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서 나를 볼 때

by 장수연

얼마 전 일이다. 나와 하율이와 어떤 아저씨가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에 관심이 많은 하율이가 번호판을 물끄러미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엄마, 이 사람은 몇 층 살아?"

그러면서 하율이의 검지 손가락은 같이 탄 아저씨를 가리키고 있었다. 약간 민망해진 내가 하율이에게 말했다.

"어, 12층 사시나 봐. 근데 하율아, '이 분'이라고 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손가락질하면 기분이 안 좋으실 수도 있어."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하율이 머리를 쓰다듬으셨고 하율이는 순식간에 울듯한 표정이 되었다. 입을 삐쭉삐쭉거리며 눈물을 참더니, 12층에서 아저씨가 내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나를 보며 대성통곡을 했다.

"엄마~ 엉엉~ 몰랐쪄~ 엉엉~!!"


제 딴에는 창피하고 무안했었나 보다. 나는 우선 아저씨 앞에서 하율이의 실수를 지적한 것에 대해 반성했다. 그리고 저녁에 남편과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어른이 되고 사람들을 만나고, 특히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원래 내 성격'대로 살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 '필요에 의해서' 어떤 성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먹고 살려다 보니, 버티려다 보니, 좀 더 잘 해내려 노력하다보니, 상황에 맞게 조금씩 나를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4살 하율이가 아저씨 앞에서 끅끅거리며 울음을 참았던 것처럼.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던 회사에서 내가 했던 일은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고, 확신이 있는 척 결정하고, 때로는 날 세워가며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어떤 일은 비교적 수월했고, 어떤 일은 정말 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7년 동안 반복해서 하다보니 정말 힘들었던 일도 일상처럼 해내게 되었다. 굳은살이 박였다고 해야 할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저씨가 내리고, 하율이가 나를 보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릴 때, 나는 내게 굳은살이 박이기 전, 내가 내 성격을 상황에 맞게 바꾸기 전, 원래 나의 모습에 대해 떠올리게 됐다. 아 맞다, 나는 원래 이런이런 걸 힘들어하는 사람이었지. 이렇게. 언젠가부터 내게는 '아저씨 앞에서 울음을 참는 삶'만 있었지, '아저씨가 가고 나서 울음을 터뜨리는 삶'은 생략돼 있었던 것 같다. 아니, 그 차이를 의식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4살짜리 아이도 아저씨 앞에서는 울음을 참는 게 신기했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하자, 남편은 말했다. "근데 하율이한테는 '엄마'도 '나'인가 보네. 아저씨 내리고 나서 엄마 보면서 울었잖아. 그러다 이제 나이 들면 엄마한테 그런 맨얼굴은 안 보여주는 거고, 더 나이 들면 나 자신한테도 안 보여주는 거고, 그런 얼굴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리는 거고. 그런 거 아니겠어?"

정말 그런가보다. 그런데 그렇게 잊었던 내 모습을 아이를 낳고 다시 떠올리게 되다니, 이것이 인생이 만들어내는 뫼비우스의 띠 일까.


예전에 하율이를 뱃속에 가졌을 때, 허은실 시인 부부네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팟캐스트 <빨간 책방>의 작가로 알려진 허은실 시인은 MBC라디오에서 오랫동안 작가로 일했었다. 남편 역시 시인인데, 이 시인 부부는 나보다 1년 먼저 예쁜 딸을 낳았다. 4년 전 하율이를 임신하고 잔뜩 겁먹고 있을 때 '아이 키우는 삶'을 엿보고 싶어 그 집엘 두어 번 놀러갔었는데, 그 때 허 시인의 남편인 김일영 시인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수연 씨, 왜 인간이 아이였을 때를 기억 못 하는지 알아요? 내 생각에는 아이 키우면서 직접 보라고 그런 것 같아요"

아이를 4년 째 키우면서, 그 때 그 말에 얼마나 깊은 '시인의 통찰력'이 들어있는 건지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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