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연 Jul 29. 2016

아버지의 세계와 어머니의 세계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를 보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에는 두 개의 세계가 나온다. 편의상 아버지의 세계와 어머니의 세계라고 해 두자.

아버지의 세계는 소설가의 세계이다. 소설의 제목은 <아무도 없는 식탁>이다. 제목처럼 아버지는 혼자 편의점이나 길거리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운다. 연립주택에 살고, 경륜과 복권에 기대를 걸고, 늘 약속시간에 늦는다. 어머니의 세계는 큰 부동산 회사 직원의 세계이다. 그럴듯한 레스토랑에서 새로운 남자와 식사를 한다. 아들을 성실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하고, 약속장소에는 미리 도착해 기다리는 쪽이다. 아버지의 세계에서는 야구를 할 때 포볼로 진루하지만 어머니의 세계에서는 홈런을 노린다. 할머니를 존경하는 건 아버지, “그렇게 말하면 입사시험에 떨어진다”며 영웅이 되라고 하는 건 어머니의 세계이다.

아버지는 태풍이 오는 날 아들을 데리고 공원에 나가 미끄럼틀 밑에서 손전등을 켜고 과자를 먹는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걱정하니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이는 결혼엔 맞지 않는 사람이에요”라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묘사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사랑만으론 살 수 없어, 어른은"

아버지는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아버지도 ‘생각대로 잘 안 풀리는 삶’을 살았다. 그런 아버지를 두고 주변에선 “언제까지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며,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살 건지...”라고 혀를 찬다. 헤어진 아내에게 미련을 갖고 그녀의 새로운 사랑을 질투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을 책임감이라고 착각한다. 어머니는 이 관계가 끝났음을 명확히하고, 재혼을 추진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유일하게 의견의 일치를 보는 순간이 있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정말로 그래.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아들 싱고는 어머니의 세계와 아버지의 세계를 교차하며 성장한다. 할머니를 좋아하고 ‘포볼’의 야구를 하지만, 장래희망은 공무원이다. 싱고는 모른다. 아버지도 고등학교 땐 지방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는 걸. 싱고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는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아직 되지 못했어. 하지만 되고 못 되고는 중요하지 않아.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하율이와 하린이에게도 아버지의 세계와 어머니의 세계가 있다. 엄마는 9시엔 자야 한다고 말하고, 아빠는 엄마가 없을 때 하율이와 밤산책을 나간다. 엄마는 영어를 가르쳐주기 위해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아빠는 ‘영어 천자문’이라는 엉터리 방법을 사용한다. “해 썬, 달 문~ 차 카, 벽 월~” 내가 보기엔 복권보다 낮은 확률인데, 남편은 이 교육법이 대박나서 퇴직하는 날을 기다린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 한가득 장난감을 늘어놓고 아빠와 하율이가 신나게 놀고 있다. 왜 엄마는 ‘정리하면서 놀기’가 가능한데 아빠는 불가능할까, 난 저걸 언제 또 치우나,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심호흡 한번 하면서 생각한다. 지금 하율이는 아빠의 세계에 있는 거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아이는 아빠와 엄마의 세계를 오가며 자라는 거지. 습~ 하, 습~ 하....

이 남자와 결혼할 땐 정말이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말에 대하여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