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은 벼락처럼

by 장수연

2011년 초여름이었다.

금요일 밤, 여의도 맥줏집의 야외 테이블에서 여느 때처럼 회사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평소 내 주량의 반의 반도 미치지 못한 상태였는데, 이상하게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담배도 맛이 없었다. 몸이 안 좋은가?

평소보다 술 마시는 속도가 시원찮자, 같이 마시던 사람들이 핀잔을 주며 잔을 비우라고 재촉했다. 울렁거리는 속을 정신력으로 다독이며 꿀꺽꿀꺽 소맥을 부어 넣었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 늦게까지 문을 연 약국이 있기에 들러서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왜 임신 테스트기를 살 생각을 했는지는 지금도 불가사의하다. 내가 임신을 했을 거라는 가능성은 단 1%도 상상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가 테스트를 해 보았다.

테스트기는 빠른 속도로 두 줄로 바뀌었다.

너무 순식간에 두 줄이 되어서, 나는 처음에 ‘아, 두 줄이 비임신 표시였나?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생각했다. 설명서를 꺼내어 다시 천천히 읽어보았다.

두 줄은, 임신이었다.

쿵.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는 불안감이 배꼽 밑에서부터 올라왔다.

다시 테스트기를 보았다. 두 줄이었다.

설명서를 보았다.

두 줄은, 임신이었다.


거실로 나와 남편에게 테스트기를 보여주었다.

끔뻑끔뻑. 이 물건을 왜 내게 들이미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남편도 몇 분 전의 나처럼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채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임신.... 이야?”

겨우 사태를 파악한 남편에게 나는 선언하듯 말했다.

“지울 거야.”

눈은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스스로에게 다짐을 받아내는 의미로,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지울 거야. 우리가 어떻게 키워.”

남편은 크게 내키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뜻을 존중해 주었다.


내가 그렇게 쉽게 '수술'을 생각했던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리는 당시 ‘사실혼’ 관계였다.

(아, 다시 봐도 참 섹시한 단어다. 나 뭔가 핫해 보이지 않나?)


결혼 날짜를 잡고 예식을 한 달쯤 남겨두었을 때, 아버지가 큰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생사의 기약 없이 의식을 잃으신 채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두고 당연히 우리 가족은 모두 황망했다. 그 와중에 제일 이성적인 건, 사고뭉치 남편과 30년 살며 내공이 쌓여버린 엄마였다. 엄마는 내게 결혼을 예정대로 치르자고 했다. 하지만 난 왠지, 결혼식을 치러버리면 아버지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실 거라는 걸 인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물론,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아빠의 건강이 회복되어 내가 아빠의 손을 잡고 예식장에 들어갈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래도 난 아빠를 조금은 기다려주고 싶었다. 깨어났을 때 큰딸의 결혼식이 모두 끝나 있다면, 아빠의 허탈감이 너무 클 것 같았다.

다행히 남편과 시어머님은 이해를 해주셨고, 우린 결혼하기로 했던 날짜 즈음에 교회에서 목사님을 모시고 가족들과 간단한 예배만 드린 채 계약해 둔 신혼집에 들어갔다. 혼식도 혼인신고도 없이 살림을 합쳐버린 우리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사실혼’ 관계라고 말하고 다녔다. 예배 다음날, 세부로 간단히 ‘사실혼 기념 여행’(not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바로 그 여행에서 아이가 생긴(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망할 동남아 불량 콘돔.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결혼 상태인 것도 마음에 걸렸고, 회사에서 내가 이룬 게 별로 없다는 것도, 결혼 준비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우리의 재정 상태도, 무엇보다 나와 남편 모두 아이에 대한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점까지, 아이를 낳기에 우리 부부는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아이는 준비된 사람들이 키우는 게 맞지 않나. 전혀 준비도 안 돼 있는데, 단지 생겼다는 이유로 낳는 건 무책임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나는 결혼하면서 '아이 없이 인생을 즐기는 쿨한 부부'를 꿈꾸었단 말이다. 소설가 하루키나 김영하처럼 쉬크하게! (정작 그들 부부의 실제 모습은 모른다. 그저 그들의 에세이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일상의 묘사를 토대로 나 혼자 상상한 그림일 뿐.)


토요일 아침, 바로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에 갔다. 좋은 병원을 알아보고 자시고 할 것 도 없었다. 그냥 집 근처 가까운 곳으로 갔다. 초음파 검사로 임신을 확인한 후,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다음주 화요일에 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다음주 금요일에 남편과 함께 일본 섬머소닉 페스티벌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화요일에 수술하고 2-3일 몸 좀 추스른 뒤 일본에 갈 생각이었다. 여행을 취소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뱃속에 들어앉은 무언가(누군가도 아니고 무언가,라고 당시엔 생각했었다)때문에 내가 세워둔 계획이 어긋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난 단호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난 누구에게 인지 모르게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숯돌처럼 차가운 분노가 안 그래도 단단한 내 의지를 날카롭게 벼려주었다.


