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결국 남이 채워주는 게 아니야.
결혼 후 4년 동안 살았던 신혼집을 떠나 남편의 직장 근처로 이사했다. 집이 직장과 가까워지자 남편은 신이 나서 이사한 날부터 회사 동료들과 축배를 들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회의를 빙자한 술자리가 1년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지리라는 것을.
임신과 유산, 조산의 반복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지내고자 낯선 곳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그곳이 신랑 회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이고, 시댁 식구들이 터를 잡고 산 지 오래된 지역이라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살던 신혼집에서 멀리 떠나고 싶었다.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남편 바라기'의 강도는 심해졌다. 퇴근 시간에, 퇴근하지 않을 남편인 것을 알면서도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나는 자꾸 시계를 봤다. 혹시 오늘은 일찍 오려나? 남편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본다. '혹시'가 '역시'로 바뀌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기대감을 내려놓을 수 없다.
아이를 낳은 후에도 여전히 남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지 않은 채, 아이와 함께 남편을 기다렸다. 나는 남편이 있으나 남편과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는 아빠가 있으나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대로 살다가, 어쩌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감이 느껴져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살기 위해 무슨 수를 내야 했다.
남편이 아닌 아이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오래도록 간절히 바라던 아이를 낳았으니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기로 한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 과정을 유심히 관찰하여 육아 일기를 쓰고, 육아용품 체험단을 시작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제품을 받아 사용하고 사진을 찍은 후 후기를 작성하다 보면 시간이 잘도 갔다. 그러는 사이 남편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낮아졌다. 아이와 내 삶에 집중하니 행복 지수가 올라갔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에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에 집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간절히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을 글로 남겼다. 꿈에 한 발 다가서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에서 배운 내용을 또 글로 남겼다. 나에게 집중할수록 남편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줄어들었고, 나는 그만큼 더 자유로워졌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맞다.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할 일도 없었다.
남편이 항상 내 곁에 있지 않아도 더 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의 귀가가 늦으면 더 좋다. 그만큼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짧지만, 소중한 시간에 아이와 함께 책을 읽거나 아이를 재운 후 혼자 책을 읽는다. 글감이 떠오르면 글도 쓴다. 가끔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쓰기도 한다. 이제 나는 혼자서 잘 놀고 잘 사는 법을 안다. 《엄마의 주례사》를 쓴 김재용 작가는 말했다.
"둘이 있을 때의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보다 배가 되는 법이야. 외로움을 극복할 준비가 안 되었다면 결혼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해. 외로움은 결국 남이 채워주는 게 아니라 내가 채워야 견뎌낼 수 있거든."
나만의 인생을 잘 헤쳐나가는 것도 중요하고, 인간의 외로움을 잘 견뎌내는 것도 중요하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 나의 행복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자. 남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 행복 지수가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