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치러낸 임신출산육아의 기록. 딱히 정보는 없...^^;
저는 워킹맘입니다.
4살 딸아이가 있고, 뱃속에선 둘째 딸이 17주를 갓 넘겨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MBC 라디오PD로 7년 정도 일하다 올 봄, 육아휴직을 시작해 지금은 반백수로 지냅니다.
며칠 전, 볼일이 있어 광화문에 갔다가 혼자 '투섬플레이스'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차는 애 어린이집에 보내고 마셔야 제맛'이라는 어느 유명 육아블로거의 명언처럼, 껌딱지같은 딸아이를 떼어놓고 혼자서 책 보며 마시는 커피는 꿀맛이었습니다.
커피의 이뇨작용과 임신한 배의 방광압박효과가 복합적으로 나타나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여자 화장실 휴지통에 으레 가득차 있는 흰색 쓰레기들 사이에서
선명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꽃분홍 상자 하나가 눈에 띄더군요.
임신테스트기 케이스였습니다.
한 줄인지 두 줄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내용물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
자리로 돌아와 앉을 때까지,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돌았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읽던 책장을 다시 펼쳤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집이 아닌 카페 화장실에서,
그것도 시내 한복판에 있는 사람 많은 커피숍에서 임신 테스트를 해 보는 여자의 심정,
아마 모르긴몰라도 아이를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은 아닐 겁니다.
불안하고 초조해서 급하게 테스트해봤을 가능성이 크겠지요.
저 역시 그런 상황이었던 적이 있어서, 너무 잘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수술'을 예약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 때문이었는지, 남편의 기도 때문이었는지(저희 부부는 교회에 다닙니다^^;),
아니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대로 ‘생존 기계’에 불과한 제가 유전자의 정언명령에 굴복한 건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이로 인해 그토록 목매던 일도 중단하고 육아휴직을 감행할 정도로 변해 있습니다.
스물 아홉 살 때 까지 저는 ‘초음파로 아기 심장 소리를 들으니 도저히 못 지우겠더라’라는 말,
킹 오브 더 클리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부스스한 머리 질끈 묶고 피곤에 쩐 얼굴로 아이를 안은 채
‘정말 행복해. 너도 낳아 봐’라고 말하는 왕년의 알파걸들이
어쩐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지금의 여느 아가씨들처럼, 저 역시 '아이를 낳아 기른다'라는 사실에 대해 현실감 있게 받아들인 적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그건 아마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마찬가지일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사람은 없지요.
워낙에 불임, 난임 부부들이 많은 시대이다보니
임신과 출산에 대한 감동적인 스토리가 많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임신 소식을 전하는 여자의 모습은 대부분
울음 섞인 감격스런 목소리로 '여보, 저 임신했어요'하는 경우가 많고요. (나 언제적 드라마를 본 거니ㅋ)
하지만 적어도 저에게 임신은 기쁨보단 당혹감을 먼저 안겨준 소식이었습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만큼이나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은 요즘,
여러가지 현식적인 이유로 임신 소식을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여자들에게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의 제 솔직한 감정을 이렇게 털어놓는 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요.
제가 특별히 못되서였을지도 모릅니다만,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 키우는 기쁨, 끓어오르는 사랑 등 소위 말하는 '모성애'의 감정들은 모두
천천히 스며들듯 찾아왔다는 게 솔직한 저의 고백입니다.
보육 정책이 후질대로 후진 대한민국에서 맞벌이 부부로 육아를 하며 보냈던 그 전쟁같은 4년 동안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일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그렇게 될 여자,
그런 여자를 아내로 두었거나 두게 될 남자들과
약간의 공감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족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보건대, 워킹맘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직장 상사도, 남편도, 시어머니도 아닌 '죄책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