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 때도 그랬지만 둘째를 임신한 지금도 특별한 태교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바쁘기도 하고, 오글거려서이기도 합니다. 직업이 라디오피디이다보니 음악을 듣는 건 취미이자 일입니다. 모니터할 음반들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클래식이나 뉴에이지를 듣고 있을 여유도 없었고, 오래도록 습관처럼 듣던 음악을 이제 와서 어떤 목적(이를테면, 뱃속에 있는 아이의 지능 발달-_-)을 의식하고, 그것도 익숙하지 않은 장르를 들으려니, 영 어색하더군요. 무엇보다, 제게는 뱃속의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성격에 안 맞습니다. 아직 내 뱃속에 생명체가 들어앉아 있다는 사실에 적응도 안 되는데, "00아~"라고 이름을 부르는 게 너무 오글거리더라고요. 첫째도 둘째도, 태명은 지어만 놓았지 막상 불러본 적은 몇 번 없습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제가 맡았던 프로그램은 <윤정수 이유진의 좋은 주말>이라는 주말 프로였습니다. 선곡되는 노래 중 트롯트의 비율이 꽤 높은 편이어서 하율이는 모짜르트의 선율보다 박현빈 장윤정의 목소리를 훨씬 자주 들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마찬가지인데, 집이나 차에 동요 못지않게 가요나 팝이 많이 틀어져 있습니다. 동요 씨디가 마지막 트랙까지 한 번 돌면 저는 "하율이가 좋아하는 노래 들었으니까 이제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 듣자~" 하고는 제가 듣는 음반을 재생합니다. 동요만 30분 넘게 듣는 건 제가 힘들어서 안 되겠더라고요. ^^;
하율이가 30개월 쯤 되었을 무렵, 가장 잘 부르던 노래는 10센티의 <쓰담쓰담>이었습니다. 그 당시 10센티의 신보 모니터를 위해 차에서 자주 그 앨범을 들었었는데, 가사도 단순하고 멜로디도 중독성 있는 <쓰담쓰담>에 하율이가 꽂혀버린 겁니다. 3살 된 아이가 목청을 높여 "쯔담쯔담 쯔담쯔담 해볼까요~ 쓰잘데 없던 나의 손이 이런 용도일 줄이야~"하는 야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저와 남편은 포복절도 했습니다. 요즘은 집에서 라디오를 자주 틀어놨더니 씨엠송을 종종 흥얼거립니다. "시력아, 가지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로나민 씨~" 이게 하율이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모짜르트를 별로 듣지 않은 것도, 동요를 많이 틀어주지 않는 것도, 저는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하율이에게 주어진 자연스러운 환경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음악 취향을 아이 동요에 양보하지 않는 이기심에 이리도 당당한 건, 예전에 어떤 뮤지션과 나눴던 대화도 한 몫을 합니다.
몇년 전 마이큐라는 뮤지션이 제가 맡았던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배우 공효진과 함께 부른 '나 너를 사랑하나봐'나 '환상의 그대'같은 노래, 참 좋습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그에게 '당신의 음악에 고유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릴 때 어떤 음악들을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재미있는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엄마가 비오는 날이면 자기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했었답니다. 옆자리에 어린 아들을 앉히고 운전을 하면서, 그녀는 늘 올드팝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빗소리와 함께 들려오던 비틀즈나 카펜터스의 목소리,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쓸쓸해 보이던 엄마의 얼굴이 자신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잊고 있던 그 이야기가 하율이를 낳고 다시 생각났습니다. 마이큐의 누나는 디자이너이고 마이큐 역시 음악과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두 자녀를 그렇게 길러낸 엄마이니,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 또한 예술가적 감수성이 없지 않았겠지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가 나는 옛 소설 속 주인공처럼 상상되곤 합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음악 혹은 미술을 하던 예쁜 아가씨, 어떤 사정으로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살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첫사랑과의 추억이 떠올라 아련해지는, 왠지 임예진 씨나 강석우 씨가 나올 것만 같은 옛날 영화 있잖아요. (마이큐 씨, 이런 망상을 해서 죄송합니다 ^^;)
그 어머니는 비오는 날의 드라이브에 왜 아들을 대동했을까요. 아마 어린 아들을 봐줄 사람이 없어서이지 않았을까요? 본인의 정서적인 갈증은 풀어야 하겠고, 아이는 어리고, 어쩔 수 없이 옆자리에 아들을 태운 채 빗속의 차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있는 어떤 여자를 생각하면 저는 괜히 마음이 울렁거립니다. 그렇게 엄마의 특별한 얼굴을 엿본 아들은 커서 뮤지션이 됐죠. 엄마가 '이 아이를 예술가로 길러내야지' 결심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비오는 날 자신이 느끼던 특별한 감정에 어린 아들을 배제하지 않은 거였습니다.
육아에세이를 쓰기도 했던 컬럼니스트 임경선 씨가 '아이 역시 가족 공동체의 일원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동의합니다. 나와 남편과 딸아이는 한 오디오를 나눠 써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율이가 오기 전, 거실이나 자동차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메탈만 듣지 않았듯이, 지금도 하율이가 좋아하는 동요만 들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록음악을 좋아하는 아빠와 라디오피디인 엄마를 둔 하율이는 어떤 음악 취향을 갖게 될지, 어떤 노래들에 특별한 기억을 갖게 될지 매우 기대됩니다. 하율이의 취향과 정서가 만들어질 자연스러운 환경을 거세하고 동요만 틀어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글을 쓰다 보니 말투가 바뀌었네요. 그동안 존대말로 쓰지 않았었다는 걸 이제 알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