월요일이 되었다. 출근을 해서 평소 내가 신뢰하는 여자 선배를 찾아갔다. 임신을 했고, 지울 거라고 말했다. 선배는 “그래. 아직 아기라고 보기도 힘들지 뭐~”하며 날 존중해 주(는 척해 주) 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병원에서 해야 하지 않겠냐며, 본인이 잘 아는 산부인과 선생님이 계시니, 같이 한번 가 보자고 말했다. 귀가 얇은 난 또 다음날로 예정된 병원 예약을 취소하고 선배를 따라 다른 산부인과에 갔다. 훗날 내가 첫 딸 하율이를 낳게 될 산부인과였고, 하율이를 받아주신 선생님이셨다.


의사 선생님은 매우 유쾌하면서도 예의 바른 분이셨다. 내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씀하시며, 그런데 왜 아이를 지우려 하느냐고 물으셨다.

“술과 담배를 너무 많이 했어요. 아마 아이가 건강하지 않을 거예요. 아이를 낳을 마음의 준비도 안 되었고요.”

마음을 닫고 딱딱하게 대답하는 내게, 선생님은 의학적인 설명인지 수다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아줌마스럽게 늘어놓으셨다.

“방송하시다 보면 그럴 수 있죠~ 아유, 의사들도 술 담배는 만만치 않아요. 이틀 전에 마신 술 냄새가 오늘까지 날 때도 있다니까요~ 그나저나 커피 좋아하세요? 제가 융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데요.....”

단연코 내가 만났던 모든 의사들 중 가장 말이 많으신 분이었다. 진료실 안에서 선생님이 손수 내려주시는 커피를 마시며 ‘술 담배로 인해 아이가 건강하지 않을 거라는 걱정은 과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었다. 그래도 수술을 할 거라면 아는 의사를 소개해 주시겠다고, 본인은 그런 수술은 하지 않는다는 말씀과 함께.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지난 토요일에는 사실 너무 놀라서 나도 우왕좌왕했어. 하지만 오늘 일찍 퇴근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가닥을 잡을 수 있었어. 수술을 하려는 너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기도하다 보니 내가 굳이 막지 않더라도 네가 당연히 옳은 것을 선택하리라는 확신이 들었어. 하나님이 ‘수연이 그런 애 아니다’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기도를 중단하고 잠이 들었다>

수술하려는 나를 설득해 본 적도 없으면서 내가 수술 안 한 걸 믿고 있다니, 내가 얘기한 걸 뭘로 듣고!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 이미 불편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 쓸데없는 불편함이 들기 전에 속전속결로 수술을 감행하려고 했던 건데,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와 남편의 편지를 계기로 나도 모르게 고민이 시작돼 버린 것이다. 낳을까, 지울까. 오전엔 낳을 수 있을 것도 같다가, 오후엔 무슨 쓸데없는 생각인가 싶었다. 어제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라면, 나는 가차 없이 병원에 가서 수술을 단행해야 옳았다. 그리고 나서 쿨하게 남편과 일본 섬머소닉 페스티벌에 다녀오면 끝나는 일이었다. 2011년 여름, 나는 그렇게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도 못 하고, 그렇다고 아이를 지우는 수술도 차마 해내지 못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율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남편에게 편지를 받았다.

'결혼 전 아이를 낳지 않겠다던 우리의 모습, 그리고 지금 분유를 주겠다는 조리원 직원의 만류에도 굳이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밤잠을 쫓는 널 보며 참으로 민망함을 느낀다. 사람의 자신감과 장담을 직접 꺾으시는 그분의 일을 통해서 오늘도 겸손하게 살아가야 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흔히들 말 하는데, 아이라는 건, 이렇게 존재하는 순간부터 나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끝내, 이제까지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 '아이 낳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


P.S.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둘째 역시, ‘혹시 임신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술과 담배가 유난히 맛이 없어서였다. 목구멍으로 삼켜지지가 않았다. 나와 함께 술자리를 즐기던 한 회사 선배 역시, 유난히 술과 담배가 몸에 안 받아서 임신 테스트를 했었다고 한다. 그녀도 지금은 예쁜 딸을 낳고 담배를 끊었(다고 알려져 있)다. 생각할수록 참 신비롭다. 1cm 겨우 될까 말까 한 생명체 덩어리가 술 담배를 밀어내고 있었다는 게. (우리 회사 여자들이 다 술 담배에 절어 사는 건 아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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