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장황한 임신기를 포스팅했으니 이번에는 출산을 앞둔 부부에게 간단한 팁을 전해보겠습니다.
1. 남편에게 - 분만실의 녹음기
산모마다 다르지만 보통 분만실에 들어가고 나서 실제 아이를 낳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나는 오전 10시에 병원에 도착해서 오후 3시에 하율이를 낳았다. 진통이 고조되고 자궁이 열리고 의사가 두세 번 왔다 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남편의 구령에 맞춰 힘을 주는 '진짜 분만'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니까, 진통으로 정신없는 아내와 달리 남편은 병원에서 이것저것 딴짓을 할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내 남편은 이 때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아 몇 시간이고 버틸 수 있게 해 놓고, 녹음 버튼을 눌러두었다. 분만이 모두 끝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데, 남편이 그 녹음 파일을 들려주었다. 의사의 말소리, 남편이 '하나, 둘, 셋' 하며 호흡을 함께해 주는 소리, 내가 내뱉는 신음소리들이 한참 뒤섞이다가, 어느덧 의사가 "이제 거의 다 됐어요!"하고 말하는 순간이 오고, 마침내 아이의 첫울음이 터진다....
난생 처음 겪는 종류의 고통과 싸우는 와중에 어떻게든 의사의 말을 들으려고 집중하다 보니, 정작 아이를 낳는 순간은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그 때 남편이 녹음한 아이의 첫울음 소리는 내게 몇 번이고 감동을 곱씹게 해 주는 좋은 선물이었다. 나중에 하율이의 돌잔치 때도 양가 어르신들께 1년간의 '성장사'를 보고하면서 하율이가 태어나던 순간의 소리를 들려드렸는데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사진으로는 아이의 첫울음소리를 담을 수 없다. 그렇다고 진통하는 아내의 옆을 지키지 않고 비디오 카메라를 들이대는 남편은 뭔가 오버스럽다. 분만실에서 잠깐 짬을 내어 스마트폰 녹음 버튼을 눌러두는 센스라니, 남편이 나와 만난 지난 9년 간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이었다.
2. 아내에게 - 조리원 옆 피부과
병원에서 3일을 보낸 뒤 조리원으로 들어왔다.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특히 나처럼 아이 낳기 직전까지 회사에 다니며 일을 했던 워킹맘의 경우, 하루 종일 뒹굴며 책과 텔레비전을 끼고 사는 일상이 호사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때 되면 잘 차려진 밥 먹고, 하루에 한 번 꼬박꼬박 마사지받고, 조용한 방에서 만화책이나 좀 보다가, '수유 콜'이 오면 아이를 데려와 젖 물리면 된다. 아직 채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임신 초에 나온다는 '불끈 호르몬'의 영향인지, 뭔가 복도라도 뛰어다니고 싶게 기운이 났다. (익히 알려져 있듯 이 시기를 조심해야 한다. 기분 좋다고 섣불리 무리하면 평생 비 오는 날마다 후회하는 수가 있다.)
아이를 낳고 당분간은 바깥 외출을 못 하게 된다. 어느 날, 조리원 방에서 창밖을 보는데 '앞으로 한 달쯤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안락하던 조리원이 '반 감금시설'처럼 느껴지며 우울감이 찾아왔다. 햇볕도 못 쬐고 삼시 세 끼 미역국을 먹어야 하다니, 내가 무슨 마늘 먹는 곰도 아니고.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간판이 있었으니 '00 피부과'. 나는 내가 머물던 조리원과 같은 빌딩에 있던 피부과에 가서 얼굴의 점을 모조리 뺐다.
얼굴에 덕지덕지 스티커를 붙이고 있지만 어차피 밖엔 나갈 수 없고, 이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라 봐야 나와 같은 처지의 산모들이거나 조리원 직원들 뿐, 고로 조리원에 있는 시기는 점을 빼는 데 딱 좋은 때이다! 게다가 '나를 위한 일'을 무언가 하나 했다고 생각하니 기분도 훨씬 산뜻해졌다.
조리원에서 아이를 위해 일기를 쓰는 것도 좋고 꼬박꼬박 모유수유를 하는 것도 좋고 인터넷으로 육아 용품을 주문하는 것도 좋다. 다 좋은데, 어차피 '육아'는 향후 몇 년간 죽도록 하게 될 일이다. 당장이야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강하게 의식되어 없는 모성애라도 끌어올려야 할 듯 '아이를 위한 일'을 찾아 이것저것 분주히 움직이고 싶겠지만, 진심으로 조언하고 싶다. 엄마들이여, 조리원에 있을 때 피부과에 다녀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