 가벼운 대화를 할 때에도. "글쎄. ㅎㅎ. 잘 모르겠네? 아마 심심하다고 사람을 죽이러 가지 않을까?"
차영의 눈이 번뜩인다. "맞아, 보통 일반인이라면 그 정도 수준일 거야. 굳이 내가 사이코패스가 되어 어떤 범죄를 어떻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는지 고민하지 않지."
"또 보통 사이코패스가 되어 쓴 소설이더라도, 치밀하지가 않아. 혹은 치밀하더라도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근데 <악의 심장>은 그런 점에서 몰입감을 줘. 아마 작가가 미국 검찰청 프로파일러 출신이라서 그런가 봐.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봐서일까?"
전자책과 종이책 그리고 밀리의 서재
심희는 차영의 설교가 끝난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래, 그렇구나. 대단한 책이네. ㅎㅎ"
차영은 심희가 자기 얘기에 관심이 없다는 게 거슬린다. "자기, 재미없구나. 그렇네."
심희는 또 아차 싶다. 이런 적이 많지만 재밌게 듣는 연기는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렵다. "미안, 오늘 좀 피곤했나 봐. 그래도 자기 얘기 엄청 재미있어. 진짜야. 프로파일러 얘기도 그렇고, 힘들지만 듣고 있었다고."
차영은 심희가 고생하고 왔으니 용서해 주기로 한다. "흥, 알았어. 그런 걸로 하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심희를 보자 불현듯 무언가가 차영의 머릿속을 스친다. "맞다, 이번에 밀리의 서재 구독했어. KT M 모바일 회원은 무료거든."
"종이책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는데, 스마트폰으로 책 읽는 것도 이외로 나쁘지 않더라. 유튜브도 안 보게 되고. 무엇보다 간편하다는 게 최고였어."
심희가 차영의 눈치를 보며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둔다. "그래? 어땠는데?"
차영이 '밀리의 서재' 앱을 켜더니 소설을 연다. "글자 크기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또 배경 색이나 여백도 설정할 수 있어 얼마든지 보기 편하게 꾸밀 수 있더라고."
"엊그제 여행 갔을 때도 책이 너무 무거워서 놓고 갔었거든. 밀리의 서재를 써보자는 마음으로 가서 앱으로 소설을 보니까 의외로 최고더라. 충전할 여건만 있다면 무거운 책 들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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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차영을 안아준다. 이제 그만 말하라는 얘기다.
차영은 더 말하고 싶지만 잠자코 있기로 했다. "쳇, 알았어 피곤하니까 봐줄게."
차영을 잔뜩 안아준 심희는 평화로운 휴식시간을 즐긴다. 야식이 간절하지만 조금 참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