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는 작가에게 전화를 한통 받았습니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지방에 내려가 아이를 낳고, 요즘 한창 '독박육아' 중인 그녀, 저에게 묻더군요.
"수연씨는 애 잘 때 뭐했어? 시간은 가는데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아이를 낳고 휴직 중이던 그 시간, 난 무얼 했었는지.
사실 아이 낳기 전, 신생아의 수면 시간이 20시간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많은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공부도 좀 하고, 그렇게 자기계발을 좀 하고 나서 회사에 복직하리라는 야무진 꿈이었지요. 애 키워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게 얼마나 헛된 망상인지. 애 잘 때 젖병 씻고 집안일 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고, 나중엔 애 잘 때 엄마도 자기 바쁘죠. 그래야 체력 보충이 되니까. 그래야 나도 좀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 생활이 반복되어 내가 애인지 애가 나인지 구분이 안 되는 호접몽스러운 경지에 이르러, 어느날 갑자기 산후우울증 비스무리한 게 찾아왔습니다.
이 글은 출산 후부터 복직 전까지 육아의 수레바퀴에서 신음하던 시절, 우울감이 찾아올 때마다 제가 부렸던 꼼수를 정리한 글입니다.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모성애로 똘똘 뭉쳐 있는 분이라면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으실 겁니다. 부디 읽지 말아주세요. 아니면 읽고 조용히 지나쳐 주세요. 저 안그래도 그런 눈빛 많이 받았습니다. ㅠㅠ 그저, 애 키우는 동안 뭐라도 해 보려고 애썼던 한 인간의 몸부림일 뿐이니, 혹시나 참고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 백일주를 드세요.
센 거 먼저 하나 가겠습니다. 이건 사실 저보다 앞서 아이를 낳았던 엠비씨 라디오 피디 선배가 알려주신 팁입니다.
임신기보다 수유기에 음식에 대한 제한을 더 많이 받죠. 일단 매운 음식과 커피를 전혀 못 먹으니까요. 더구나 수유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저는 '아이만 낳으면 열달 동안 참았던 맥주를 마음껏 마시리라' 생각했던 터라, 아이를 낳고 나서 더더욱 금주해야 한다는 걸 알고 무척이나 좌절했었습니다. 그 때 그 선배 가라사대, "마셔! 마시고 짜서 버려. 야,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거야." 그리하여,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맥주를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루 정도 유축기로 모유를 짜서 버렸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렇게 음주를 했더니 기분도 상쾌해지고, 적절한 죄책감(!)이 찾아와 아이한테 더 잘 하게 되고, 좋더군요.
잘 안 되는 분들은 디데이를 백일로 잡고, 백일주 먼저 시작해 보세요. (음주 권장 육아기라니, 이게 무슨...^^;)
2. 6개월 전엔 괜찮습니다.
흔히 '애 좀 크면 이것저것 해보리라' 계획하는 엄마들이 많지만 모르시는 말씀, 진정한 기회는 아이가 6개월이 되기 전입니다. 이 시기 양육자의 역할은 젖 주고 기저귀 갈고 하는 '생리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게 대부분이지요. 엄마가 하든, 아빠가 하든, 할머니가 하든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더 지나서 엄마 얼굴 알아보기 시작하면 분리불안 생기고 골치 아파 집니다. 따라서 아이가 좀 어릴 때, 아빠가 아직 의욕에 차 있고 할머니들이 손주를 얻었다는 감격에 겨워 있어 아이를 맡겨주면 좋아할 때, 이 때 하루에 일정 시간을 떼서 엄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하든,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친구를 만나든, 그건 각자 취향에 따라서.
3. '시어머니 쿠폰'의 효과적인 활용법
그래서 저는 그 시기에 저는 평소에 관심 있던 일본어 공부를 했습니다. 자격증 시험을 보면 강제성 때문이라도 나태해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시험을 신청하고 학원을 등록했습니다. 학원에 등록한 이유는 '시어머님 쿠폰'을 활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경우 시어머님이 아이를 봐 주실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봐 달라고 부탁만 드리면 안 그래도 손주 보고 싶어 죽겠는데 잘 됐다 싶어 버선발로 뛰어오시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아시죠? 시어머님이 오셔서 아이를 봐 주시는 건 좋지만, 와서 얼마나 계시다 가실까 불안해지는 복잡한 마음 ^^;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학원에 등록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님, 제가 시험 준비를 해야 해서 학원에 다녀야 하는데 혹시 아침 10시부터 오후2시까지 아이 좀 봐 주실 수 있으세요?" 학원은 주3일이었고 수업은 2시간이었습니다. 수업 없는 날에 좀 놀려고 매일 와 주십사 말씀드렸지요. 매일 3-4시간 시어머님께 아이를 맡기면서 저는 자유시간을 얻었고, 어머님은 마음껏 손주를 보실 수 있었고, 저는 시어머님과 함께 아이를 보며 불편해지는 애매한 상황을 피했습니다. 혹시 시어머님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분이라면 이런 방법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4. 보면대
아이가 젖을 먹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한 번 젖을 물리면 30-40분 정도 걸리더군요. 처음엔 신기해서 젖 빠는 아이를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었는데, 그것도 하루이틀이고 나중에는 두 가지 괴로움이 찾아왔습니다. 심심하다, 그리고 목이 아프다. 아이를 한참 내려다보노라면 목뼈가 아팠습니다. 그렇다고 정면을 보고 있자니 멍때리는 것 밖에 안 되더군요. 사실 젖 먹이는 시간은 아이가 얌전히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 시간이 좀 아깝기도 했어요. 그리고 아이에게 필요한 건 내 젖일 뿐이기 때문에, 수유 자세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손과 눈과 머릿속이 자유롭기도 하고요.
이리저리 궁리하다 악보 보는 보면대를 사서 소파 앞에 두었습니다. 보면대에는 공부하던 일본어 단어장을 두기도 하고, 태블릿피씨를 두기도 하고, 소설책을 두기도 했습니다. 젖을 먹이면서 무언가를 읽거나 태블릿에 미드를 다운받아 보았더니 수유 시간이 한결 즐거워졌습니다. 왜, 아기에게 텔레비전 소리 들려주는 거 은근히 꺼려지잖아요. 태블릿에 이어폰 꽂고 보니 딱 좋더라고요. 그래도 나름 모유의 퀄리티를 위해 야하고 폭력적인 미드는 피하고 '모던패밀리'와 '가십걸' 위주로 보았습니다. '워킹대드'와 '왕좌의 게임'이 그렇게 재밌다던데 모성애로 참았지요. ㅠㅠ
꼭 필요한 3대 수유용품, 유축기와 수유쿠션과 보면대입니다.
아이를 낳고 여기저기서 육아에 대해 많은 말을 듣게 되지만, 저에게 정말 도움이 됐던 두 가지 조언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위에서 언급한 회사 선배이자 육아 선배인 김 모 피디의 지론이고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돈으로 해결하라. 그게 제일 싸다"
배철수 아저씨의 부인 되시는, 존경하는 피디 선배의 명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