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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Nov 18. 2021

동료들과 함께 전시회를 다녀왔다

<도쿄R부동산 이렇게 일 합니다>와 <매거진B 10주년> 전시회

매거진B 10주년 기념 전시 소식을 듣고, 꼭 가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예매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날짜를 가늠하던 중이었는데, 그날따라 팀 회의가 좀 힘들었다. 머리에서 김이 폴폴 올라오는 듯한 회의를 끝내고, 옆자리 동료에게 혹시 전시회 같이 가겠느냐 물었다. 우리 오늘 고생했으니 스스로에게 포상을 주자고. 그래서 두 장을 예매했다. 티켓은 내가 쐈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사이다. 점심시간에 둘이 좋은 데 가서 바람쐬고 오자고 작당모의를 해 두니 업무가 빡쎄도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왔다. 이틀 쯤 지났나, 대각선 뒷자리에 앉는 후배가 그날따라 눈에 밟혔다. 다음주에 전시 보러 갈 건데 혹시 생각 있느냐 물으니 단박에 표정이 환해져서는 너무 좋다며, 근데 그날 막내인 후배랑 점약이 있는데 같이 가도 되냐고 되묻는다. 본인만 좋다면 안될 거 있나, 그렇게 멤버는 순식간에 4명이 되었고 나는 서둘러 두 장을 더 예매했다. 그런데 다음날, 그 막내의 동기인 또 다른 막내가 마침 주말에 같은 전시를 보러 갈 예정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어차피 갈 꺼면 우리랑 같이 가자는 말로 이어졌고, 그는 예매해 둔 티켓의 날짜를 변경했다. 피리부는 사나이마냥 판이 점점 커졌다. (매거진B 전시가 피리소리.) 


내 차가 9인승 카니발이라는 게 오늘처럼 뿌듯한 날이 없었다. 다섯 명이 차에서 김밥 먹으며 전시회 보러 가는데, 다들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세 음계쯤 올라갔다. 김밥 맛있다,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이 너무 예쁘다, 가을이다, 너무 좋다, 그러다 급기야 행복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세상에, 행복이라니. 해본지도 들은지도 오래되어 고대어처럼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전시가 열리는 Piknic 건물은 남산자락 아래 오래된 집들 사이에 있었고, 구도심이다보니 나무들이 전부 '한 포스' 하며 늘어서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좋았다. 건물 입구부터가 전시의 시작이었다. 스산한 가을 공기와 날리는 나뭇잎과 오래된 벽에 붙어있는 담쟁이와 어슬렁거리는 고양이까지, 그 모든 풍경을 에피타이저처럼 즐긴 뒤 드디어 오늘의 메뉴, 전시를 관람했다.  

브랜드의 세계를 탐험해 온 잡지 <매거진B>는 이제 스스로가 브랜드가 되었다. 매거진B가 소개하는 브랜드는 뭔가 특별하게 느껴지고, 행여 처음 들어본 브랜드라 하더라도 그걸 모르는 나를 반성하게 되는 지경이다. 각 브랜드를 이끌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그들에게 던진 <매거진B>의 질문이 좋았다. 매거진B가 던지는 질문에 나와 우리 회사는 뭐라 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중에는 저렇게 좋은 질문을 던지는 방법이 뭘까가 궁금해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것. "브랜드는 시에서 싹을 틔우고 산문으로 뻗어 나간다" (<블루보틀커피> 창립자 James Freeman)




예쁜 배경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같이 커피를 마시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회사로 돌아오는 길, 짐짓 어른인 척 내뱉지 않은 말을 속으로나마 해 봤다. 행복하구나...


마침 어제오늘 읽고 있는 책이 <도쿄R부동산 이렇게 일 합니다>이다. 이 책만으로도 두 시간은 수다떨고 싶을 만큼 좋은데, 몇 문장만 골라보자면 이렇다. 


"그러고 보면 도쿄R부동산에 필요한 사람은 '성실한 괴짜'다. 성실함과 괴짜 성향이 균형을 이루는 데에는 규칙이나 벌칙이 그다지 중요치 않다. 그보다 '올바른 채용'을 하고 그다음 '제대로 된 문화'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83p)


"'주'가 바뀌면 세상은 조금 더 좋아질 것이다. 곧 취향이 있는 공간을 증식시키는 것이다. '증식'시킨다는 것이 꼭 우리 손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향력이 있으면 주위로 파급되고, 누군가가 모방하면서 확산된다. 혼자 하는 일은 한계가 있으니 내버려 두어도 자꾸 퍼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120p)


"그래서 채용이 중요하다.....기본적으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에 열심이라 생각하며, 하고 싶은 일을 좋아하는 동료와 함께하면서 해이한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129p)


"규모가 아닌 영향력에서 성장하기" (149p)


"인생은 커리어보다 여행에 가깝다고 생각한다.....우리는 지금 여행 중에 도착한 어느 마을에 마음 편하게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191-192p)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일하는 방식을 택했을까? 일을 하는 방식 자체로 우리의 가치관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조직은 그릇이나 도구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용해 누가 무엇을 하는가이다." (196-197p)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던 오늘의 전시 나들이를 곱씹자니, 책의 내용도 각별하게 다가온다. 무슨 논리의 점프인지는 설명하기 어려우나, 오늘의 전시 모임을 정례화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침 오늘이 18일이니 매달 18일이 어떻겠냐고 했던 게 나였던가. 날짜가 입에 착붙이라고 호응해 준 건 막내였던가. 아무튼 다음달에도 멤버를 꾸려 좋은 전시 하나 보러 가야지 생각하다 보니 점점 상상이 확장된다. 게스트도 한 명 초대하면 어떨까? 회사 내 다른 부서 사람? 만나보고 싶었던 다른 회사 사람? 누구 만나고 싶은지 후배들에게 물어볼까? 아니면 서로 소개하고 싶은 사람 부르자고 할까? 내 차 뒷자리에까지 꽉꽉 눌러 타면 2-3명 쯤 더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판을 키우면 오늘 간 멤버들이 부담스러워하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 


하고싶은 일을 좋아하는 동료와. 


좋아하는 동료를 만들어가는 방법에 대해 곰곰 생각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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