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이터널 선샤인>과 둘째 임신 이야기
원한다고도 원하지 않는다고도 말할수 없는 애매한 마음일 때 둘째가 찾아왔다.
임신테스트기에서 한 줄이 나오면 묘한 안도감과 희미한 실망감이 동시에 들곤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줄이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기뻐하고 있는 나를 보며 그제서야 내가 둘째를 원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둘째를 원하고 있었다니, 그 자체가 놀라웠다.
임신 초기엔 입덧으로, 후기엔 불면으로 결국 열 달 내내 괴로운 걸 알고도?
밤잠 설치며 수유해야 하는 '죽음의 백일'을 다시 견뎌야 하는데도?
밤 12시에 퇴근해 울면서 이유식 만들던 피곤한 일상을 다시 치러야 하는데도?
정말, 다 알면서도 내가 둘째를 갖고 싶어 했단 말야?
요즘 한창 재개봉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설정을 빌자면,
첫 아이를 기르던 눈물의 기억을 누군가 통째로 날려버린 게 틀림없다.
클레멘타인과 힘들게 이별하고도 그 구질구질한 연애를 다시 시작하려 하는 조엘처럼, 정신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두번째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되어 있다.
둘째가 생겼다는 걸 알고 나서 들었던 여러가지 감정 중 하나는 '다행이다'라는 마음이었다.
하율이를 키우면서 했던 많은 게 잊혀지고 있었는데, 다시 할 수 있겠구나. 다행이다.
농담처럼 <이터널 선샤인> 이야기를 했지만, 정말 난 하율이의 어린시절에 관한 많은 걸 잊어가고 있었다.
내 기억을 없앤 게 영화처럼 '라쿠나 사'라는 기억 지워주는 회사가 아니라, 하루하루 쉴 틈 없이 내게 업무를 부여하는 내가 다니는 회사라는 게 다를 뿐이다.
시어머님과 어린이집 선생님이 하율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미혼시절과 거의 다름없이 회사 일에 매진했다.
이러다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오면 하율이가 어른이 되어있을 것만 같았다.
하율이가 신생아였을 때, 남편과 나는 이가 나지 않은 하율이의 잇몸을 보며 무척 신기해 했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울음을 터뜨릴 때 드러나는 그 매끈한 분홍빛 곡선, 몇 달이 지나 이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볼 수 없을 모습이었다.
발바닥의 보드라운 살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발로 땅을 디뎌본 적이 없기에 손바닥과 발바닥이 똑같이 맨질맨질했는데, 그 굳은살 없는 아기 발은 순결해보이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나면 볼 수 없는 지금 아이의 모습, 그게 어디 신생아에게만 있었을까.
뒤집고, 기고, 서고, 걷는 모든 모습이 그랬겠지.
그럼에도 내 기억은 하율이가 아주 어릴 때 머물러 있는 듯했다.
그리고, 두번째 기회가 내게 왔다.
영화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기억을 지우고나서도 다시 사랑에 빠진다.
20대 중반의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친구와 심도깊게 토론했던 주제는
'헤어진 남자와 다시 만나도 되는가'였다.
그 땐 정말 그게 궁금했다. 둘의 두번째 사랑은 과연 처음과 다를까.
서로에게 조금 덜 상처주고, 조금 더 이해하고, 그리하여 비극으로 끝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극중 클레멘타인은 걱정스레 말한다. "곧 (당신은 나를) 거슬려 할 테고, 나는 당신을 지루해할 거에요"
나는 그 대사가 그렇게 슬펐다.
30대 중반이 되어 <이터널 선샤인>을 보면서도 사랑이 아니라 육아를 주제로 글을 쓰게 된 지금,
나는 '두번째는 처음보다 나아질까'가 그리 궁금하진 않다.
사람이 얼마나 바뀐다고 뭐 대단히 나아지겠는가. 당연히 비슷하겠지.
얼마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아빠 성동일이 딸 덕선에게 그러더라.
"아빠가 잘 몰라서 그래. 첫째 딸은 어떻게 가르치고 둘째 딸은 어떻게 키우고 셋째는 어떻게 사람 맹글어야 되는지, 잘 몰라서 그래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잖어~ 그러니까 덕선이가 쪼께 봐줘. 응?"
아이를 기르는 게 물건 만드는 것 같다면야 두 번째, 세 번째, 익숙해질수록 '숙련공'이 될 수 있겠지만
부모도 '이 아이'는 처음이니까, '둘째 딸', '셋째 아들'은 처음 길러 보는 거라서 늘 잘 모른다.
나 역시 '두번째 임신'은 처음이어서, 첫 아이 때와 다른 임신의 징후를 만날 때마다 낯설고 겁이 난다.
10여년 만에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보며, 좋아하는 장면이 바뀌었다.
조엘의 침실에서 '라쿠나 사'의 직원들이 조엘의 기억을 지우는 동안, 그는 뒤늦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격렬하게 외친다.
"Can you hear me? I don't want this anymore! I want to call it off!"
침대에 누워있는 짐캐리의 눈가에 눈물이 흐르는 장면, 기억을 지키기 위해 잠들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던 그 간절함이 너무 좋았다.
그게 그의 진심이었으니까.
기억을 지워달라는 건 그저 홧김에 한 말이었을 뿐이다.
클레멘타인을 사랑하는 동안 물론 괴로웠고 결국엔 헤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진짜 원했던 건 사랑했던 모든 기억을 간직하는 쪽이었다.
두번째 사랑이 더 나은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서툴고 실수 많은 사랑이었대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는 간절함만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내 마음에 남았다.
출산 예정일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더 잘 키워보겠다'는 욕심은 없다.
다만 내 일상에, 아이가 자라가는 걸 보는 시간을 조금만 더 내어주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